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다옹] '국민노예'를 사랑했던 팬들을 위한 약속
16.04.18 18:46
병마와 싸우고 그라운드로 돌아온 LG 정현욱은 ‘전화위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위암 판정을 받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암 투병으로 그라운드를 떠나 있었던 시간이 그에게 또 다른 배움이 됐기 때문이다. 정현욱은 “그동안 내가 1군에 있는 걸 당연히 여겼던 것 같아요. 누군가에겐 꿈같이 느껴지는 시간들을 저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낼 때가 많았죠. 어쩌면 평생 모를 수도 있었는데, ‘기회’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겨울 마지막 항암치료 후 정현욱은 그라운드 복귀를 위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그동안 틈틈이 했던 체력 훈련으로 다져진 힘과 수많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야구의 감을 찾아 나가기 시작했다. 대만 2군 스프링캠프는 그가 기술의 숙련도를 높이는데 큰 힘이 됐다. 양상문 LG 감독은 정현욱의 복귀 시점을 5월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양 감독은 정현욱에 대해 “(복귀하면)기존에 했던 중간투수 역할을 맡길 생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야구가 생각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18kg이나 감량된 체중만큼이나 근력도 함께 빠지면서 힘이 떨어졌다. 시속 150km에 육박했던 패스트볼의 구속도 140km 초중반대로 떨어졌다. 구위도 아직 예전만 못하다. 정현욱은 “마음 같아서는 150km도 금방 던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마운드에 올라가면 어림도 없더라.(웃음) 나름의 생존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시간은 좀 걸릴 것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웃는다. 매일 야구장에 출근할 수 있는 것이, 어린 선수들과 함께 어울리며 이전에 자신의 열정을 다시금 떠올리는 일이 다 행복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약속한다. 국민 노예를 사랑했던 팬들을 위해 마운드에서 희망을 던지겠노라고.
- 현재 몸 상태는 어떤가.
정현욱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으며 체중이 18kg 정도 빠졌고, 원래 가지고 있던 근육도 함께 빠졌다. 대만 캠프를 거치면서 힘도 붙고 몸 상태도 많이 좋아졌긴 한데, 완벽하지는 않다. 2군 경기에 꾸준히 나서고 있지만, 100%는 아니다. 구속도 끌어올려야 한다. 그래도 어깨나 팔이 아프지 않으니 시간이 갈수록 좋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은 과식이나 몸에 나쁜 것은 멀리하고 있다. 위암 완치 판정까지는 5년 정도 시간이 걸리지만, 정상인들과 똑같이 생활하고 있다. 감독님이 5월 복귀를 말씀하셨는데, 만족할 수준이 되려면 시간은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 열심히 하고 있다.”
- 위암 투병 사실을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고 들었다. 구단 사람들에게도 함구령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현욱 “굳이 ‘나 아프다’고 티를 내거나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이겨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구단에는 최대한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수술 후 복귀했을 때 내가 위암에 걸렸는지 몰랐던 사람들은 살이 많이 빠진 것을 보고 걱정하기도 했다. 팀에 돌아온 후 트레이너들이 많이 도와줬다. 다들 ‘네가 1군에서 공을 던지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고 말한다. 내가 고생한 것 못지않게 옆에서 함께 마음고생을 해서 성공적인 복귀로 보답하고 싶다.”
- 정현석(한화)은 ‘위암 투병 후 야구를 대하는 태도와 생각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본인은 어떤가. 변화가 있나.
정현욱 “있다. 프로에 입단해서 힘든 생활을 안 해 본 것도 아니었지만, 막상 1군에 오래 있다 보니 그냥 거기에 젖어 살았던 것 같다. 1군에 있는 게 당연시 여겨졌고, 기회라는 것에 감사함을 잊고 살았다. 2014년도에 야구가 뜻대로 되지 않아서 굉장히 무기력해 있었다. 경기에 나가도 ‘될 대로 되라’라는 생각으로 공을 던졌다. 아프고 나니 ‘그때 내가 왜 좀 더 절실하지 않았나’ 후회가 된다. 2군에 있는 어린 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2군 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정현욱 “지난해부터 2군에서 어린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느낀 것이 많다. 내가 당연시 여겼던 1군에서의 기회가 누군가에게는 꿈이고 절실한 일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2군에 있는 선수들이 1군에 올라갈 기회를 잡기 위해 열심히 훈련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됐다. (이)병규(등번호9) 형도 2군에 있으면서 생각이 많아진 것 같더라. ‘2군에서 보낸 시간 없이 선수 생활 끝냈다면 소중함을 몰랐을 것’이라고 말하더라. 배움에는 나이도 연차도 없는 것 같다. 지금 1군에 있는 선수들은 누군가의 기회를 대신 받았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나도 만약 기회를 얻어 1군에 올라간다면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하겠다.”
- 마운드 위에서 당당했던 정현욱의 모습은 언제쯤 볼 수 있나.
정현욱 “정현석이 위암 수술 후 복귀해서 경기에 나서는 모습을 보며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원종현(NC)과 관련된 기사도 잘 보고 있다. 나는 그 선수들보다 나이도 많고, 걸어갈 시간 보다 걸어온 시간이 더 많다. 다시 전성기 때로 돌아가겠다는 것은 욕심 같다. 아프기 전에는 무조건 마운드에서 잘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는데, 그 과정 속에서 ‘열심히’라는 마음을 잊고 산 것 같다. 때문에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남부끄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운드에서 당당해지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겠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기회가 온다면 응원해주신 팬들과 주위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던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