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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다옹] 가을야구 함께 할 수 없는 정재훈의 아쉬움

16.10.2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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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씁쓸하네요. 어쩔 수 없죠.”

두산 정재훈의 말에서 여러 감정이 묻어났다. 한국시리즈에서 동료들과 함께 뛸 수 없다는 아쉬움과 몸 상태에 대한 체념, 그리고 우승에 대한 목마름. 축제의 일원이 되고자 했던 그의 가을이 유독 쓸쓸하게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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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훈의 한국시리즈 엔트리 합류 의지는 강했다. 그는 지난 8월 잠실 LG전 도중 박용택의 타구에 오른쪽 팔뚝을 강타당해 전완부 척골 골절 판정을 받았다. 수술대에 오른 정재훈은 재활 6주의 진단을 받고 사실상 시즌 아웃됐다. 그때부터 그의 온 신경은 가을야구에 쏠렸다. 재활을 성공적으로 마치기만 한다면 한국시리즈 엔트리 합류가 가능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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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보다 재활 속도는 빨랐다. 뼈가 예상보다 빨리 붙으면서 시즌 막판에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1군에 합류해 운동을 시작했다. 그의 얼굴도 한층 밝아졌다. 시즌 후에는 구단의 배려로 지난 14일 한국시리즈 임시 캠프가 차려지는 미야자키로 이동해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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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조롭게만 보였던 그의 가을 준비에 제동이 걸린 건 지난 18일 소프트뱅크와의 교육리그 경기에서였다. 이날 부상 복귀 후 첫 실전 등판에 나선 정재훈이 어깨 통증을 느낀 것이다. 곧바로 다음날 귀국해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지만,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진단명은 오른 어깨 회전근개 부분파열. 손에 잡힐 듯 보였던 그의 가을야구가 멀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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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훈에게 이번 가을은 그 어느 때보다 뜻 깊었다. 지난 2003년 두산에 입단한 그는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전천후 필승 구원진으로 활약했으며, 구원왕(2005년‧30세이브)까지 차지했던 소위 ‘잘 나가는 소방수’였다. 묵묵하고 우직한 성격만큼이나 팀의 뒷문을 잘 지켜준 덕에 팬들은 그를 ‘미스터 끝판왕’ ‘메시아 정’ 등으로 불렀다. 이후 마무리에서 중간계투로 자리를 옮긴 그는 2010년 홀드왕(23홀드) 자리에 오르며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누렸다. 2012년 어깨 재활 후 복귀한 그의 공에는 여전히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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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정재훈이 2015시즌을 앞두고 FA(프리에이전트) 장원준의 보상선수로 롯데로 이적했다.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정재훈은 “거짓말 같은 현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재훈이 떠나고 두산은 그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친정팀의 우승을 먼 발 치에서 바라만 봐야했던 그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2000년대 중후반 두산의 전성기를 함께 이끌며 이 기간 4번의 한국시리즈에 출전했지만 모두 준우승에 그치며 우승 반지와는 인연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재훈  “두산의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 한국시리즈에 여러 번 올라갔지만, 우승을 해본 적이 없다. 지난해 두산이 우승하는 것을 보면서 부러웠다. 두산에 오자마자 후배들에게 우승 한 번 더 하자고 말했다. 거기에 나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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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속하게도 팀은 2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게 됐지만, 정재훈은 축제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씁쓸하다”는 그에게 ‘그 속이 오죽하겠나’싶어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전할 수가 없었다. 지난 8월 부상 후 그가 했던 얘기가 생각난다.

정재훈   “두산에 와서 후배들에게 꼭 우승 한 번 더 하자고 말해서 괜히 부담을 준 것은 아니었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승하자고 말만 해놓고 부상 때문에 나만 쏙 빠진 기분이다. 그래서 더 미안한 마음이다. 올 시즌을 준비하면서 다 같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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