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다옹] 김동호의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
16.04.29 15:48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삼성 김동호가 들려준 그의 그라운드 인생사가 그랬다. 그는 수없이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꿈에서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미치도록 하고 싶었던 야구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고, 주위 사람들에게 ‘너는 안 돼’라는 모진 말도 들었다. 그때마다 그는 상처받은 가슴을 움켜쥐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럼에도 김동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두 차례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했을 때도, 롯데 불펜 포수로 시작해 한화 육성선수 입단 후 방출 통보를 받았을 때도 그는 ‘나는 할 수 있다. 언젠간 1군 마운드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을 되뇌었다. 이는 곧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이 됐고, 여기에 시간과 노력이 쌓여 현실이 됐다.
김동호는 올해 삼성 마운드의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나가는 경기마다 안정감 있는 투구를 선보이며 주축 선수 부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삼성 벤치를 흐뭇하게 하고 있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김동호의 컨트롤이 많이 잡혔다. 새로운 투수 중에서 기대할 만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삼성 관계자는 김동호에 대해 “인간승리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라고 했다.
2014년 30세라는 나이에 삼성에 입단해 마운드 위에서 뒤늦게 꽃을 피운 그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 인생 첫 시련이 대구고 졸업 후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한 일인 것 같다. 이후 포지션을 포수에서 투수로 바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김동호 "특별한 이유라기보다 고등학교 때부터 공을 던지는 것을 좋아했다. 포수를 하면서도 투수들을 부러워했다. 나도 강속구를 던질 자신이 있는데, 어려서부터 해오던 것이라 포수를 쉽게 놓을 수는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에 진학했는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당시 캐치볼 파트너가 왼손 투수였다. 아무래도 왼손 투수가 귀하다보니 감독님이 그 선수를 유심히 지켜보기 위해 우리 쪽에 있었는데, 그때 내게 ‘너도 투수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다. 마침 투수를 하고 싶었던 터라 고민 없이 ‘하겠다’고 했다."
- 그토록 하고 싶었던 투수를 했을 때 느낌이 어땠나. 뒤늦은 포지션 변경이라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
김동호 "맞다. 굉장히 어려웠다. 포수로 앉아서 공을 받을 때는 ‘저 투수는 왜 저게 안 되지’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내가 막상 투수가 돼보니 진짜 힘들더라. 포수로서 가지는 고충이랑 투수가 갖고 있는 어려운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이해를 하고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좀 걸렸던 것 같다. 확실히 투수도 쉬운 것 아니었다. 그래도 포수를 오랫동안 해보고 투수를 한 케이스라 포수의 마음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 경기에 나가서 공을 던지고 포수가 내 공을 받기 위해 블로킹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해봤기 때문에 블로킹을 하면서까지 공을 몸으로 막아내는 일이 얼마나 힘든 줄 알기 때문이다."
- 포지션까지 변경하며 심기일전했지만, 대학교 졸업 후에도 프로 지명에 실패했다. 상실감이 컸을 것 같다.
김동호 "야구를 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 너무 서글펐다. 나는 재능도 부족하고, 운도 안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세상에 외면을 당한 느낌이었다. 고등학교 때 포수로 뛸 때도 수비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다. 도루저지율도 상당히 좋았고, 우승멤버였다. 그런데도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더라. 주위에서 ‘너는 안 된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투수 할 때부터 ‘언젠가는 1군 무대에 설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 1군 마운드에 대한 꿈이 있었기 때문에 롯데에서 불펜포수 일을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텐데.
김동호 "당시에 고등학교 은사님이 롯데 1군 매니저였다. 그분이 ‘네가 고등학교 때 포수를 했으니까 롯데에 와서 불펜포수 일을 해봐라’라고 말씀하셨다. 불펜포수 일을 하면 어찌 됐건 야구판에 몸을 담고 있는 것이니까 나쁠 것은 없다고 봤다. 1군과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분위기도 익힐 수 있었고, 코칭스태프와 안면을 트는 것도 큰 장점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생각만큼 일이 쉽지 않았다. 자존심 상하는 부분도 있었고,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처음에는 안 하겠다고 했다. 그냥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입단테스트를 볼 생각이었다. 그때 롯데 직원으로 있었던 동료가 ‘자존심만 버리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하더라. 그 말에 다시 시작했다. 경기 준비를 하고, 선수들 공을 받으면서도 틈틈이 내 운동을 했다. 당시 불펜포수 동료에게 ‘내 공을 받아주면 안 되겠니’라고 진지하게 부탁을 해서 남는 시간에는 공도 던졌다. 하루 종일 공을 받는 일을 하는 데에도 내 부탁을 들어준 그 친구에게 정말 고마웠다. 그런 도움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 노력의 결실이었을까. 2009년에 한화에 육성선수로 입단했다. 하지만 결과는 방출이었는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김동호 "한 마디로 나태했다. 그때 프로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큰 꿈이었고, 그 꿈을 이뤄서 그랬는지 끝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육성선수라는 신분이 계속 가능성을 보여주고 능력을 검증받아야 하는데, 예전만큼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올림픽을 위해 열심히 준비한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고 나서 겪는 공허감 같은 것을 느꼈다. 한화에서 그런 실패를 겪었기 때문에 더 단단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반성도 많이 했고, 배움을 얻었던 시간이었다."
김동호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는 2편(30일)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