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LG를 기대해도 좋다.”
지난 2월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LG 류제국의 말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세상일이라지만, 그는 자신의 역할과 팀의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확신이 있었다. 류제국은 “시즌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우리 팀을 약체로 구분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팀이야말로 도깨비 같은 팀이 될 수 있다. 분위기를 탄다면 무서운 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류제국의 말대로 시즌 막판 LG의 기세가 매섭다. 시즌 내내 성적 사이클이 있긴 했지만, 가을 바람과 함께 시작된 특유의 신바람 야구를 통해 4위 자리 굳히기에 나섰다.
가을야구 티켓을 두고 다퉜던 경쟁 팀들과의 격차가 꾸준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LG 상승세의 화룡점정은 지난 18일 삼성을 상대로 주장 류제국이 거둔 프로 데뷔 첫 완봉승이었다. 이날 경기 후 “팀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 집중해서 던지려고 했다”는 그의 말에서 LG 선수단의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었다.
LG의 바뀐 분위기, 그 중심에는 주장 류제국이 있다. LG의 경우 다른 팀들과 비교해 주장의 역할이 크게 부각되는 부분이 있다. 예전부터 '모래알'이라 불리는 팀 문화를 어떻게 바꿔놓느냐에 따라 한 해 농사가 좌지우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류제국은 “야구선수들은 시즌 중에 거의 매일같이 야구장에 나온다. 집에서 나올 때부터 야구장에 가기 괴롭고, 재미없고, 짜증나면 될 일도 안 된다. 야구장에 나올 생각을 하면 즐겁고, 동료들과 어울려서 재미있게 운동을 해야 시너지효과도 나온다. 그게 팀워크다. 주장으로서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류제국은 주장직을 맡은 후 양상문 감독의 방문을 자주 두드렸다. 선수들의 요구사항을 직접 감독에게 전달하고, 반대로 감독의 의중을 선수들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류제국이 벤치와 선수들 사이에서 소통 창구 역할을 해준 것이다. 또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늘 좋은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분위기 메이커 노릇도 자처했다. 주장과 베테랑이라는 권위대신 후배들과의 밀접한 스킨십을 통해 팀워크를 다져나간 것이다. 류제국은 “예전부터 팀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었다. 그래서 주장을 해보고 싶었다. 주장이라고 해서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하지는 않는다. 형들이 많이 도와준다”면서 “선수들의 눈만 봐도 우리 팀이 어떤 분위기 속에서 야구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LG는 올 시즌 시작 전부터 부침이 있었다. 양상문 감독이 ‘세대교체’를 전면에 내걸고 팀 체질개선에 나서면서 실험적인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양 감독은 지난해 2차 드래프트에서 베테랑 외야수 이진영을 40인 보호명단에서 제외시켰고, 이병규(등번호9)를 사실상 전력 외로 구분하면서 리빌딩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다. 베테랑들이 빠진 자리는 자연스럽게 젊은 선수들이 메웠다. 양 감독은 스프링캠프 때부터 잠재력이 있는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부여했고, 누구든 능력만 되면 적극 기용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LG를 하위권으로 분류했다.
예상대로 쉽지 않은 시즌이었다. LG는 시즌 중반까지 고전을 면치 못하고 8위까지 추락했다. 일부 팬들은 양상문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여기에 이병규(등번호9)의 기용논란까지 겹치면서 잡음은 더 커졌다. 위태롭기만 한 LG호가 중심을 잡기 시작한 건 8월에 들어서다. 그동안 꾸준히 기회를 받았던 젊은 선수들이 자리를 잡았고, 믿음에 보답하듯 결과를 만들어냈다. 팀 분위기도 한 층 더 밝아지고, 활기차졌다. “달라진 LG를 기대해도 좋다”는 류제국의 말을 실감했다.
류제국은 시즌을 앞두고 LG를 하위권으로 예상하는 의견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우리 팀을 약하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팀처럼 무서운 팀이 없다”면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은 팀”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LG는 보이지 않았던 힘에 의해 강해지고 있다. 류제국은 “올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해서 약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