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다옹] 유승안 감독, 아버지의 마음으로
16.06.16 16:04
그라운드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군대로이드(군대+스테로이드) 효과’를 누리는 선수들이 있다. 무명 선수에 불과했던 이들이 경찰 야구단과 상무를 다녀온 후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으로 팀 전력에 보탬이 되고 있는 것이다. 본래 군대로이드는 군대 문제가 걸린 선수들이 병역 특례를 주는 국제 대회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는 데에서 사용하는 단어지만, 이제는 군 복무 2년 동안 야구에 대한 목마름을 느꼈던 이들이 제대 후 일취월장한 기량을 마음껏 풀어낸다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다.
김경문 NC 감독은 “군대 갔다 온 선수들이 복귀하고 나서 잘하는 사례가 최근에 아주 많아졌다. 예전에는 군대 가서 놀다 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요즘은 야구 실력이 늘어서 오는 선수들이 많다. 상무 감독하고 경찰청 감독에게 공로상이라도 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경찰 야구단고 상무는 단지 군 복무를 대체하는 것을 넘어 선수들의 야구 실력을 한 단계 성장시키는 사관학교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도대체 경찰 야구단과 상무의 무엇이 선수들을 바꿔놓았을까. 그 답을 유승안 경찰 야구단 감독과 박치왕 상무 감독에게 직접 들었다. ‘야옹미인-군대로이드 편’은 ‘1부-유승안 감독, 아버지의 마음으로’ ‘2부-박치왕 감독, 선수가 아닌 사람을 키우는 상무’로 나눠 연재된다.
신재영“경찰청에 있었던 시간들이 도움이 많이 됐다. 유승안 감독님이 아버지처럼 때로는 엄하게 하시고, 잘 챙겨주시기도 했다.”
양성우“경찰청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야구에 관한 여러 가지를 배웠다. 유승안 감독님이 ‘기회가 왔을 때 살릴 준비가 돼 있어야한다’고 했는데, 제대 후에도 늘 그 마음가짐으로 야구 하고 있다.”
민병헌“경찰청을 다녀온 후 나는 180도 달라졌다. 야구를 파고들었고, 정말 열심히 했다. 경찰청에서 진짜 야구 선수로 거듭난 느낌이다.”
- 경찰 야구단 선수 선발 과정과 선발 시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하다.
유승안 “8월 말경에 경찰청에서 구단에 각 포지션별로 필요한 선수들을 보내달라고 얘기 한다. 그러면 구단이 포지션에 맞춰 군에 보내려고 계획했던 선수들의 원서를 넣는다. 뽑을 때에는 성적도 보고 체력테스트와 인‧적성검사, 야구 실기테스트도 한다. 내가 전적으로 선발하는 것은 아니고 내부적으로 선수선발위원회가 구성된다. 선수들을 선발할 때에는 무엇보다 포지션 안배가 중요하고, 구단 안배도 중요하다. 단 한 명도 선발이 안 되거나 인원이 몰리는 것을 피해야한다.”
- 경찰 야구단 감독으로서 팀을 운영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유승안 “우리자식들이 다 야구를 한다. 때문에 경찰청 야구단에 국한돼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야구 전체가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그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나를 고민한다. 나도 야구를 했고, 야구 덕분에 얻은 것도 많다. 야구와 내 인생을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경찰청에 온 선수들이 제대 후 어떻게 될 것인가, 밖에 나가서 경쟁하고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선수들에게도 경찰청 안에서 준비를 해서 밖에 나가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라고 말한다.”
유승안 “그렇다. 결국 그라운드도 사회고 이 속에서 인간관계도 해야 하고,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 야구를 시작하고 프로선수가 될 때까지 훈련을 계속하는데, 사실 기술훈련의 강도만 다를 뿐이지 몸 풀고, 러닝하고, 타격이나 피칭을 하는 스케줄은 똑같다. 경찰청에서도 물론 기술 훈련을 시키고 있지만, 그보다 멘탈적인 부분을 강조한다. 투수가 마운드에서 타자와 싸우는 방법이 볼배합이나 구위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가진 공으로 타자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위기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을 강심장이 필요하다. 이는 타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늘 하는 얘기가 있다. ‘경찰청에 들어올 때 심장이 주먹 하나만했다면, 나갈 때에는 2배는 돼야한다’고 말이다.”
- 제대한 선수들 대부분이 ‘유승안 감독님이 상당히 무섭다’고 얘기한다. 선수들을 엄하게 다루는 이유가 있나.
유승안 “맞는 말이다. 나는 경찰청에서 선수들에게 굉장히 무섭게 한다. 얘들이 들어오자마자 ‘나를 아버지라고 불러라’라고 말한다. 일단 아버지-아들이라는 인간관계를 만들어놓고 아버지가 아들을 다루듯 엄하게 한다. 그러면서 ‘평생 먹을 욕 2년 동안 나랑 있으면서 다 먹으라’고 한다. 그러면서 싫은 것을 피하는 방법과 힘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버티는 힘을 키우라고 한다. 요즘에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집에서 외동아들 아니면 형제가 2~3명뿐이라 부모님한테 큰 소리한 번 안 듣고 자란 경우가 많다. 야구도 결국 감독, 코치, 선후배 간의 인간관계 속에서 하는 것이다. 내가 싫은 것은 안 하고 좋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런 부분에 대해 선수들이 강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승안 “두산 양의지와 민병헌, 허경민, 롯데 장원준, 손승락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선수들은 경기력도 좋았고, 자기관리뿐 아니라 군대 생활도 상당히 잘했다. 후배들도 잘 챙겨주고 타의 모범이 되는 모습들을 많이 보여줬다. 감독으로서 이런 선수들만 있다면 할 일 없겠다 싶을 정도였다. 특히나 두산의 경우에는 지난해 한국시리즈 때 라인업을 보니까 절반이 경찰청을 거쳐 갔던 선수들이더라. 유독 두산 선수들이 경찰청에 와서 잘된 케이스들이 많다. 두산이랑 경찰청의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웃음)”
- 반면, 아픈 손가락도 있을 것 같은데.
유승안 “아픈 선수들이다. 여기서 재활을 다 시켰는데도 밖에 나가서 회복을 못하고 끝내 야구를 내려놓는 선수들이 있다. 그런 선수들을 보는 게 제일 안타깝다. 몸이 아프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야구를 못하면 열심히 가르치고, 체력이 떨어지면 운동을 시키거나 휴식을 취하게 하면 되지만, 아플 땐 답이 없다. 그저 모든 선수들이 건강하게 야구하기를 바랄 뿐이다.”
- 야구단 운영상의 아쉬움은 없나.
유승안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야구장이 협소하다. 경기를 할 때 공이 자주 경기장 밖으로 나가다 보니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 아직까지는 다행히 사람이 다친 적은 없는데, 공 때문에 차가 찌그러지거나 유리가 깨지는 경우들이 발생했다. 그뿐만 아니라 시설도 굉장히 열악하다. 야구장의 개보수 또는 이전이 시급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