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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다옹] 외로움과 싸워야했던 야구선수의 아내

16.07.22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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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희 씨는 ‘이종범의 아내’와 ‘이정후의 엄마’라는 두 개의 직업을 갖고 있다. 결혼해서는 자신의 꿈을 버리고 스타플레이어 남편의 뒤에서 묵묵히 내조를 했다. 남편이 야구를 그만 둔 후에는 남편과 같은 길을 걷는 아들 뒷바라지에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투자했다.  
 어느새 정연희라는 이름 대신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으로 산 세월이 더 많아지고 있지만, 그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KBO 리그 사상 최초의 ‘부자(父子) 1차 지명’이라는 진기록이 정연희 씨에게는 큰 보람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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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희 씨와의 인터뷰는 조심스럽게 진행됐다. 아들 이정후의 넥센 1차 지명 후 아직 진로가 결정되지 않은 정후 친구들에게 행여 부담이 될까 싶어 선뜻 나서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몇 번의 고민 끝에 마주 앉아 듣게 된 그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치열했다. 이야기 도중 간간히 눈물을 보이는 정연희 씨의 모습에서 그간의 마음고생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들의 이야기를 할 때면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피어나기도 했다. 

‘이종범의 아내, 이정후의 엄마로 산다는 것’은 2편으로 나눠 연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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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인터뷰를 통해 ‘아들은 야구선수를 시킬 수 있지만, 딸은 야구선수와 결혼시키지 않겠다’고 말한 적 있는데.

정연희  “야구선수 와이프는 외롭다. 아이들이 커가는 내내 아빠는 늘 바쁜 사람이고, 온전히 아이들과 나 이렇게 셋뿐이었다. 아이들도 아빠와의 추억이 거의 없다. 얼마 전에 올스타전을 보는데, 선수들이 야구장에 아이들을 데려와서 좋은 시간을 보내더라. 남편 선수 시절 때에는 그런 문화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보면서 부러웠다. 더욱이 다 똑같이 고생하는데도, 잘하는 선수 와이프는 내조를 잘 하는 것이고, 못하면 다 묻힌다. 아내는 여자로서의 자신의 삶을 갖기도 힘들다. 그래서 딸 만큼은 야구선수와 결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대부분의 집안일을 남편 없이 해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

정연희  “나뿐 아니라 웬만한 야구선수 와이프들은 못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명절이며 집안 대소사는 물론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것도 다 와이프들 몫이다. 또 남편이 워낙 사람들을 좋아해서 밖에서 사람 만나는 시간도 많았다. 그나마 서울로 이사 와서 많이 좋아졌다. 밖에서 고생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외로운 것은 다른 문제다. 우리 딸은 다정하고 가정적인 남편을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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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범 위원이 은퇴한 후 곧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당시에는 ‘광주가 싫어서 떠났다’ ‘아들의 야구유학’이라는 얘기가 많았는데.

정연희  “그 부분에 대해 오해를 풀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광주가 싫어서 아들 야구 유학을 위해 서울로 왔다고 알고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당시 KIA에서 해외코치연수며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했지만, 애 아빠는 ‘당분간 쉬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구단에서는 유학비를 댄다고 생각하고 배려해 줄 테니 광주를 떠나 있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야구가 아니면 광주에서 살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고, 구단의 부탁도 있었기 때문에 서울행을 결정한 것이다. 정후는 서울로 이사를 와서 낯선 환경에서 야구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았는데, 잘 적응해줬다. 애 아빠도 일이 잘 풀렸다.”

- 평소 남편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종범 위원은 2009시즌을 앞두고 아내의 말 한마디에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됐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정연희  “당시에 남편의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내가 ‘(이)승엽씨나 대호씨를 보니까 겨울에 개인 트레이너까지 두면서 노력을 하는데, 오빠는 왜 꿈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해. 오빠 꿈이 대체 뭐냐. 그렇게 야구를 할 것이면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낫지 않냐’고 했다. 그때 얘기를 듣고 나서 남편이 정신이 들었다고 하더라. 살면서 충격요법은 필요한 것 같더라.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새는 할 말은 하고 산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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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간에는 이종범 위원이 이혼했다는 소문이 돌리기도 했다. 

정연희  “내가 이름을 바꾸면서 일어난 재미있는 해프닝이다. 정정민이라는 이름으로 살다가 정연희로 바꿨다. 아내이자 엄마의 마음이 가족들에게 좋다고 하면 뭐든 못하겠나. 그래서 이름을 바꿨는데, 사람들은 와이프 이름이 다르니까 이혼하고 재혼한 줄 알더라.(웃음)”

- 정후가 프로에 가서 아빠만큼 야구를 잘할 수 있을까. 

정연희  “사실 나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이제 정후의 몫이다. 정후는 애 아빠가 일본에 진출했을 때 일본에서 태어났다. 당시 남편이 야구를 잘 할 때라 출산 소식이 알려지면서 방 안 전체가 꽃으로 둘러싸일 만큼 많은 선물을 받았다. 아빠와 비교해 태어난 환경부터가 달랐던 아이다. 정후가 남편와 비교해 야구에 대한 절박함이 부족할지 몰라도 더 큰 꿈을 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남편이 가는 길이 곧 정후가 가는 길이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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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태어나도 이종범과 결혼할 것인가.

정연희  “흠(골똘하게 고민했다.) 다시 하긴 하는데, 신혼 때부터 잔소리도 많이 하고, 운동도 옆에서 잘 시킬 것이다. 옆에서 남편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순간이 많았다. 요즘에 자는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보면 흰머리가 나와 있는 게 보이더라. ‘오빠도 나이가 들었구나’ 싶어서 짠하다. 또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왔는지 아니까 ‘더 좋은 환경에서 야구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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