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다옹] 벌투, '혹사'와 '교훈'의 줄다리기
16.04.19 20:36
‘벌투(罰投)’의 사전적 의미는 ‘농구, 핸드볼 등에서 상대편이 반칙을 범하였을 때 일정한 지점에서 아무런 방해 없이 공을 던지는 일’을 말한다. 어찌된 일인지 벌투가 야구에 적용되면 그 의미와 내용이 달라진다. 야구에서 벌투는 팀의 결정권자인 감독이 부진한 투수의 교체타이밍을 미루며 마운드에서 계속해서 공을 던지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교체타이밍을 갖고 벌투를 논할 수는 없다. 벌투의 전제는 ‘상식에서 벗어난 마운드 운영’이다.
사실 현장에서는 벌투 논란에 난색을 표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투수코치는 “한 시즌을 끌고 가야 하는 감독과 팀으로서는 한 경기만 생각할 수는 없다. 때문에 투수 운영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지는 경기에 무리하게 불펜을 가동할 수 없다. 때에 따라서는 투수들도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 임기준(KIA)의 벌투 논란이 일어났을 당시 김기태 KIA 감독은 "벌투가 아니었다. 다음 일정상 투수진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힌 바 있다. 즉 감독으로서는 ‘팀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조금 다른 의미의 벌투도 있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이유 없는 투구는 없다. 벌투라는 표현은 애매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해당 선수가 깨닫는 바가 있다면 의미가 있다. 충분히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력이 있는 선수고,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를 알아들을 법한 선수라면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다”면서도 “감독의 감정이 실려서는 절대 안된다”고 경계했다. 결국 벌투는 ‘혹사와 희생’ ‘감정과 교훈’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를 한다는 얘기다.
최근 그라운드에 벌투와 관련된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한화 송창식이 지난 14일 대전 두산전 1회 2사 만루 상황에 등판해 4⅓이닝 9피안타(4홈런) 2볼넷 12실점(10자책)을 기록했다. 스코어가 0-1일 때 등판했던 그는 2-16이 될 때까지 마운드에 서 있었다. 등판하자마자 만루홈런을 허용한 그는 이닝이 거듭되는 내내 부진을 면치 못했다. 어쩐 일인지 송창식을 지켜보는 한화 벤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송창식은 이날 한 경기 개인 최다 실점(2004년 4월 27일 대전 두산전 9실점)을 경신하는 굴욕을 맛봤다. 투구수는 90개. 경기를 보는 내내 송창식의 계속되는 등판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령탑이 김성근 한화 감독이었기에 더 그랬다. 그리고 이는 곧 ‘벌투 논란’으로 이어졌다. 송창식이 과거 혈액 장애의 일종인 버거씨병(폐쇄성 혈전 혈관염)을 앓았다는 사실까지 더해져 팬들은 김성근 감독의 결정에 분노했다.
김성근 감독은 과거에도 투수들의 벌투 논란의 중심에 섰다. SK 감독 시절인 2008년 조영민(현 SK 스카우트)의 120구와 2011년 김광현(SK)이 던진 147구가 그랬다. 한화 감독으로 부임한 지난해 시범경기에서 유창식의 117구도 벌투 논란에 휩싸였다.
그때마다 김성근 감독은 벌투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다. 김 감독은 조영민에 대해 “초반에 대량 실점하고 경기를 내줬다고 생각했다. 조영민으로 막아 최대한 투수를 아끼려 했다”고 말했다. 김광현의 벌투 논란 때에는 “좋은 공을 던지면서도 스스로 던지는 법을 모른다. 컨트롤, 완급조절, 타자를 보는 눈 등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유창식과 관련해서는 벌투라는 표현에 탐탁지 않아 하며 “스트라이크를 제대로 던질 줄 모른다. 투수가 많은 공을 던져가며 감을 익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송창식 벌투 논란도 해석에 따라 혹사가 될 수도, 선수를 위한 교훈의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됐건 팬들의 마음이 씁쓸한 이유는 ‘경기 포기’라는 단어를 지워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날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봤던 한화 팬 김지영(32)씨는 “이전에 한화가 연패에 빠졌을 때도 꾸준히 경기장을 찾았다. 이기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지더라도 선수와 벤치가 포기하지 않고 9회까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할 때가 많았다”면서 “이날 경기를 보면서 팬들이 포기하지 않은 경기를 감독이 먼저 포기한 것 같아 기분이 안 좋았다. 한화를 응원하기 위해 야구장을 찾아온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대 총선의 화두는 ‘민심의 변화’이었다. 기존 정부와 여당에 실망한 국민이 투표를 통해 16년 만에 여소야대(與小野大)라는 결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노력하고 굽어살피지 않는 한 영원한 사랑과 믿음은 없다. 이는 야구판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