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다옹] 박세혁이 넘고 싶은 '두개의 산'
16.06.09 14:31
살면서 넘기 힘든 큰 산을 만났을 때 사람들은 흔히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한다. 애초에 산 넘기를 포기하든지 아니면 산을 넘을 수 방법을 고민해 몇 번이고 도전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전자와 마찬가지로 결국 산을 넘지 못할지라도 도전하는 과정 속에서 얻어지는 깨달음이 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사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두산 박세혁은 양의지(두산)라는 큰 산을 넘기 위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팀 내 굳건한 주전 포수인 양의지의 존재감과 실력을 따라잡기 위해 프로 입단 후 지금까지 부단히 구슬땀을 흘렸다. 그러기를 벌써 5년, 여전히 박세혁에게 양의지는 넘기 힘든 산이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양의지라는 큰 산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그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박세혁 “두산 지명을 받고 나서부터 줄곧 내 목표는 ‘1군 선수가 되는 것’이다. 입단 때부터 (양)의지 형이 팀 내 주전 포수로 활약했기 때문에 그 산을 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지 형은 국가대표 포수가 아닌가. 그저 뒤를 차근차근 밟아 나가다 보면 좋은 결과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의지 형은 배울 게 많은 선배다. 의지 형이 경기에 나가서 하는 것만 봐도 도움이 많이 된다. 의지 형 같은 포수 옆에서 함께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큰 복인 것 같다.”
마음고생을 안 했던 것은 아니다. 박세혁은 2012년 프로 입단 후 2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스프링캠프나 시범경기에서 두각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시즌에 들어가면 백업 경쟁에서 최재훈에게 밀렸다. 1군 경험이라곤 24경기가 전부였던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마저 잃어갔다. 결국 박세혁은 2013시즌 후 상무 입대를 선택했다.
박세혁 “의지 형 뿐 아니라 우리 팀 형들 중에 군대를 다녀와서 잘 된 케이스들이 많았다. 나도 야구 인생의 전환점이 필요했다. 계속 2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바에는 빨리 군대를 다녀오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대졸 신인이었기 때문에 나이가 적은 편도 아니어서 시간이 지나가는 게 더 안타깝기만 했다."
박세혁의 말대로 상무 입대는 그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박치왕 상무 감독은 “최근 봐왔던 선수들 중에 성장세가 가장 두드러진 선수다. 약점으로 지적됐던 수비가 상당히 좋아졌다. 기회만 꾸준히 보장받는다면 양의지에 버금가는 포수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췄다”고 칭찬했다.
박세혁 “상무에서 2년 동안 160경기 이상을 뛰면서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야구도 많이 보고, 야구에 대한 생각도 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다 보니 확실히 기량이 발전한 것 같다. 특히 시합에 나가면서 경험이 쌓이다 보니 타자와 수싸움 하는 방법이나 수비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몸으로 익힌 부분들이 많다. 박치왕 감독님이 믿고 맡겨주셔서 책임감을 갖고 한 부분도 도움이 많이 됐다. 체중을 92㎏에서 82㎏으로 10kg가량 줄이면서 몸도 가벼워졌다. 상무 다녀오기를 잘한 것 같다.”
박세혁은 김태형 감독이 ‘다른 팀에서는 주전감’이라고 할 정도로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팀에 합류했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양의지는 여전히 건재했고, 최재훈과의 백업 경쟁은 치열했다.
박세혁 “시즌 초반에 주춤했기 때문에 급한 마음이 들 수도 있었지만, 기회가 올 때까지 준비만 잘하고 있자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백업이니까 팀이 원하고, 필요할 때라면 언제든 들어가서 내 몫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선수는 경기 감각을 시합을 뛰면서 유지하거나 끌어올리지만, 지금 위치가 그런 것을 가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남들은 의지 형이 있어서 빛을 보지 못하는 게 속상하지 않냐고 묻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생각하면 의지 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포수로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최)재훈이도 마찬가지다. 늘 포수로서 긴장하면서 열심히 사는 것이 두 사람 덕분이다.”
최근 박세혁은 발목 부상으로 엔트리에 빠져있는 양의지를 대신해 선발 마스크를 쓰고 있다. 김태형 감독은 “양의지의 빈자리가 티 나지 않게 박세혁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박세혁 “이런 기회가 흔히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의지 형의 빈자리가 티 나지 않도록 열심히 하고 있다. 이런 부분이 다 경험이 되고 내게는 약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기에 임하면 타격에서 바라는 것은 없다. 수비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 팀 선발 투수가 좋은 것도 내게는 복이다. 의지 형이 돌아 올 때까지 팀이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데 보탬이 되고 싶다.”
박세혁에게는 넘고 싶은 산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아버지 박철우 두산 타격코치다. 박철우 코치는 해태시절 뛰어난 공격력을 자랑했던 선수다. 해태와 쌍방울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그는 12시즌 통산 372타점 59홈런 0.278(2519타수 701안타)의 타율을 기록했다. 특히 1989년 해태시절 팀 한국시리즈 4연패에 일조하며 그해 한국시리즈 MVP와 더불어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바 있다. 박세혁은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야구 선수의 길을 걸었다. 그에게 ‘포수직’을 제안한 것도 아버지 박철우 코치다.
박세혁 “아버지가 포수 하면 야구를 오래 할 수 있다고 했다. 프로에 오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 아버지 덕분에 프로에 와서 야구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아버지와 한 팀에 있는 것이 불편했는데, 지금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옆에서 ‘자신감 있게 해라’ ‘겸손해라’ 등의 조언을 해주셔서 도움을 받고 있다. 아버지는 언젠가 내가 넘어야 할 산이다.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나중에는 '박철우 코치 아들 박세혁'이 아닌 '박세혁 선수 아버지 박철우 코치'로 불릴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