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다옹] 다시 올 기회를 기다리는 연천 미라클 이청하
16.07.16 12:58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가끔 기회의 소중함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당시에는 모르고 있다가 지난 후에 그 시간들이 다시 못 올 순간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연천 미라클 사이드암 투수 이청하도 그랬다.
그는 2010년 부천고를 졸업하고 아버지 이병훈 SPOTV 해설위원이 몸담았던 LG에 육성 선수로 입단했다. 프로에 단 꿈에 젖었던 그는 입단 1년 만에 방출 통보를 받았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충격을 받았던 것도 잠시 그는 자신을 되돌아봤다. 그리곤 깨달았다. 야구에 대한 절실함 부족과 기회에 대한 소중함을 몰랐던 자신이 자초한 일이었다는 것을.
LG에서 방출된 그는 야구공을 잠시 내려놓았다. 이후 야구를 다시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 빠졌고, 군 복무를 하는 동안 ‘결국 돌아갈 곳은 그라운드’라는 결론을 내렸다. 입단 테스트를 통해 지난해 연천 미라클의 창단 멤버로 합류한 그는 야구 인생의 두 번째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김인식 연천 미라클 감독은 “지난해와 비교해 기량이 많이 좋아졌다. 연습경기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이대로만 해준다면 목표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이청하에게 가족은 든든한 지원군이자 다시 일어서야 할 이유다. 그는 아버지 이병훈 해설위원과 동생 이용하(넥센)와 함께하는 그라운드 인생을 꿈꾸고 있다. 이청하는 “프로에서 동생과 함께 나서는 경기를 아버지가 해설하시는 게 꿈이다. 동생도 잘하고 있고, 아버지도 여전하다시다. 나만 잘하면 된다”고 했다.
‘연천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는 ‘기회를 기다리는’ 이청하편이다.
- 야구선수 아버지의 이름을 등에 업고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이청하 “중・고등학교 때에는 ‘이병훈 아들’이라는 말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아버지의 이름이 너무 커서 뭘 하든 내 이름은 없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니 아버지 덕분에 좋은 여건에서 야구를 할 수 있었다는 생각에 마냥 감사하기만 하더라. 어려서 아버지는 칭찬에 인색하고 쓴소리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도 ‘다 잘되라는 마음에서 하신거구나’ 싶다. 아버지의 아들로 야구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 LG 입단 후 아버지 이병훈 해설위원이 상당히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1년 만에 방출 통보를 받았을 때에는 상실감이 컸을 것 같은데.
이청하 “방출 된다는 사실을 발표 난 당일 날 알게 됐다. 처음에 들었을 때에는 진짜인지 아닌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집에 와서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아버지께서 일주일 전에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 알고 계시면서 일부러 내게 내색을 안 하셨던 것이다. 그 일주일 동안 아버지께서 얼마나 많은 걱정과 고민을 했을지 생각하니 죄송스러웠다.”
- 방출된 후 곧바로 다른 팀의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야구를 그만둘 결심을 한 것인가.
이청하 “초등학교 5학년 때 야구 시작해서 LG에 들어가기 전까지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 야구를 계속하려고 한다면 방출이 되고 나서 바로 테스트를 봤어야 했는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었다. 1년을 쉬고 군대에 갔는데, ‘이게 뭔가.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었다. 그동안 야구를 했던 것도 아깝기도 하고, 내가 정말 절실하게 덤비지 못했던 것에 후회가 들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덤벼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에서 다시 야구를 하기로 마음먹고는 이등병 때부터 몸을 만들었다. 다행히 부대 대장님이 일과시간에 배려를 많이 해주셔서 꾸준히 운동을 할 수 있었다.”
- 다시 야구를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 이병훈 해설위원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이청하 “아버지께서 처음에는 ‘옛날처럼 할 것이라면 야구하지 말아라. 야구하다가 허송세월만 보낸다’고 하셨다. 내가 후회 없이 열심히 하겠다고 하니 그때 아버지께서 후원해주시겠다고 하셨다. 특히나 연천 미라클 김인식 감독님이 아버지 신인 시절 때 LG에서 함께 했던 터라 믿고 맡길 수 있다고 하셨다.”
- 연천 미라클의 창단 멤버다. 입단하게 된 계기는.
이청하 “군 제대하고 난 후 모교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쉽지는 않더라. 나는 투수이기 때문에 공을 던지기 위해서는 포수가 필요한데, 학교 선수들도 나름의 스케줄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나 개인 운동을 하다 보니 스스로와 타협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인터넷으로 보시고는 내게 권하셨다. 단체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터라 망설임 없이 입단 테스트에 응했다.”
- LG에서 육성선수 입단 테스트를 치렀을 때와 연천 미라클 때를 비교해보면 차이가 있나.
이청하 “LG에 육성선수로 들어갔을 때에는 어느 정도 얘기가 된 상황이라 마음은 조금 편했던 것 같다. 프로의 벽이 높다고는 하지만, 그때는 뭐든 할 수 있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연천 때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했다. 열심히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고 재도전하는 것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더 절실했던 것 같다.”
- 한 번의 실패가 본인에게는 배움의 시간이 된 것 같다.
이청하 “비록 육성선수로 프로에 들어가긴 했지만, 프로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에 빠져서 살았던 것 같다. 겉멋이 들었고,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다. 어깨가 아팠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에는 ‘야구밖에 없다’는 절실함이 부족했던 것 같다. LG에서 방출당한 후에 후회도 하고 반성도 많이 했다. 나오고 나니 그때의 기회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게 됐다. 이제는 다시 올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다.”
- 연천 미라클에서 2년 사이에 4명의 선수들이 프로에 갔다. 목표를 이루는 동료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부러움과 조급함 마음이 들 법도 한데.
이청하 "내가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것을 안다. 그동안 오랫동안 쉬었기 때문에 감각을 회복하고 몸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이전까지는 내가 던지는 공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 최근에 컨디션이 상당히 좋아져서 연습경기 성적도 좋다. 부상만 조심하면 될 것 같다.“
-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LG에 입단했었다. 후회 남은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기에 LG에 대한 감정이 남다를 것 같다.
이청하 “내가 가릴 처지는 아니지만, 기회가 된다면 LG의 유니폼을 다시 입고 싶다. 처음 LG에 들어갔을 때 못하고 나온 것이 후회가 되고, 아버지가 프로 야구선수로 첫 발을 내 딛었던 팀이기에 애정이 남다르다. 지난 실패에 대한 만회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강하다. 간절히 원하다보면 이뤄지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안고 있다.”
- 목표가 있다면.
이청하 “어렸을 때에는 같은 팀에서 내가 던지고 동생(넥센 이용하)이 받는 경기를 아버지가 해설하는 꿈을 꿨다. 근데 커서 많은 것이 변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해설을 하고 있지만, 동생은 포지션을 전향했고, 나는 방출로 인해 재도전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나성범(NC)-나성용(삼성) 형제가 다른 팀이긴 하지만, 한 경기에서 함께 홈런을 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웠다. 나도 프로의 꿈을 이뤄서 동생과 맞대결을 하든 아니면 같은 팀에서 활약하고 싶다. 그 경기를 아버지가 해설한다면 의미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