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다옹] 재능 아닌 노력으로 살았던 야구 인생
16.06.24 14:15
'[야옹다옹] 어머니의 눈물, 야구를 해야 했던 이유' 최동수 1편에서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야옹미인 ‘달인을 만나다’] 열정과 투지가 넘치는 그라운드에는 자신만의 생존 방법으로 별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달인’이라 부릅니다.
# 재능이 없어 노력만으로 살아야했던 야구인생
- 현역 시절 스스로에 대해 ‘단 한 번도 야구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최동수 "나는 운동을 하지 말았어야하는 사람이다. 운동을 좋아하긴 했는데,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나지는 못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야구 유니폼이 멋있어 보여서 시작한 운동이 내 인생의 전부가 됐다. 소질이 없는 사람이 한 우물을 열심히 판셈이다. 그리고 우물을 파기 위해서 정말 피 나는 노력을 했다.“
- ‘피나는 노력’이라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최동수 “마음에 안 들면 될 때까지 했다. 재능이 있는 친구들은 같은 훈련을 해도 짧은 시간 안에 소화가 가능했지만, 나는 달랐다. 1000번 2000번을 더 해야만 되는 경우가 많았다. 1군에 있었을 때에는 훈련을 하다가 실내연습장에서 잠을 잔 적도 있다. 야구에 대한 재능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노력으로 채우고 싶었다. 일종의 내 만족 같은 것이다.”
-스승과의 좋은 인연이 인생을 바꾼다고들 한다. 최동수의 인생에도 김성근 감독이라는 스승이 있는데.
최동수 "2000년 겨울에 LG 2군 감독으로 부임한 김성근 감독님을 만났다. 거의 10년째 1군보다 2군에 있는 날이 많아지면서 지쳐있을 때였다. 그때는 ‘정말 죽어라 했는데 왜 안될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김성근 감독님 만나고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나는 죽어라 노력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의 노력에 취해있기만 했구나’라는 반성을 했다. 그만큼 더 힘들고 혹독하게 훈련하면서 더 강해졌다.“
- '지옥훈련’으로 정평이 나 있는 김성근 감독이 훈련을 멈추도록 지시한 유일한 선수라고 들었다.
최동수 "감독님과 함께 훈련을 하면서 스스로를 이겨내고 싶었다. 나 같은 놈도 하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그럼에도 명성대로 힘들긴 했다. 제주도에 겨울에 전지훈련을 갔었는데, 하루는 비가 많이 왔다. 아무리 제주도라고 해도 바람이 불고 날씨가 쌀쌀했다. ‘이런 날씨에 훈련하기 힘들겠지. 오늘은 쉬겠지’했는데, 어김없이 비를 맞으면서 훈련을 시키시더라. 눈이 쌓이고 휘몰아쳐도 아침이면 혼자 내야를 깨끗이 치우시고는 훈련을 지시하셨다. 정말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때 감독님을 만나서 야구선수로 한 단계 성장했고, 나름 1군에서 뛸 수 있는 힘도 얻었다.“
최동수 “현대에 와서 그 방법이 소위 말해 무식해 보일 수는 있어도 그건 개개인만의 특성이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발버둥 치며 성장할 수 있고, 도리어 그게 무리가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옳고, 그르다’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문제인 것 같다. 다만, 나는 김성근 감독님을 만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고, 많이 배웠다. 무엇보다 어떤 일을 하던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는 게 가장 큰 수확이다. 내 스스로가 어떤 상황에서든 끝이라고 단정 짓지 않고 나니 더 많은 것이 보였다. 김성근 감독님을 만나고 나서 부정적이었던 생각들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 20년 현역 생활의 비결 ‘원 샷(One shot), 원 킬(One kill)‘
- 많은 이들이 최동수의 야구인생의 최고의 한 해를 2007년으로 보고 있다.(당시 그는 입단 최초 풀타임 출장과 12홈런 58타점‧타율 0.306라는 좋은 성적을 달성했다.) 본인의 생각은 어떤가.
최동수 “대부분의 선수들이 20대 중후반대 전성기를 맞이하는 반면, 나는 30살이 넘어서 진정한 전성기를 맞이한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야구를 하면서 행복함을 느꼈을 때가 그때다. 보여 지는 성적만으로 전성기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야구를 하면서 얼마나 행복하고 보람 있었냐가 전성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치면 2000년대 후반이 내 야구인생의 전성기인 것은 맞다.”
- 선수 시절 눈물 젖은 빵을 먹었던 경험이 코치로서 선수들을 지도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최동수 “나는 현역 시절 내내 주전으로 뛴 시간보다 대타나 대수비로 경기에 나간 시간들이 더 많다. 그게 내 숙명이라고 받아들였다. 때문에 내게 주어지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지금도 육성군 얘들에게 ‘원 샷(One shot), 원 킬(One kill)'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육성군에서 가능성을 보여줘야 2군에 가서 시합을 뛸 수 있는 것이고, 2군에서 잘해야 1군에 올라갈 수 있다. 결국 한 번의 기회를 잡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실력을 갈고 닦아야 한다. 지금 메이저리그에 있는 김현수(볼티모어)도 두산에 육성 선수로 입단해 입에서 단내나게 훈련했다고 하더라. 다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도 하는 것 아니겠나. 내가 20년 동안 현역 생활을 했는데, 결국 언제 올지 모를 기회를 위해 꾸준히 노력했던 게 비결 아니겠나.”
- 코치 3년 차, 본인만의 철학이 있다면.
최동수 “아직 나는 경험이 많이 부족하다. 이천(LG 2군)에 있으면서 경험 많은 코치님들에게 조언들을 들으면서 배우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그냥 선수들이 내 자식이자 형제라는 생각으로 다가가고 있다. 선수들의 경우 원해서 야구장에 나오는 것과 하기 싫은데 억지로 나왔을 때 훈련 소화 능력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 부분에 대해서 늘 선수들과 얘기하고 좋은 분위기를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또 최대한 욱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잘 다독이고 있다.”
- 20년간의 프로 생활 동안 빛을 본 시절보다 고생한 시간이 더 많았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하더라도 야구를 한 것인가.
최동수 "다시 돌아가도 야구를 할 것 같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유니폼 입고 땀 흘렸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어느 누가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연호와 응원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야구를 했던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지금 6살짜리 아들 꿈이 ‘LG 트윈스 선수’가 되는 것이다. 행여 아들이 나처럼 재능이 보이지 않는 선수라 하더라도 본인이 하겠다는 일을 말리진 않을 것이다. 결국 인생을 사는 것은 본인이 감내해 내야 하는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