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다옹] 오지환, 세상에서 가장 슬픈 유격수에서 지배자로
16.08.30 14:03
“2~3년은 잘해야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아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LG 오지환이 웃으며 말했다. ‘잘한다’, ‘달라졌다’는 칭찬에도 아직 그는 ‘만족’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오지환은 “이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기는 이른 것 같다”고 몸을 낮췄다.
오지환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유격수였다. 프로 입단 때부터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고 기회를 얻었지만, 그만큼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홀로 감수해야했다. 누구보다 많은 훈련을 했고, 그 과정에서 손이 붓고 손톱이 깨지는 당하고도 내색할 수 없었다. 결과로 말해야 하는 프로에서 그간 오지환은 ‘유격수로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지환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단 한 시즌을 제외하고 리그 최다 실책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제외된 2011년은 손바닥 수술로 경기 출장 수가 많지 않았다.
오지환 “그동안의 실책이 내게는 좋은 경험이 됐다. 이전에는 어렸고, 나 때문에 실점을 하고 경기에서 지게 되면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런 일들이 생기면서 스스로 위축됐고, 실책에 대한 두려움을 늘 갖고 지냈다. 나중에는 ‘안타를 못 쳐도 좋으니까 제발 실책만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런 그가 지난해와 올해 괄목할만한 능력을 뽐내고 있다. 수비에서 안정세를 보였던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수비뿐 아니라 공격에서도 힘을 내고 있다. 지난 25일 넥센과의 원정경기에서는 시즌 16호 홈런을 터트리면서, 유지현 LG 작전코치가 세운 역대 LG 유격수 한 시즌 최다 홈런기록을 갈아 치웠다. 유격수 오지환의 성장 과정을 옆에서 함께한 유지현 코치의 감회도 남다르다. 유 코치는 “오지환을 유격수라고 말한 것은 2015년이 처음이다. 이젠 유격수 같아졌다. 예전에 ‘강강강강’이었다면, 지금은 ‘강강약약’을 할 줄 안다. 그만큼 여유가 생겼다”고 귀띔했다.
오지환 “부족한 내게 너무나 감사하게도 팀에서 꾸준히 기회를 줬고, 유지현 코치님이 옆에서 도움을 많이 주셨다. 그 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코치님이 늘 ‘너는 남들보다 성격이 더 급하니까 최대한 천천히 하라’라고 조언해주셨다. 이전에는 무조건 빨리, 세 개 던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는 천천히, 힘을 빼고 던지는 방법을 익혔다. 스스로 달라졌음을 느낀다.”
오지환은 늘 야구에 목마름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늘 그의 노력은 평범하지 않다. 그의 주변인들이 오지환의 노력에 산증인임을 자처한다. LG 이병규(등번호 9)는 “우리 팀 어린 선수들 중에 선배들을 괴롭히는 선수가 딱 한 사람 있는데, 그게 바로 오지환이다. 오지환은 늘 ‘어떻게 하면 되냐’고 먼저 다가와서 물어본다. 누군가가 자신의 자리를 주기를 바라지 않고, 싸워서 쟁취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고 했다. 유지현 코치는 “욕심도 있고, 우직한 선수다. 그동안의 훈련량이 상당했는데, 잘 따라왔다”고 했다.
오지환 “(고교시절 투수에서)프로에 와서 유격수로 포지션을 바꾸고 한동안 잘 안 풀릴 때는 ‘(포지션을)괜히 바꿨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어차피 유격수를 해도 힘들면 차라리 투수를 계속할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시간이 지나고 보니 유격수를 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것 같다. 입단해서 줄곧 동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배울 수 있는 선배님들이 곁에 있다는 것도 행운이었다. 이제는 내가 팀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다.”
최근 LG가 순위싸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기에는 후반기 들어 매서워진 오지환의 방망이와 안정적인 수비가 한몫하고 있다. 오지환 때문에 이기는 경기도 차곡차곡 쌓여만 가고 있다. 그가 ‘후반기 지배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LG는 폭염 끝에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그저 반가울 뿐이다.
오지환 “개인적인 성적보다는 팀이 가을 야구를 하는 것이 목표다. 포스트시즌에 나갔다가 못 나갔다 하니까 뭔가 계속해서 아쉬움만 생긴다. 특히나 최근에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을 때 내 성적이 그리 좋지 못해서 더 그런 것 같다.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팀이 가을 야구를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내가 잘하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