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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다옹] 빅리그 좌절 이학주, 도전은 계속된다

16.11.2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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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갈수록 꼬이기만 하는 상황에서 우린 ‘머피의 법칙’이라는 말을 쓴다. 바라는 일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지만, 우연하게도 나쁜 방향으로만 일이 전개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왜 내게만…’이라는 씁쓸함과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겨내고 나면 그조차도 하나의 배움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미국 진출 후 8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이학주가 그랬다. 꿈의 무대를 위해 청춘을 바쳐 구슬땀을 흘렸던 그는 성공의 문턱에서 몇 번이고 넘어졌다.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고, 선택 하나가 운명을 갈랐다. 결국 이학주는 그토록 원했던 메이저리그의 꿈을 잠시 접어야했다.

 이학주는 도전의 실패를 겸허히 받아들였다. 실패를 통해 배움을 얻었고, 그 배움을 통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머피의 법칙’으로 일관하다고만 생각했던 자신의 인생을 통해 ‘실패가 두렵지 않다’는 교훈을 얻은 셈이다. 이제 그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KBO 야구규약에 따라 2년 동안은 국내 무대에서 뛸 수 없기에 고민은 깊어지고 있지만, ‘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이학주다.

 

-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 진출을 선택했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텐데.

이학주  “미국을 선택하는 선수들 모두 이유는 다 다를 것이다.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 가는 경우도 있고, 현실적으로 계약금을 많이 줘서 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는 팀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선수로 나를 잘 관리해주고 키워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선택했다. 물론 새로운 문화에 적응을 하고, 야구를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치열했고, 힘들었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기대와 옆에서 살뜰히 챙겨줬던 추신수 선배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이너 시절 굉장히 힘들었을 때에도 추신수 선배님이 필요한 도구는 물론 밥도 매번 사주셨다. 선배님이 길을 달 닦아주셔서 (최)지만이나 나나 그것만 바라보면서 열심히 했다.”

 

- 2011년 탬파베이로 이적해 촉망받는 유격수로 기대를 모았다. 메이저리그 유망주 상위 랭킹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는데.

이학주  “실력도 실력이지만, 팀 상황이 잘 맞아떨어졌다. 운도 잘 맞았고, 타이밍도 좋았다. 비시즌 때마다 한국에 들어와서도 준비를 많이 했다. 스스로도 ‘야구가 늘고 있다’는 것을 느껴서 자신감도 있었다. 특히 탬파베이라는 팀에 대한 애정이 컸다. 지금은 LA 다저스에 있는 파르한 자이디 단장이 굉장히 친근하게 잘 챙겨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시 못해볼 기록들을 세운 것 같다.”

- 2013년 트리플A 경기에서 수비 도중 1루 주자 트래비스 이시카와와 충돌해 왼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져 수술대에 올랐다. 당시 성적이 좋았기에 메이저리그 승격을 눈앞에서 놓친 기분 이었을 것 같다.

이학주  “다치고 나서 외롭고 힘들었다. 다치기 전에는 마이너리그에서 빵을 먹어도 ‘맛있다. 행복하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했는데, 부상 후 재활을 하는 내내 희망적인 생각을 못했다. 미국에서 6개월 동안 혼자 재활을 하는 내내 ‘나한테 왜 이런 시련이 오지. 내가 왜 또 부상을 당해야지’라는 생각 때문에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메이저리그 승격까지 거의 다 왔는데, 하필 지금 타이밍에 다쳤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서 충돌한 선수가 밉기까지 하더라.”

 

- 부상 이후 팀에 복귀했지만, 기량이 하락했다는 뼈아픈 평가를 듣기도 했다.

이학주  “정말 무릎만큼 힘든 재활이 없더라. 복귀 후에 내 야구가 제자리걸음을 걷는 것 같았다. 특별히 기술적인 부분보다 멘탈 쪽에 문제가 컸다. 내 스타일 자체가 옆에서 ‘잘한다. 잘한다’해야 더 잘하는 스타일인데, 팀에서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제대로 신경 써주지 못하더라. 그러면서 힘들고, 지친 모습들을 야구장에서 표현했던 것 같다. 그게 감독님이나 코치님 보기에도 안 좋았을 것이다. 만약 다시 돌아만 갈 수 있다면 템파베이 더블A 시절로 가고 싶다. 그때는 몰랐던 일들을 이제는 많이 깨달았다. 부상을 당하고 나서 나름대로 배운 게 많다.”

- 올해 시즌 중에 샌프란시스코와 계약 당시 넣었던 옵트아웃(잔여 계약을 포기하고 FA 신분을 취득)조항을 행사했다. 어떤 마음이었나.

이학주  “샌프란시스코 갈 때 두 달 안에 승부를 보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내가 고생한 7년을 걸자’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더라. 그래서일까. 트리플이 나쁜 건 아니지만, ‘언제까지 이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다. 아무래도 그동안 했던 고생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던 것 같다. 이후에 샌프란시스코 단장님께 전화를 걸어 ‘한 번 만이라도 빅리그에서 뛰게 해달라’고 했지만, 바람이 이루지진 않았다. 나로 인해 다른 선수를 엔트리에서 제외시키는 부분에 대해 부담감을 느꼈다. 그래서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었다.”

 

- 이후 샌프란시스코 내야진의 줄부상으로 마이너리그에서 승격한 선수들이 자리를 메웠다. 아쉬움이 남았을 것도 같은데.

이학주  “후회를 많이 했다. 부모님께서도 ‘7년을 참았으면서 그걸 못 참았냐’고 하시더라. 그때는 ‘아빠가 내 심정을 알아. 진짜 많이 힘들었다’고 받아쳤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 말씀이 맞는 것 같다. ‘넌 실력이 아니라 생각하는 게 멀었다‘고 하신 말씀도 이제는 이해가 된다. 그걸 받아들이고 생각을 해보니 더 슬퍼지는 것 같았다. 안되더라도 시즌을 마무리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라는 후회도 했다.”

야옹미인 이학주 2편이 내일 이어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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