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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다옹] 순수 해외파 첫 상무 입대 김선기의 또 다른 도전

16.05.2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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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에서 방출된 후 빅리그 진출의 꿈은 접었지만, 김선기(상무)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실패 속에서 얻은 배움이 그에게는 큰 울림이 됐다. 김선기는 “결국 메이저리그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많이 배우고 돌아왔다. 상무에 입대한 덕분에 본격적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2010년 신인드래프트 최대어로 손꼽혔던 김선기는 청주 세광고 졸업 후 미국행을 선택했다. 좋은 신체조건과 유연성을 기반으로 한 부드러운 투구폼을 갖춘 김선기의 가능성을 눈여겨본 시애틀 매리너스 측이 그의 영입에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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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떠난 미국 땅에서의 도전은 쉽지 않았다. 1년 만에 루키리그에서 싱글 A로 승격되면서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그뿐이었다. 수없이 눈물 젖은 빵을 먹었으며, 심리적 부담감과 낯선 무대에서 느끼는 어색함에 팔이 말리기까지 어려움까지 겪었다. 자신감이 충만했던 첫해와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의 벽 앞에 무기력해졌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생각에 몸부림 쳐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미국 진출 4년 만에 도전의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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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신인선수 해외 진출 규정상 2년간 KBO 소속 구단과 선수 계약을 체결할 수 없었던 그는 2014년에 한국에 돌아와 모교인 세광고에서 후배들과 함께 어울려 야구를 했다. 지난해에는 상무에 지원해 실기·신체·인성검사를 모두 통과하며 순수 해외파로서는 처음으로 상무에 입대했다.

 김선기에게 상무 입대는 벼랑 끝에서 잡은 기회와 같다. 국내 프로 무대의 도전을 준비 중인 그에게 상무가 속한 퓨처스리그는 좋은 쇼케이스 무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선기는 “상무 제대 후 드래프트를 통해 국내 프로팀에 갈 수 있다. 상무에서 내 능력을 얼마만큼 보여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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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무 입대는 어떻게 선택하게 됐나.

김선기 “시애틀에서 방출된 후 2014년 4월 한국에 들어왔다. 모교인 세광고에서 훈련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나이가 나이인지라 군입대에 대한 고민은 늘 하고 있었다. 우연하게도 세광고 감독님과 김기남 상무 코치님이 서로 아는 사이라 상무 입대 가능성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차피 현역으로 가야 하는 것이라면 상무에 입대해 경기에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 2009년 고교 에이스로 이름을 떨쳤다. 졸업 후 미국 진출을 선택했는데, 프로 입단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김선기 “고등학교 3학년 3월부터 시애틀과 얘기가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내 프로팀에라도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기회가 온 김에 잡고 싶었다. 그래서 큰 고민 없이 처음부터 그쪽으로 마음이 쏠렸던 것 같다. 미국 쪽에서도 내 가능성에 대해 좋은 얘기들을 많이 해줬다. 폼이 부드럽고 부상을 잘 안 당할 것 같다고 하더라. 자신감도 있었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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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진출 첫해인 2010년에 루키리그에서 6승 2패로 호투했다. 첫 시즌에 성적도 좋아 자신감도 얻었을 것 같은데.

김선기  “아버지께서 고등학교 때까지 야구를 하셨다. 내가 야구를 시작한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아버지께서 내 캐치볼 상대를 해주셨다. 미국에 가면서 다른 말씀 안 하시고 ‘배짱 있게 하라’고 하셨다. 그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처음에 미국을 갔을 때 시설이나 훈련 스케줄, 경기 등 많은 것이 새로웠다. 특히나 실력 있는 선수들이 많아서 의욕도 넘쳤던 것 같다. 다행히 적응을 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구속도 시속 152km 나왔다. 그때는 오히려 첫 해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감 있게 했던 것 같다.”

- 이후 싱글A에서 힘든 시간들을 겪었다. 루키리그와의 격차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왔는데.

김선기 “첫 해 때에는 힘든지 모르고 했는데, 2년 차가 되면서 팔이 말리더라. 심리적인 부분이 컸다. 2년 차 스프링캠프 때 팀 동료랑 캐치볼을 하는데 캐치 상대가 내 방식에 대해 불만을 표하더라. 나는 캐치볼을 해도 강하게 던지는 편인데, 상대는 그게 맘에 안 들었던 것이다. 결국 내가 아닌 다른 사람만을 배려하다보니 내 투구밸런스가 무너지더라. 나는 분명 직선으로 던진다고 던지는데 공이 내가 마음먹은 대로 가지 않았다. 그때부터 던지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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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을 던지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얘기는 입스를 경험했다는 것인가.

김선기  “그렇다. 3년 차에도 시즌 초반에는 흐름이 좋았는데, 결국 또 제자리더라. 그러면서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다. 그때부터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고민이 많이 됐다. 사실 구단에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얘기를 했지만, ‘아직 어리니 조금 더 해보자’라는 답을 들었다.”

- 미국에 있으면서 마이너리그 생활이 길었기 때문에 ‘눈물 젖은 빵’에 대한 기억이 있을 것 같다.

김선기  “시즌이 되면 집을 따로 구해서 지내는데,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 차를 갖고 있진 못했다. 집 근처에 상점이 없어서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는 차를 타고 멀리까지 나가야 했는데, 동료들에게 차를 빌리지 못하면 굶을 때도 있었다. 그때는 배고픔 하나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이 굉장히 슬프게 느껴지더라.”


'순수 해외파 첫 상무 입대 김선기의 또 다른 도전' 2편이 내일(5.28) 이어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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