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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다옹] 삼세번의 기회 끝에 피어난 박건우

16.06.0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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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당시 두산의 2군 사령탑이었던 박종훈 NC 육성이사는 스프링캠프 명단 구성 문제로 고민하던 김경문 감독에게 "당장 1군에서 백업 외야수로 요긴하게 뛸 수 있는 선수를 찾는다면 정수빈을, 미래 주전 외야수이자 중심 타자로 성장할 선수를 원한다면 박건우를 데려가십시오”라고 말했다. 고민 끝에 김경문 감독은 정수빈을 선택했다.

선택, 곧 기회를 얻지 못한 박건우는 인고의 시간을 거쳤다. 프로 입단 후 경찰청 입대까지 1군에서 단 5경기에 출장하는 데 그쳤다. 제대 후에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지만, 군대 동기이자 팀 선배인 민병헌의 그늘에 가려 누군가를 대신하는 역할에 만족해야했다. 스스로 부진한 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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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인생에 세 번의 기회는 있다고 했던가. 박건우의 야구 인생에도 세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 시즌 후 김현수(볼티모어)가 FA(프리에이전트) 자격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팀 외야 라인에 공백이 생긴 것이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김현수의 대체후보 1순위로 박건우를 점찍었고,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기회에 박건우는 절실하게 매달렸다. 그리고 그 절실함은 올 시즌 그라운드 위에서 실력으로 증명되고 있다. 김태형 감독은 “박건우가 2~3단계는 더 성장한 것 같다”고 흐뭇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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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9일 LG전에서 펜스에 부딪히는 아찔한 상황이 있었는데, 현재 몸 상태는 어떤가. 

박건우  “검사 결과 큰 이상은 없었다. 이전에 수술을 했던 무릎이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이다. 무릎에 물이 좀 차있긴 한데,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요령이 부족하고 경기에만 집중하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다. 앞으로 조심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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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스프링캠프 때부터 ‘김현수 대체자’로 관심을 받았다. 박건우의 야구 인생에 기회가 찾아온 셈인데. 

박건우  “내가 아무리 잘한다고 하더라도 (김)현수형을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사실 메이저리그는 아무나 가는 곳도 아니고, 현수 형이 이제까지 해왔던 것을 생각하면 내가 메울 수 있는 공백도 아니다. 그래서 김현수 대체자라는 말에 대한 부담감을 갖진 않았다. 다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생각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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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까지 누군가를 대신하는 역할만 했다면 올해는 위치가 달라졌다. 주전으로 발돋움 한 모습인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박건우  “지난해까지만 해도 나는 1군 엔트리에 이름이 있지만, 매일 경기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누가 아프거나 경기 상황에 따라 대타로만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늘 잠들기 전에 ‘내일은 경기에 나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라졌다. 매일 경기에 나가다 보니 잠들기 전가지 ‘내일 저 투수를 상대해야하니까 어떻게 해야겠다. 다음 주에 누구랑 경기를 하면 어떤 투수가 나오겠지 미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확실히 기회를 보장받다 보니 안정감도 생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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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즌 초반에 잠시 어려움을 겪더니 곧 자리를 잡았다. 많은 야구 전문가들이 ‘박건우가 김현수의 공백을 잘 메워주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데. 

박건우  “올해 시즌 초반에 흐름이 좀 안 좋아서 의기소침했던 게 사실이다. 타석에서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하루는 김태형 감독님이 불러서는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못 친다고 누가 뭐라고 하냐. 왜 혼자 주눅 들어 있냐. 나는 아무 말 안 할 테니까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시더라. 그 말을 듣는데 뭔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팀 내에서 어린 선수이기 때문에 감독님이 어렵긴 한데, 옆에서 겪어보니 따뜻한 면이 많으신 분 같다. 경기 전에도 가끔씩 ‘한 번 치고 와’라고 하시면서 장난스럽게 엉덩이를 차시는데, 그게 다 편하게 해주고 긴장 풀어주려고 하시는 행동이다. 감독님 덕분에 조금 더 편하게 야구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 김현수와는 자주 연락을 하나. 

박건우  “자주 한다. 얼마 전에도 통화했다. (김)현수형이 미국에서도 경기를 보는 것 같더라. 타격에 대해서 많이 알려준다. 좋은 부분과 고쳤으면 하는 부분을 잘 설명해준다. 도움이 많이 된다. 기술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조언을 해준다. ‘형도 미국에서 힘든데, 이렇게 하니까 마음이 좋더라’라는 등의 이야기를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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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시즌 데뷔 이후 최고의 활약을 하고 있지만, 팀 전체가 잘나가다 보니 약간 묻히는 형국이다. 억울할 법도 한데.

박건우  “맞다. 억울한 면이 있다.(웃음) 형들이 잘해도 너무 잘해서 우리 팀에서는 웬만큼 잘해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 그래도 팀 전체가 잘 나가서 좋은 게 더 많다. 형들을 보면서 나도 더 하려고 노력하고, 형들도 잘되니까 후배들을 위해 하나라도 더 신경 써주려고 한다. 팀 분위기도 상당히 좋다. 팀이 잘 나가서 좋은 게 더 많다.”

- 리드오프 역할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김태형 감독은 “이대로라면 건우가 1번으로 나가는 게 괜찮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박건우  “나는 선구안이 좋은 타자는 아니다. 볼넷도 많지 않다. 하지만, 꼭 1번 타자라고 해서 공을 많이 봐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한다. 물론 출루율은 좋아야 한다. 나는 다른 느낌의 1번 타자이고 싶다. 단타를 치고 나가서 상대를 흔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장거리 안타를 치는 것도 매력이다. 사실 1회에만 1번 타자지 경기를 하다 보면 큰 의미가 없다. 때문에 리드오프 역할에 대한 부담감은 없다.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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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실 홈경기가 있는 날에는 다른 선수들보다 일찍 출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집이 가까운 영향이 있는 것도 같은데.

박건우  “원래 학창시절에 보면 학교와 집이 가까운 애들이 더 늦게 오거나 지각을 많이 한다.(웃음) 집이 가까워서라기보다 아직은 내가 부족한 선수인 걸 알기 때문에 형들과 똑같이 해서는 같은 선에 있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민)병헌이 형이 5번 타석에 들어서서 안타 2개를 칠 능력이 되는 사람이라면 나도 2개를 칠 수 있느냐. 솔직히 자신 없다. 부족하면 더 연습하고 노력하는 게 맞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일찍 나가는 것이다.”

- 올 시즌 목표가 있나. 

박건우  “100경기 뛰고 싶다. 프로 입단 이후에 단 한 번도 100경기를 뛰어본 적이 없다. 100경기를 뛰다 보면 안타나 홈런 등 기록도 뒤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1년에 안타 20개를 치는 게 대단하게만 여겨졌다. 100경기 출장은 생각도 안 해본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만의 야구를 이뤄가고 있는 것 같아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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