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다옹] 어머니의 눈물, 야구를 해야 했던 이유
16.06.23 14:54
[야옹미인 ‘달인을 만나다’] 열정과 투지가 넘치는 그라운드에는 자신만의 생존 방법으로 별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달인’이라 부릅니다.
재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노력만큼은 남달랐다.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최동수(현 LG 육성군 타격코치)가 그라운드에 있었던 비결이다.
최동수는 1994년 LG에 입단해 SK에 몸담았던 2010~2011시즌을 제외하고 줄곧 줄무늬 유니폼을 입었다. 프로 입단 당시 2군을 전전하며 빛을 보지 못했던 그는 좋은 스승을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의 나이 서른 살에 온 황금기였다.
최동수는 스스로에 대해 ‘야구 재능이 없었던 사람’이라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현역 시절 내내 ‘노력의 아이콘’으로 통했다. 경기가 끝나고 난 뒤에도 홀로 남아 불 꺼진 그라운드에서 방망이를 돌렸으며, 실내 연습장에서 새벽까지 훈련에 매진하다 잠이 든 적도 있었다. ‘지옥훈련’으로 정평이 나 있는 김성근 감독이 훈련을 만류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그를 곁에서 지켜봤던 사람들은 ‘최동수가 남몰래 흘린 눈물과 땀방울을 모으면 연못 한 개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야구에 대한 그의 열정이 남달랐다는 얘기다.
현재 그는 LG 육성군 타격코치로 후배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선수에서 코치로 역할은 달라졌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다. 지도자로 첫 발을 뗀 2014년부터 지금까지 벌써 3년째 선수들과 함께 이천 숙소에 머무르며 코칭에 나서고 있다. 지칠 만도 하지만, 그는 “배울 것도 할 일도 많다”고 말한다.
‘달인을 만나다-최동수 편’은 ‘1부-어머니의 눈물, 야구를 해야 했던 이유’와 ‘2부-재능없이 노력으로 살아야했던 인생’으로 나눠서 연재된다.
# 우울증까지 겪게 한 야구
- 1994년 프로 입단 당시 팀 동기생이었던 서용빈, 김재현, 유지현 등이 워낙 잘나갔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도 있었을 것 같다. 경쟁을 위해 포지션까지 바꾸기도 했는데.
최동수 “‘쟤네들은 되는데 나는 왜 안 되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왜 야구를 했을까’라는 박탈감마저 들었다. 포지션 변경에 대해서도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사실 말이 좋아 포지션 변경이지 포수로서 재능이 없기 때문에 쫓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감독님이나 주위 분들이 좋은 말씀들로 위로를 해주긴 했지만, 그게 크게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그때 오기를 가졌던 것 같다. 다친 자존심만큼 잘할 수 있는 부분에서 보여주자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1군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2001년에는 당시 LG 2군 사령탑이었던 김인식(현 연천 미라클 감독) 감독에게 ‘선수 생활을 그만 두겠다’는 얘기를 했었다.
최동수 “당시에는 나이 서른에 연봉이 3천만 원도 안됐다. 프로에 들어와서 죽도록 10년 동안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나오지도 않고, 상황적으로도 더 이상 기회를 받기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10년 동안 죽어라 야구만 했는데,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함도 커졌다. 나이를 더 먹기 전에 사회에 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내린 결정이었다. 내 나름의 포기선언이었다. 그날 김인식 감독님과 많이 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말 힘든 시기였다.”
- 심리적으로도 많이 쫓겼던 것도 같다.
최동수 “당시에는 약간의 우울증도 있었다. 비가 오면 괜히 눈물이 나고, ‘도대체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에 감정 기복도 있었다. 생일날에도 해놓은 것 없이 나이만 먹는 게 서러워서 많이 울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기회에 대한 목마름 때문에 답답하기만 시간이었다.”
- 힘든 와중에서도 끝내 야구를 놓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최동수 “나는 어려서부터 야구만큼은 남들보다 뒤처지는 아이였다. 오죽하면 중학교 3년 내내 단 한 경기에도 나가본 적이 없다. 심지어 1, 2학년 때에는 야구를 그만두라는 얘기도 들었다. 그때 어린 마음에도 부모님이 자식 야구 못 한다고 하면 걱정하실까 봐 3학년 때에는 운동 끝나고 집에 들어가서 ‘경기에서 안타를 쳤다’고 거짓말을 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어머님께서는 아들이 경기를 못 뛰는 것을 알고 관중석이 아닌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계셨다더라. 부모님 걱정할까 봐 거짓말을 하는 나를 보면서 많이 우셨다고 하셨다. 그때부터 이왕 선택한 야구 꼭 성공해서 부모님 웃게 해드리고 싶은 생각이 강했다. 힘들 때마다 그때 생각을 하면서 버텼던 것 같다.”
<달인을 만나다> 최동수 2부 - '재능없이 노력으로 살야야했던 인생' 내일 이어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