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다옹] 김재환 "실패 해봤기에 두려운 것 없다"
16.05.04 15:26
‘포수 하느라 고생했다.’
두산 김재환이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쉬움보다는 속 시원함이 담긴 말투였다. 그리고 그는 한때 자신의 숙명처럼 여겨졌던 포수 마스크를 내려놓은 속사정에 대해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김재환은 고교 시절 소위 말해 잘 나가는 포수였다. 고1 때 부상으로 유급을 하긴 했지만, 2006년 청룡기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서 홈런상을 받는 등 당시 고교 야구계에서 최고의 공격형 포수로 평가받았다. 김재환을 눈여겨봤던 두산은 200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번으로 그를 지명했다.
그에게 꿈의 무대로만 여겨졌던 프로가 냉혹한 현실로 바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입단 첫해부터 수많은 기대감 속에서 살았던 김재환은 늘 실수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살았다. ‘잘해야지’라는 믿음보다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이 점점 그를 갉아먹었다. 결국 그는 입스 증후군(YIPS・실수에 대한 중압감과 불안감으로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증상)에 빠졌다. 경기 중에 수비에서 어이없는 실수들을 연발했고, 위축된 탓에 강점인 공격력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김재환 “신인 때부터 심리적인 부담감을 많이 느꼈다.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긴장되고 불안해서 땀이 날 정도였다. 스스로 ‘고쳐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는 안 될 거야’라는 불안감을 안고 살았다. 벗어나기 위해 죽어라 연습을 해도 이게 잘 던지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고 못 던지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니까 몸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다르더라. 좌절도 많이 했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포수를 했기 때문에 쉽게 놓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포수 마스크를 내려놓았다. 상무 제대 후인 2011년, 당시 두산의 사령탑이었던 김경문 감독(현 NC 감독)이 김재환의 타격 재능을 살리기 위해 1루수 기용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김재환 “상무에 있으면서 수비 부담감 없이 경기에 나갔을 때 좋은 성적을 냈다. 포수를 하면서 프로에서 힘든 시간들을 겪어서 그런지 몰라도 처음에는 다른 기회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근데 그것도 잠깐이더라. 포지션 변경 후에도 1군에서 뛸 기회가 자주 없었다. 물론 내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지만, 바뀐 포지션에 적응하는 것도 사실 쉽지 않았다. 이러다가 이도 저도 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럴수록 포수에 대한 미련이 더 커졌다.”
포수 마스크를 쓸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2013시즌 후 당시 강성우 두산 배터리코치(현 삼성 코치)가 그에게 포수 복귀를 제안했고, 김재환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입스를 겪었던 고통보다 포수 포지션에 대한 미련과 애정이 강하게 남아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김재환 “강성우 코치님이 '포수를 다시 해보지 않을래'라고 물었을 때 기뻤다. 이미 내가 한 차례 실패를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쟤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꼭 해내야겠다’라는 강한 의지로 덤벼봤지만, 쉽지 않더라.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계속 나를 괴롭혔고, ‘열심히 하다 보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점점 ‘역시 나는 안 되는구나’로 바뀌더라.”
결국 김재환은 포수로서의 두 번째 도전에도 실패했다. 실패라는 단어는 늘 뼈아프지만, 그에게 이번 도전은 도리어 포수 마스크를 미련 없이 내려놓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김재환 “만약 다시 한 번 더 포수로 도전을 하지 않았다면 평생 포수에 대한 미련 속에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한 번만 더 해보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결국 실패를 하긴 했지만, 도전하고 부딪쳐봐서 얻은 결과라 오히려 만족한다. 해보지 않고 후회했던 것보다 낫다. 지금은 홍성흔 선배랑 나랑 똑같은 것을 겪었기 때문에 서로 말이 잘 통한다. 이제는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올 시즌 두산 상승세의 중심에는 김재환이 있다. 김재환은 3일 기준으로 15경기에 출장해 5홈런 12타점・타율 0.294(34타수 10안타)을 기록 중이다. 장타율은 무려 7할(0.794)에 달한다. 타격에 있어 파워는 물론 정교함까지 갖췄다는 평가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김재환이)잘 해주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재환 “올 시즌 시작을 2군에서 했다. 그게 오히려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스스로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계기가 된 셈이다. 사실 지난해까지 수비 포지션에 대한 부담감과 기회에 대한 목마름으로 힘든 시간들이 많았다. 타석에 들어서면 ‘홈런을 쳐야지’라는 욕심 때문에 힘이 들어가고 폼도 빨리 무너지더라. 그러면서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었는데, 올해는 마음을 비우고 나니 조금 더 단단해진 기분이다. 아내가 옆에서 자신감을 잃지 않게 좋은 얘기들을 많이 해준다.”
여전히 김재환에게 수비 포지션 문제는 해결해야 하는 큰 숙제다. 현재 상대적으로 수비 부담이 적은 좌익수 자리에 배치돼 훈련을 하고 있지만, 출발이 늦었던 만큼 가야 할 길도 멀다. 그럼에도 김재환은 자신감이 있다. 포수 마스크를 위해 입스를 경험하면서까지 극복하려 노력했던 지난 시간들이 그에게는 성장의 자양분이 됐기 때문이다.
김재환 ”실패를 해봤기 때문에 이제 두려운 것도 없다. 실패를 하고 실수를 한다고 해도 세상이 무너지거나 야구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더라. 다 살 방법이 있더라. 이제는 뭐든 자신감을 갖고 하고 있다. 늦게 시작한 만큼 노력도 많이 해야 한다. 아직은 내가 전문 외야수도 아니다. 그렇다고 확실한 1루수도 아니다. 하지만, 어디든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