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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다옹] '야구선수'이자 '배우' 박지아의 외침

16.08.1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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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기자와 인터뷰를 나눴던 ‘야구선수’이자 ‘배우’ 박지아의 신경은 온통 오는 9월에 열리는 세계여자야구월드컵에 쏠려 있었다. 그는 “세계여자야구월드컵에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이 목표다. 국가대표 되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 꼭 이루고 싶다”고 했다. 국가대표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세상의 편견에 맞서면서까지 박지아가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세계여자야구월드컵을 보름 가까이 남겨두고 다시 만난 박지아는 “여자가 야구를 하면서 목표를 갖고 꿈을 키우는 일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고 했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이번 세계여자야구월드컵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실력을 평가받을 기회조차 없었다는 점에서 박지아에게는 짙은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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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대회 한국 여자 대표팀은 소프트볼 선수 중심으로 꾸려졌다. 국가대표 공식 선발전이나 일정 공개가 이뤄지지 않고 비공개로 진행됐기에 박지아와 같이 대표팀을 목표로 준비했던 많은 여자야구 선수들이 좌절감을 맛봤다. 그럼에도 박지아의 인생에 야구는 여전히 1순위다. 최근에는 시애틀 이대호가 속해 있는 몬티스 스포츠매니지먼트그룹과 계약해 여자야구선수로 걸어야 했던 외로움을 덜게 됐다.

 박지아 자신의 야구 인생을 위해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뛰고 있다. 그는 “여자야구선수의 꿈을 꾸고 있는 어린 친구들이 인터뷰 기사나 TV를 통해 제 얘기를 접하고는 메일이나 쪽지로 연락이 많이 온다. 그 친구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야구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긴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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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인터뷰 때만 하더라도 세계여자야구월드컵 대표팀 합류에 대한 의지가 상당히 강했다. 살던 전셋집을 정리해 개인 훈련을 하기도 했는데.

박지아  “내가 좋아하는 야구를 하면서 태극기를 달고 국가대표로 뛴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즐겁고 뿌듯한 일이다. 야구를 하면서 그 이상은 없다는 생각을 하고 달려왔다. 그랬기 때문에 결과가 더 허무한 것 같다. 나 말고도 대표팀 합류를 목표로 평일과 주말에 시간을 쪼개서 5~7시간씩 훈련하고 경기를 뛰었던 많은 여자야구 선수들이 실망을 많이 했다.”

- 대표팀이라는 것이 결국 실력을 통해 선발되는 것 아닌가.

박지아  “그렇다. 대표팀이라는 말 자체가 나라는 대표하는 것이다. 만약 내 실력이 부족해서 떨어졌다면 이렇게까지 아쉽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대표팀 선발을 위한 공개 테스트나 공식 일정 설명 같은 게 전혀 없었다. 실력을 검증받을 기회조차 없었다는 게 선수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지난 6월에 지인을 통해 대표팀 선발 일정을 알아보려 했지만, 정확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결국 기사를 통해 이미 대표팀이 꾸려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자야구 특성상 실업팀이나 프로팀이 없기 때문에 그 선수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록이 부족하다. 그런 점에서 여자야구에 비해 저변이나 실력 면에서 더 나은 소프트볼 선수들을 중심으로 전력이 꾸려진 것 같다. 물론 여자 야구선수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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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여자야구선수들에 비해 소프트볼선수들의 기량이 더 낫다면 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는 선택이지 않나.

박지아  “당장은 그럴지 모르지만, 야구와 소프트볼은 엄연히 다르다. 가장 기본적으로 쓰는 공이 다르고, 마운드와 홈플레이트까지의 거리도 다르다. 경기 운영 방식도 마찬가지다. 대회 성적과 일종의 편의를 위해 소프트볼 선수들이 여자 야구 선수들을 대체한다면, 한국에서 여자야구는 지금이나 10년 후에나 마찬가지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내가 어려서 여자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을 때 했던 고민들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 실업팀이 없어 늘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하고, ‘여자가 무슨 야구냐’는 세상의 편견과 싸우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여자야구의 저변 확대가 이뤄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부럽기만 하다.”

- 해외 진출에 대해 고려해보지 않았나. 과거 안향미의 경우 일본에 진출하기도 했는데.

박지아  “테스트를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다. 안향미 선배님이 야구를 했을 때에는 국내에 여자가 야구를 할 수 있는 인프라가 마련되지 않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꿈을 위해 타국에서 도전을 이어갔다는 점이 존경스럽다. 꼭 한번 만나 뵙고 싶어 여러 군데 수소문을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더라. 혹시 기사를 보신다면 만나 뵙기를 간절히 청하고 싶다. 안향미 선배와 달리 나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내 야구 하자고 해외로 나가버리면 한국야구를 배신하는 일 같다. 최근에 여자야구선수의 꿈을 꾸고 있는 어린 친구들이 인터뷰 기사나 TV를 통해 제 얘기를 접하고는 메일이나 쪽지로 연락이 많이 온다. 그 친구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야구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에 여자야구의 기반을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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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반을 다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나.

박지아  “내 평생 소원은 아무 걱정하지 않고 야구를 하는 것이다. 물론 배우로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내 인생의 중심에는 늘 야구가 존재한다. 지금 여자야구선수로 활동하는 대부분이 돈을 벌기 위해 직업을 갖고 틈틈이 야구를 한다. 만나서 얘기를 해보면 다들 ‘야구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실업팀의 탄생이 무엇보다 간절하다. 프로팀은 그다음 일이지만, 여자 배구나 여자 농구 경기를 보면 부럽다.”

- 야구에 대해 꽤나 진지하고 깊게 고민하는 것 같다.

박지아  “야구 전도사가 된 것 같다. 예전부터 주위 사람들을 야구하는데 데리고 다녔다. 최근에는 친한 여동생도 야구에 빠져서 얼굴만 보면 야구하러 가자고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야구의 매력을 알고, 야구를 좋아했으면 좋겠다. 가만 보면 야구 병에 걸린 것 같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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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쯤 되면 본업이 야구선수인지 배우인지 헷갈린다.

박지아  “둘 다 놓치고 싶지 않다. 다만 인생에서 야구가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맞다. 예전에는 야구를 하기 위해 들어오는 작품이나 프로그램 출연을 마다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다양한 활동을 하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야구만 해서는 현실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야구만 하다가는 내 길이 없어지지 않을까라는 불안감도 있다. 물론 배우 일에 대한 욕심도 있다. 배우 박지아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다.”

- 최근 이대호와 한솥밥을 먹게 됐다고.

박지아  “한국에서 여자야구선수로 살아가는 길은 외롭기만 하다. 그런 의미에서 소속사를 만나게 된 것은 같이 손을 잡고 가는 친구가 생긴 기분이다. 회사에서 여자 야구선수를 영입한 케이스가 처음이기에 더 신경을 써주고 있다.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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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으로 어떤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싶은가.

박지아  “좌절하고 힘들어도 야구가 좋다. 포기라는 말은 아직은 멀게만 느껴진다. 계속 희망의 불씨를 가져갈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여자 야구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야구를 하면서 자기만족에만 머무르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어려서 여자야구선수 꿈을 키우면서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 직접 협회에 전화해서 ‘왜 여자는 실업 야구팀이 없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이 많이 달라지진 않았다. 적어도 10년 뒤에는 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야구하는 다른 언니들이 ‘너는 젊으니까 꿈을 크게 가져라. 뭐든 늦지 않았다’고 말한다. 여자야구 실업팀이 꼭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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