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다옹] 달인 류택현, 평범한 재능을 빛나게한 비범한 노력
16.05.18 16:38
[야옹미인 ‘달인을 만나다’] 열정과 투지가 넘치는 그라운드에는 자신만의 생존 방법으로 별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달인’이라 부른다.
류택현(LG 육성군 투수코치)의 현역 시절은 화려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가 맡은 역할이 ‘원 포인트 릴리프’ 또는 ‘왼손 스페셜리스트’의 범주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불굴의 집념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강해지기 위해 몸부림쳤다. 불혹의 나이에 은퇴 문턱까지 갔다가 팔꿈치 수술과 기약 없는 재활을 거쳐 플레잉코치로 복귀한 후 다시 선수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류택현의 철저한 자기관리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그는 마운드에 오를 기회를 잡기 위해 몸부림치던 30대에는 발가락 부상 방지를 위해 라커룸에서조차 슬리퍼를 신지 않았다. 야구를 잘하기 위해서라면 뭐든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선수로 재도전장을 내밀었던 2013년에는 42살이라는 나이에 후배들을 제치고 월등한 상위권 성적으로 체력테스트를 합격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류택현은 “나는 특출한 재능이 있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유별나다’고 할 정도로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다. 때문에 오랜 시간 마운드에 설 수 있었다”고 했다.
‘달인을 만나다-류택현 편’ 마지막 이야기는 ‘2부-류택현의 평범한 재능을 빛나게 해준 비범한 노력’이다.
- 프로에서 불펜 투수로 긴 시간을 보냈다. 흔히들 긴박한 순간에 나오는 불펜 투수의 스트레스가 상당하다고 하는데, 어땠나.
류택현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선발은 경기를 처음부터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 있다면 불펜 투수는 어떤 상황에 놓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늘 긴장한 채로 준비해야 한다. 특히나 1점 차에 주자가 깔려있는 긴박한 상황 속에 올라가면 그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공을 던지고 마운드에서 내려오면 힘이 빠지는 느낌을 받는다. 결국에는 선수 스스로가 자기 컨디션을 잘 조절하고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한다. 나도 경험이 쌓이면서 노하우가 생기더라.
- 경험으로 쌓인 노하우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면. 후배들에게 좋은 팁이 될 것도 같다.
류택현 “나는 불펜에서 몸을 풀라는 코칭스태프가 지시가 나오면 100%의 힘을 쓰지 않는다. 한 70~80%로 어깨를 풀고, 밸런스를 잡는 데 집중한다. 일종의 말도 안 되는 자신감 같은 건데, 사실 게임 나가기 전에 불펜에서 공을 많이 던지는 선수들을 보면 다 불안한 마음 때문에 그렇게 한다. 사실 불펜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공을 바깥쪽, 안쪽, 위, 아래 코스로 5개씩만 던져도 20개다. 여기에 대타로 누가 나올 것인지 미리 생각해서 더 던진다. 그러다 보면 계속해서 개수가 쌓인다. 불펜에서 5개 더 던진다고 덜 맞고, 안 던진다고 해서 맞는 것도 아니다. 불펜에서 아무리 좋다고 해도 마운드에서 좋은 것도 아니다. 경기 중 불펜의 용도는 마운드를 올라가기 전에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고 점검하는 곳이다. 연습장이 아니라는 것만 알아뒀으면 좋겠다. 투수의 실력은 결국 1년을 놓고 보는 것이다. 그 순간의 불안감에 너무 매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 현역 시절 ‘철저한 자기관리’로 많은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사소한 도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류택현 “프로에 입단해서 오랜 시간을 2군에서 보냈다. 그때 깨달은 것이 프로에서는 결코 내가 특출한 재능을 가진 선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내가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평범하지 않은 노력뿐이었다. 노력만으로 재능을 극복하고 싶었다. LG로 트레이드된 이후 2002년부터 기회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때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부상당하지 않으려고 정말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기 시작했다. 심지어 발가락을 다칠까 봐 슬리퍼는 신지도 않았고, 늘 정해진 시간표대로 살기 위해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늘 스스로를 틀에 가두고 참아내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있었다. 그래도 야구를 잘하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희생은 얼마든지 감내해 낼 수 있었다.”
- 그럼에도 2010년에 자비까지 들여 팔꿈치 수술을 감행했던 일은 힘든 결정이었을 것 같다. 구단에서는 은퇴를 권유하기도 했는데.
류택현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한 수술이었기에 수술에 대한 고통과 재활을 할 때의 외로움, 성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은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무소속이 됐다는 상실감은 상당히 크더라. 실제로 재활을 할 때 LA에 있는 누나네 집에 가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를 타서 출입국 카드를 쓰는데, 직업란을 두고 한참을 고민했다. 예전 같았으면, 망설임 없이 팀 이름을 썼을 텐데 무소속인 입장이라 그냥 비워뒀다. 결국 입국 심사 때 불법 취업하려는 사람들과 함께 40분간 붙잡혀 있었다. 그때 참 서럽더라. 이래서 어딘가 속해있다는 것이 참 행복한 일인 것을 알았다. 결국 이후에 다시 LG 유니폼을 입고 야구를 했는데, 그때 이전보다 더 절실함을 안고 했던 것 같다.”
- 결국 KBO 투수 통산 최다 경기 출장(901경기) 기록을 달성했다. 많은 후배 선수들이 존경의 뜻을 표하기도 했는데. 이 기록은 류택현에게 어떤 의미인가.
류택현 “나에 대한 보상이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스스로 결정하고 복귀해서 세운 기록이다. 힘든 순간에도 외부 목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한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다. 프로 무대에 대한 막연한 꿈을 안고 살았던 꼬마 선수가 커서 야구사에 발자취를 남길 수 있어서 기쁘다. 최다 경기 출장은 내 인생에 흔적 같은 것이다.
- LG에서 육성군 코치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어떤 밑그림을 그리고 있나.
류택현 “내가 맡고 있는 파트가 육성군이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조심스럽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선수들에게 꾸준함을 강조하고 있다. ‘왜 안 되니’라는 말보다 용기와 동기부여를 심어주기 위해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 요새는 명언 집과 여러 책들도 보고 있다. 지난해 (임)지섭이를 통해 중요한 책임을 맡았었는데, 결국 실패를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름의 배움을 얻었다. 선수 시절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코치가 된 지금도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고 성장해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