[야옹다옹] 반쪽 선수→3할 타자, 정수빈 네버엔딩 도전
16.04.18 17:17
최근 한 이동통신사 TV 광고 모델로 나선 김광현(SK)은 자신의 투구폼에 대해 ‘이 폼을 완성하기까지 걸린 시간, 20년’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그 폼을 만들기까지 걸린 시간만큼 그 속에 자신의 인생이 압축되어 있다는 말도 함께한다.
야구선수에게 폼이라는 것이 그렇다. 투구폼이나 타격폼 모두 그들에게는 수년간의 경험 속에서 만들어지고 다듬어지는 산물이다. 때문에 그것을 백지상태로 돌렸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프로 선수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불안감과 두려움, 생소함이 뒤섞인 작업이다. 설령 이 모든 것을 이겨낸다 하더라도 결과가 이전보다 더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그럼에도 정수빈(두산)은 타격폼에 대한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올해도 그는 자신의 타격폼을 수정했다. 정수빈은 “내가 타격폼에 변화를 주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 노력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내게 타격폼 변화는 야구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라고 말했다.
프로 입단 때부터 정수빈(두산)은 재능이 충만했다. 빠른 발을 바탕으로 한 기동력과 주루센스, 강한 어깨와 몸을 사리지 않는 수비능력은 여전히 리그 최고 수준이다. 특히나 곱상한 외모 뒤에 가려진 야구에 대한 집념과 독기는 그의 또 다른 매력이다. 정수빈의 성장을 옆에서 지켜봤던 김경문 감독(현 NC 감독)은 “정수빈은 독종이다. 신인 때부터 1군에서 이것저것 고생도 시켜가며 지켜봤는데, 나름의 싸움수가 있더라”면서 “스타가 될 선수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수빈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몸쪽 공과 변화구 대처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두산의 한 전력분석원은 “정수빈이 타격에서 문제를 드러낼 때 보면 스윙할 때 축이 되는 오른쪽 발과 어깨가 일찍 무너지면서 공을 끝까지 보고 대처하지 못한다”고 귀띔했다. 다시 말해 타격 시 중심축이 일찍 무너진다는 것인데, 이 때문에 정수빈은 ‘수비와 주루가 좋아도 타격 능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반쪽짜리 선수’라는 오명에 시달리기도 했다.
정수빈은 “늘 타격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주위에서 ‘반쪽짜리 선수’라고 부르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기분은 좋지 않지만, 사실이라 할 말은 없었다. 잘 치는 형들을 보면 각자 자신만의 확실한 폼이 있는데, 나는 그게 없었다. 내 폼에 대한 확신도 없었기 때문에 늘 바꾸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그때 생긴 버릇이 틈이 날 때마다 잘 치는 사람들의 타격 영상을 계속 찾아보는 일이었다.”
동영상 공부는 변화의 시작이 됐다. 정수빈은 2014년 넥센 서건창의 타격폼을 모방하면서 타격 상승세를 탔고, 프로 데뷔 5년 만에 생애 첫 타율 3할이라는 기록도 달성했다.
정수빈 “예전에는 타석에 들어서면 '어떻게 안타를 쳐야하나'라는 고민을 먼저 했는데, 그게 해결이 됐다. 타격에 대한 고민이 서서히 풀려나가는 기분이다. 당시 서건창 선수의 타격폼을 모방했다는 것이 너무 이슈가 됐는데, 이제는 내 노력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더 이상 서건창 따라하기가 아닌 정수빈 만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해야한다.”
그의 ‘정수빈 찾기’ 노력은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정수빈 “김태형 감독님이 스프링캠프에서 ‘이제 타격폼 좀 그만 바꾸라’고 말하시더라. 내가 많이 바꾸긴 한 것 같다.(웃음) 좋았을 때는 좋은 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슬럼프에 빠지거나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면 과감하게 기존의 타격폼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는다. 이전에 내 타격 영상을 찾아봤는데, 똑같은 폼이 하나도 없더라. 방망이를 내는 타이밍이나 팔 위치 심지어 다리를 들었다 내리는 동작도 다르더라. 아무래도 잘 치는 타자들의 타격폼을 연구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줘서 그런 것 같다. 올해도 타격폼에 변화가 생겼다.”
2016년판 정수빈의 타격폼은 무엇일까.
정수빈 “배트를 좀 더 짧게 잡았다. 그리고 타격 준비자세에서 팔을 좀 더 몸쪽으로 붙였다. 배트 스피드를 빠르게 하기 위해 변화를 준 부분들이다. 이전에 중심축이 무너지는 게 문제가 됐는데, 타격폼에 변화를 주는 과정에서 많이 좋아졌다. 아직까지 부족함을 느끼고는 있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어 기분은 좋다. 타격폼을 수시로 바꾸는 부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알지만, 내게 바꾸지 않는 것은 노력하지 않는 것과 같다. ‘나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면 은퇴해야할 것 같다.(웃음)”
정수빈은 올해는 타격 뿐 아니라 ‘도루’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지난해 무릎 부상으로 15도루에 그치며 아쉬움을 남겼기 때문이다.
정수빈 “체중을 감량하는데 힘을 썼다. 지금 현재 72kg정도 체중을 유지하고 있는데, 확실히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신인 때와 몸무게가 비슷하다. 지난해 불어난 체중 탓에 무릎 통증이 심해져 많이 뛰지 못했다. 나가서 안 뛰다 보니까 뭔가 내가 할 일을 안 하는 것 같아서 올해는 많이 뛸 생각이다. 그래서 체중도 줄이고 겨우내 운동도 열심히 했다. 올해는 팀이나 팬들이 정수빈에게 기대하는 야구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