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다옹] '시구자'에서 '불펜 필승조'로, 원종현의 가을
16.10.14 15:26
NC 원종현의 역할이 1년 사이에 ‘시구자’에서 ‘불펜 필승 조’로 바뀌었다. 지난 플레이오프에서 위암 투병 중 동료들을 응원하기 위해 시구자로 마운드에 올랐던 그가 올해는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주축 멤버로서 즐길 준비를 하고 있다. 원종현은 “작년만 해도 이런 날이 올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었는데, 스스로도 놀랍고 기분 좋다.”고 말했다.
놀라운 행보였다. 지난 5월 31일 1군 복귀전을 치른 원종현은 ‘인간승리’라는 말이 어울리는 활약을 펼쳤다. 시즌 성적은 54경기에 등판해 3승 3패 3세이브 17홀드‧평균자책점 3.18. 홀드는 팀 내 1위이자 전체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대장암 판정을 받고 “‘다시 예전처럼 야구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그는 이전보다 더 강해져있었다. 원종현은 “시련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드는 게 맞다. 아프면서 배운 것이 있다.”고 전했다.
-암 투병을 했던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올 시즌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원종현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해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복귀하기 전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더 잘 준비하려고 노력했다.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
-시즌을 치르면서 성적 사이클이 있었다. 8월에 주춤하다 9월에 회복하는 모습이었는데.
원종현 “복귀하기 전에는 다시 마운드에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기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즐기는 마음으로 하자’라고 다짐했지만, 막상 마운드에 올라가니 그렇게 안 되더라. 타자와의 승부에서 무조건 이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초심을 잃어버렸다. 그러면서 힘에 부쳤던 것 같다. 그걸 깨닫고는 마음을 비우기 위해 애를 썼다. 정말 이 순간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계속 생각했고, 몸 관리에도 조금 더 신경을 썼다.”
-1년 만에 가을야구를 맞이하는 위치가 달라졌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원종현 “지난해 선수들이 뛰는 것을 집에서 지켜보면서 ‘야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2014년 포스트시즌 때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해 이듬해 가을야구에 대한 욕심이 컸다. 개인적으로도 잘 던지고 싶었고, 팀도 우승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몸이 아파서 나가지 못하게 된 게 정말 아쉬웠다. 올해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즐겁고 뿌듯하다.”
-병마와 싸우는 내내 곁에서 힘이 되어주었던 부모님도 기뻐하실 것 같다.
원종현 “복귀전 이후부터 경기를 챙겨보신다. 누구보다 기뻐해주시고, 늘 건강을 걱정해주신다. 암 투병 내내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다. 앞으로 더 효도해야할 것 같다.”
-가을 야구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생애 첫 포스트시즌을 경험한 2014년과 비교하면 어떤가.
원종현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했었다. 그냥 나가라고 하면 나가서 공을 던졌다. 정규시즌하고는 또 다른 긴장감을 느껴서 많이 얼어있었다.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포스트시즌에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지도 사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도 안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경험이 있는 상태다.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지 감이 있다는 얘기다.”
-‘잘 할 수 있는 감’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원종현 “정말 기본적인 얘기지만, 즐겨야 한다.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얘기다. 흔히 즐기는 사람은 이길 수 없다고들 말하지 않나. 포스트시즌은 어떻게 보면 보너스게임이다. 긴장하고 경직될 필요는 없다. 플레이오프를 준비하면서도 평소 하던 대로 컨디션 조절하면서 즐겁게 운동하고 있다. 하지만, 승부는 승부다 보니 마운드에 올라가서는 욕심이 생길지 모르겠다.(웃음)”
-김경문 감독이 ‘이번 포스트시즌에서는 불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원종현 “어떤 상황에 나가든 내 몫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누구 한 명의 역할이 중요하기보다 다 같이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각오가 있다면.
원종현 “마지막 치료를 마치고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 암 진단을 받고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는데, 이겨내고 나니 그 속에서 내가 성장했다는 게 느껴지더라. 야구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고, 절실함도 생겼다. 가치관도 많이 바뀌었다. 지금 팀이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면 더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목표는 우승이지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가을 축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