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다옹] 양배추로 기억되고 싶은 남자
16.06.04 11:14
- NC에 신고선수로 입단한 후 '다시 선수로 살게 돼 행복하다'고 한 말에서 그간의 마음고생이 묻어났다.
박명환 “LG에서 방출된 후 힘든 시기를 겪었다. 사람에게 배신당해서 힘들었고, 평생 야구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기에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재활을 하고 개인훈련을 하면서도 다시 야구를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에 살았는데, 막상 유니폼을 입으니 가슴이 뭉클했다. NC에 입단해서 어린 선수들과 경쟁하는 순간이 즐거웠다. 밖에서 봤던 것보다 좋은 투수들이 많았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투피치였는데, 복귀해서 스플리터나 커브 등 투피치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새로운 도전을 했던 것들이 좋은 재산이 됐다.”
- 돌고 돌아서 김경문 감독과 재회했다. ‘박명환이 NC에서 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좋겠다’는 김경문 감독의 말에서 애정이 묻어나기도 했는데.
박명환 "박명환이라는 사람이 지금까지 야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특별히 잘 난 것이 아니라 좋은 지도자들을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경문 감독도 마찬가지다. 사실 두산에 있을 때는 감독님의 마음에 대해 잘 몰랐는데, 코치가 되고 후배들을 가르치다 보니 감독님의 마음을 이해하겠더라. NC에서 선수 생활하면서 생각만큼 많이 도와드리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뿐이다. 이제 코치가 됐으니 지금의 위치에서 힘이 닿는 한 감독님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 NC 복귀 후 2014년에 통산 1400탈삼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1789일 만에 선발승을 거두면서 통산 103승을 완성했다. 둘 중 어떤 기록이 가장 기억에 남나.
박명환 “1400탈삼진이 흔한 기록이 아니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103승을 올린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탈삼진 기록은 1500개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103승째를 올렸을 때 팀이 중요한 시기에 있었고, 굉장히 오랜만에 선발 등판해서 얻어낸 결과라 뜻깊었다. 특히 지난해 삼성을 상대로 열세였기 때문에 꼭 팀에 승리를 안겨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김경문 감독님이 원해 칭찬을 잘 안 하는 편인데도, 그날은 ‘고생했다’고 해주시더라. 그것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다.”
- 지난해 은퇴는 언제 결정한 것인가. 마음먹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박명환 "사실 지난해 은퇴를 결정하고 많이 힘들었다. 마지막에 유니폼을 벗으면서 많이 울었다. 매일 공을 던지던 사람이 다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더라. 평생 그렇게 많이 울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박명환은 인터뷰를 하면서도 눈시울을 붉혔다.) 와이프도 옆에서 함께 가슴 아파했다. 결정적으로 김경문 감독님의 조언이 도움이 많이 됐다. 아픈 몸으로 야구를 끝까지 하려고 하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던지 잘 다독여 주셨다. 덕분에 NC라는 좋은 팀에서 코치로 제 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은퇴를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 우연하게도 2000년대를 호령했던 우완 트로이카의 일원인 손민한과 같은 팀에서 함께 은퇴하게 됐다.
박명환 “함께 야구를 하면서 많이 배웠다. 나도 나름 통산 100승을 하고 야구에 대한 가치관도 있었는데, (손)민한이 형이 가진 것은 또 다르더라. 민한이 형 외에도 (이)종욱이, (손)시헌이, (이)호준이형 등 고참들과 즐겁게 야구했다. NC라는 팀은 그게 가장 큰 강점이다. 가족 같은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나의 마지막 도전을 NC에서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 박명환 하면 빠르고 강하게 휘었던 슬라이더가 기억에 남는다.
박명환 "슬라이더를 던지는데 된 계기가 재미있다. 내가 박준영(NC) 같은 신인 때 나름 야구 좀 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프로에 와서 보니 좋은 타자들이 즐비하더라. 당시 직구와 커브 두 개를 던졌는데, 풀카운트 상황에서 결정구로 선택한 커브가 볼이 되더라. 내 공이 안 통한다는 것을 느끼고는 좌절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불펜 피칭 때 무심코 커브 그립을 잡고 직구처럼 던진 공이 옆으로 휘었다. 그게 슬라이더였다. 워낙 움직임이 좋아서 타자들이 알고도 못 친다는 얘기를 들었다. 슬라이더가 없었다면 지금의 박명환도 없었을 것이다.“
- 여름만 되면 ‘박명환의 양배추 사건’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덕분에 ‘박배추’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박명환 "예전에 TV프로그램에서 양배추를 활용해서 체감온도를 낮추는 것에 대해 방송을 하더라. 실제로 7~8도 정도를 낮춘다고 해서 지금의 와이프가 나를 위해 준비한 것이다. 당시 내가 그때 갑상선 항진증이라 체감온도가 높아서 여름이면 고생을 했는데, 와이프가 선발 등판하는 날이면 양배추를 다듬어서 아이스박스에 넣어 줬다. 이닝마다 1개씩해서 9회까지 던지라고 늘 9개를 챙겨줬다. 만약 내가 7회나 8회에 내려오면 동료들이 남은 것을 빼앗아가서 해보기도 했다.(웃음) 나름 그게 내게는 루틴이 됐다. 실제로 양배추를 모자 속에 넣고 던질 때와 아닐 때 차이가 커서 팬들에게 ‘양배추를 안 쓰니까 못한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자 사이즈에 맞춘다고 매일 양배추 고르러 다닌 와이프가 고생을 많이 했다. 선발이라 5일에 한 번 씩 나갔으니 다행이지 중간투수였으면 매일 그 양배추를 어떻게 다듬었을지 걱정이다. 나름 좋은 추억이 된 것 같다.“
- 김경문 감독이 코치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박명환을 두고 ‘여러 번 아팠던 경험이 있었던 만큼 (지도자로서)노하우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박명환 “아직은 나도 배우는 단계다. 그동안 경험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 후배들이 나처럼 힘들게 야구 안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건강하게 행복하게 야구했으면 좋겠다.”
- 박명환은 어떤 선수로 남고 싶은가.
박명환 "사실 선수들은 은퇴를 하면 팬들에게 잊혀 지기 마련이다. 나도 거기에 미련을 두면 안 되겠지만, 적어도 양배추로는 기억되지 않을까. 힘든 야구 인생을 살았지만, 양배추 하나로 팬들에게는 즐겁고 좋은 기억이 됐으면 한다. 그리고 슬라이더 잘 던졌던 투수로 기억해주시면 감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