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다옹] 정진호, 수사불패의 마음가짐으로
16.10.06 14:19
두산 정진호에게 삼성 구자욱은 ‘페이스메이커’ 같은 존재다. 그라운드에서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는힘을 주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정진호는 “구자욱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고 했다. ‘지금보다 더 높은 곳에서 함께 만나자’는 일종의 다짐 같은약속이었다. 그는 “자욱이는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좋은 선수가 될 것이다.자욱이도 나도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함께 높은 위치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전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한 밑거름이었을까. 정진호가 지난 4일 롯데와의 홈경기에서 끝내기 안타를 때려내며 팀의 단일 시즌 최다승 신기록 달성에 영웅이 됐다. 프로 데뷔 이후 단 한 번도 주역이 되지 못했던 정진호가 자신의이름 세 글자를 각인시키는 순간이었다.그것도 올 시즌 마지막 타석에서 말이다.
정진호가 끝내기 안타를 때려내는 순간, 그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정진호는 중앙대 시절 김명성(두산), 김민하(롯데)와 함께 팀을 대학리그 강호로 이끌었던 선수였다.
185㎝에 78㎏의 날렵한 몸매로 빠른 발과 호쾌한 타격을 자랑했다. 여기에 수비력까지 받쳐줬다.2011년 두산에 입단한 그는 ‘즉시전력감’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입단 첫 해 신인 야수로는 유일하게 스프링캠프에 합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다. 특히나 야수층이 두터운 두산에서 자리를 잡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로 대수비나 대주자로 활약했던 그는 2012년 까지 총 93경기에 출전해 타율 0.191‧12도루를 기록한 것이 전부였다.
2012시즌 후 선택한 상무 입대는 그에게 프로 생존을 위한 돌파구였다. 정진호는 “상무에서 전역할 때에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어야한다고 다짐했다. 오로지 야구만 생각했다. 절실했다”고 귀띔했다. 의지는 곧 결과로 드러났다. 입대 첫 해 퓨쳐스 올스타전에서 MVP를 수상한 그는 이듬해 3홈런 64타점‧타율 0.341, 33도루를 기록하며 타점왕에 올랐다. 탁월한 야구 센스 덕에 그는 상무에서도 몇 안 되는 그린라이트를 부여받은 선수였다.
정진호 “상무에서 두 번째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구)자욱이와 계속 붙어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연습도 같이 했다. 호리호리한 체격까지 비슷해서 통하는 게 많았다. 그때 같이 운동을 하면서 ‘너는 타격왕을 하고 나는 타점왕을 하자’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다.(당시 구자욱은 0.357의 타율로 남부리그 타격왕이 됐다.) 혼자 하는 것보다 옆에서 함께 해주는 친구가 있어서 지치지 않고할 수 있었던 것 같다.자욱이와 함께 운동하고 미래에 대해 얘기했던 그때를 잊을 수 없다. 또 감독님과 코치님이 믿어줬기에 마음껏 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
상무 전역 후 두 사람의 길은 엇갈렸다. 데뷔 첫 시즌인 2015년 11홈런 57타점‧타율 0.349를 기록하며 신인왕을 거머쥔 구자욱과 달리 정진호는 1‧2군을 오갔다. 기량이 향상됐다는 데에는 모두 동의했지만, 꿰찰 만한 자리가 없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FA(프리에이전트)김현수의 공백도 정진호의 기회가 될 수 없었다.
정진호“상무 전역 후에 자리를 잡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언제까지 백업으로 남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더라. 여전히 경쟁은 치열했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자욱이를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고, ‘나라고 못하겠냐’는 생각에 자극도 받았다.”
동료들이 ‘될 놈’이라 말하는 정진호도 처음부터 야구에 대한욕심이 충만했던 선수는 아니었다.선배 오재원의 한 마디가 그를 일깨웠다.
정진호 “과거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다가 (오)재원이 형이 ‘너 언제까지 1·2군 왔다 갔다 하는 선수 할래. 그렇게 대충해서 되겠냐.’라고 충고를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듣는데 정신이 바짝 들었다.실제로 재원이 형은 안 보이는 곳에서도 야구만 생각한다. 프로다운 자세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는 선수다.”
상무 전역 후 달라진 정진호를 옆에서 지켜본 오재원은 “진호를보면서 나도 배우는 것이 생긴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진호는 5일 교육리그 참가를 위해 오전 일본 휘닉스 교육리그에 합류했다. 올 시즌 후 두산 정수빈의 군 입대가 예정되어 있어 기회를 잡기위한 이른 담금질에 들어간 셈이다.
정진호의 좌우명은 ‘수사불패(雖死不敗·죽을 수는 있어도 질 수는 없다.)’다.
정진호 “수사불패의 상무정신이 이제는 좌우명이 됐다.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강해야 한다. 강함이라는 것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마음이다.’ ‘지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야구를 하겠다.그러다 보면 더 높은 곳에서 만나자는 자욱이와의 약속도 지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