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다옹] 김재호 '김태형 감독님이 내년에도 두산 주장하라더라'
16.11.15 13:58
“저도 FA(프리에이전트)가 되네요.”
김재호가 웃었다. 그는 “예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올해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다. 팀이 통합우승을 했고, 나는 FA 자격을 얻었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힘든 시간들이었다. 김재호는 아마추어 시절 ‘천재 유격수’라는 칭호를 얻었지만, 그가 마주한 프로의 벽은 높았다. 프로 입단 후 백업 생활만 10년. 강산도 변한다는 그 시간 동안 김재호는 서러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생존에 대한 불안감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는 “이러다가 내 야구인생도 끝나겠다 싶어서 서글펐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건 2013시즌 후였다. 경쟁자이자 프로 생활의 멘토였던 손시헌이 NC로 이적하면서 김재호가 주전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시련 끝은 열매일까. 이후 그의 야구인생은 날개 단 듯 순항하고 있다. 올해는 주장으로서 팀의 통합우승에 기여했고, 첫 FA 자격도 취득했다. 김재호는 현재 FA 시장에서 연일 주가를 높이고 있다. 리그 최고의 유격수로 손꼽힐 만큼 공수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김재호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소속팀 두산은 그를 잔류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겨울의 시작점, 경기도 일산의 한 커피숍에서 김재호를 만났다. 지난 9월에 태어난 아들을 돌보는 데 여념이 없다는 그를 보면서 ‘행복’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 다사다난했던 2016시즌이 끝났다. 통합 우승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는데.
김재호 “프로 입단하면서부터 내 꿈은 우승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하면서 늘 우승하고는 거리가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봄 대회에서 우승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이후에 중‧고등학교를 거치고 프로에 와서 준우승만 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 이어 올해 통합우승까지 정말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 주장 완장을 차고 한 우승이었기에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김재호 “올 시즌 내내 팀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주장하기 편하지 않았냐’는 말을 많이들 하는데,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잘 나가는 팀의 주장이라 신경 쓸 것도 많고, 더욱이 FA(프리에이전트)를 앞두고 있어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1위 자리라는 게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팀들 때문에 매 경기 긴장상태고, 시즌 중간에 연패 기간도 있었기 때문에 주장으로서 감독님의 눈치가 보이더라. 별말씀은 안 하시지만, 경기에 신경을 많이 쓰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낟 긴장을 하고 신경이 쓰이더라. 특히나 NC가 워낙 무섭게 추격을 했기 때문에 선수들이 나중에는 우리 경기 끝나고 바로 NC 경기 결과를 확인하더라. 그래서 한동안은 선수들에게 ‘우리 것만 하자’며 NC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내 성격도 영향을 많이 미치기도 했다.”
- 한국시리즈 우승 후 상대 팀이자 옛 동료였던 손시헌과 이종욱을 언급한 게 인상적이었다.
김재호 “지난해 우승하기 전까지 포스트시즌은 실패의 기억으로만 남아있었다. 지난 2013년에 기적적으로 한국시리즈에 올라갔지만 준우승을 했고, 이전에도 끝이 늘 아쉬웠다. 그때 (손)시헌이 형이랑 (이)종욱이 형이랑 함께 많이 울기도 했다. 작년에도 올해도 우승을 하면서 형들 생각이 많이 났다. 형들이 이번 포스트시즌에 느꼈을 아쉬움의 감정을 너무나 이해하기 때문에 더 그랬다.”
- 주장직에 대한 부담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은데.
김재호 “주장을 하기 전까지 팀 내에서 일을 나서서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냥 뒤에서 조용히 가는 입장이었는데, 주장을 맡고 나서부터는 아무래도 나서는 일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후배들이 잘 따라줬고, 옆에 (오)재원이가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 그래서 일까. 팀 동료들이 오재원과 김재호의 케미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한다.
김재호 “내가 엄마 같은 스타일이면 재원이는 아빠 같다. 내가 조곤조곤 말하면 재원이는 막 지른다.(웃음) 재원이는 그라운드에서 좋은 파트너다. 경험도 있지만, 야구 욕심이 많아서 연구를 많이 한다. 이제 재원이랑은 서로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 봐도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이런 게 호흡인 것 같다. 사실 그라운드 안에서 코치님의 사인 이외에 재원이와 내가 선수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많이 하기도 한다. 나눌 수 있는 게 많은 선수다.”
- 올해가 김재호 야구 인생에 황금기인 것 같은데.
김재호 “2015년부터가 맞는 것 같다. 2013시즌 후 (손)시헌이 형이 팀을 이적한 후에 이듬해 주전이 됐다. 그러곤 이전까지 누리지 못했던 주전 자리에 빠져 살았던 것 같다. 경쟁자도 없고, 어차피 자리 주인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보다는 현실에 안주했다. 그러면서 2014년을 힘들게 보냈다. 성적도 그랬지만, 야구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스스로 반성도 많이 했다. 그러면서 한 단계 성숙한 것 같다. 지난해부터는 개인 성적도 그렇지만, 팀 성적까지 좋아 야구가 즐겁다.”
- 수비는 물론, 공격에서도 매서워지고 있다. 옆에서 볼 때 기술적인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다.
김재호 “이토 수석코치가 있었을 때 ‘짧게 잡고 쳐보라’는 조언을 해준 적이 있다. 그 소스에서 영감을 받아서 조금 수정을 했는데, 2014년에 약점이 드러나더라, 그래서 지난해부터 짧게는 잡되, 과감하게 스윙하는 방법으로 바꿨다. 과감하게 스윙하면서도 볼넷이나 출루율이 생각보다 좋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워낙 고민이 많은 스타일이라 코치님들이 ‘넌 너무 민감하고, 예민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남들은 직진으로 한 번에 가는 길을 나는 우회전도 해보고 좌회전도 해보는 등 여러가지 시도하고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남들이 볼 때에는 조금 피곤해 보일 수는 있다.(웃음) 그럼에도 이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서 내 야구를 만들어간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멈출 생각은 없다.”
- 좋은 시기에 FA 자격을 취득했다.
김재호 “내게도 FA 자격을 얻는 기회가 올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작년까지만 해도 FA 조건을 얼마나 채운 건지도 제대로 몰랐다. 그래도 막상 이렇게 자격을 얻고 나니 뿌듯하다. 프로에 처음 들어와서 백업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서러운 일들이 많았다.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다. 트레이드 얘기가 나올 때마다 마음도 복잡했다. 돌이켜 생각해도 힘든 순간들이었는데, 잘 버티고 견뎌내니 좋은 일도 오는 것 같다.”
- 두산에서는 잔류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김재호 “김태형 감독님이 ‘남아서 내년에도 주장하라’고 하시더라.(웃음) 지난해와 올해 감독님 밑에서 야구하면서 많이 배웠다. 누군가 나를 믿어준다는 게 선수에게는 정말 큰 힘이 된다. 감독님이 ‘힘들면 언제든지 얘기해’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런 배려도 감사했다. 나도 감독님과 오래 야구하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두산도 내게는 특별한 팀이다. 프로 입단부터 지금까지 줄곧 두산 유니폼을 입었으니 내 인생과도 같은 팀이다. 희로애락을 함께 했으니 말이다.”
- 올해 참 많은 것을 얻게 되는 것 같다.
김재호 “개인 성적뿐 아니라 팀 성적도 좋았고, 우승까지 했다. FA 자격까지 취득했고, 아들까지 얻어서 뭐 하나 부족함이 없는 한 해가 됐다. 끝까지 응원을 해준 팬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