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다옹] '황금 손혁'이 일으킨 넥센 마운드의 기적
16.11.25 17:00
넥센을 떠나기로 결정한 날 손혁 코치는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전화를 돌려 직접 이별의 얘기를 꺼냈다. 손혁 코치가 지난 2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선수들과의 마지막 인사에 꼭 빼놓지 않았던 말. ‘미안하고, 고맙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모바일 메신저 상태 메세지에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는 얘기를 적어두고 있다.
돌이켜보면 힘든 순간도, 즐거운 순간도 많았다. 모두가 ‘안된다. 힘들다’는 일을 해내기도 했고, 패배의 좌절감에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손혁 코치는 “넥센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했다.
손혁 코치는 ‘공부하는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른 시기에 선수 생활을 청산한 후 야구 공부에 매진했다. 자신이 습득한 이론을 바탕으로 책을 쓰기도 했고,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넥센의 유니폼을 입은 지난 2년 동안은 이론적 지식에 실전 경험을 접목시켰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어느 것 하나 그냥 넘기는 법이 없었기에 그가 쓰는 일기장에는 언제나 반성과 깨달음이 가득했다.
손혁 코치는 당분간 가족들이 있는 미국에서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다음 스텝에 대한 계획과 준비는 물론, 아버지 손혁으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하고 싶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지도자’ 손혁의 다음 도전이 기대되는 이유다.
- 야구 종사자들은 구직 활동이 한창인 겨울에 미국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들었다.
손혁 “12월 3일에 가족들이 있는 샌디에이고로 넘어간다. 아이가 기타를 배우고 있는데, 아빠한테 기타 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시즌 중에 영상을 보내오기도 했다. 아들이 이번에 발표회를 하게 됐는데, 직접 보고 응원을 해주고 싶어 미국에 머무르기로 했다. 아이 엄마도 평소에 그런 얘기를 잘 안하는데, 이번에는 와서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 일도 중요하지만,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돼 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기에 미국으로 건너가기로 했다. 스스로에게 잠시 쉬어갈 시간을 주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특히나 내 이름 뒤에 붙는 어떤 직함보다 가족을 위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 해설위원이자 코치로서는 나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냈지만, 아빠로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손혁 “대부분의 야구인들이 그렇게 느낄 것이다. 지난번에 아들이 방학 때 한국에 들어와서 한 달정도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공항에서 헤어지는데, 아들에게 ‘아빠랑 떨어져서 슬프지 않아?’라고 질문을 했다가 답을 듣고는 가슴이 아파서 혼났다. 아들이 ‘슬픈데, 여기서 울면 아빠가 슬퍼하니까 비행기 타면 운다’고 하더라. 아이 엄마나 나나 서로 바쁘다보니 다른 집들과 비교해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늘 미안한 마음이다. 미국에서 심정수한테 야구를 배우고 있는데, 잘 하고 있다고 하더라. 저번에는 (서)건창이에게 4~50분 레슨을 받았는데, ‘야구 잘 할 것 같다’고 해서 뿌듯하다. 이번에 가서 아들의 전담 코치로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웃음)”
-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정들었던 넥센 유니폼을 벗게 된 아쉬움은 클 것 같다.
손혁 “그렇다. 개인적으로도 아쉽지만, 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내년에도 함께하자는 얘기를 했었는데, 결과적으로 이렇게 됐다. 2년 동안 선수들과 함께 지내면서 정을 많이 쌓았다. 좋은 코치는 좋은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행운아다.”
- 팀을 떠난 것과 관련해 신임 감독 또는 구단과의 불화설이 나오기도 했는데.
손혁 “장정석 감독하고는 사이가 좋다. 투수코치 일을 하면서 잘 모르는 부분이나 실수하는 일에 있어서 운영팀장으로서 잘 메워줬다. 도움도 많이 받았고, 좋은 얘기도 주고받았다.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구단과도 나쁠 것이 없다.”
- 넥센 투수코치로 있는 내내 선수들과 형, 동생 또는 가족처럼 지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손혁 “코치 일을 하면서 가장 어렵다고 느낀 게 기다리는 일이었다. 코치 입장에서 봤을 때 ‘아니다’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바로바로 알려줄 수 있겠지만, 그렇게만 해서는 선수 스스로가 진정으로 납득하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선수가 안 된다고 느끼고 결핍을 느껴서 직접 질문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소통이 잘 되고, 받아들이는 속도도 빠르다. 문제는 그 기다림인데,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이기 때문에 ‘왜 가만히 있냐. 무능하냐’ 등의 얘기를 들을 수도 있다. 그래도 선수들을 지켜봐 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다. 그러다보면 선수들과 자연스럽게 신뢰관계가 생기더라.”
- 투수코치 일을 하면서 배우고, 느낀 것은 무엇인가.
손혁 “해설위원 일을 하면서 나름 충격을 받았던 부분이 있었는데, 박재홍 해설위원과 함께 중계를 하다가 ‘요즘 현장은 우리가 있을 때보다 많이 바뀌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다. 내가 공부를 하면서 익혔던 지식이 이론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 자체에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때 ‘아, 현장으로 가야겠구나’라는 결심을 했고, 때마침 넥센 쪽에서 좋은 제의가 들어와 함께 하게 됐다. 2년 동안 넥센에 있으면서 그동안 내가 익혔던 이론적 지식을 확인해보는 계기가 됐다. 어떤 부분에서는 더 확신을 갖고 됐고, 또 다른 부분에서는 부족함을 깨닫게 됐다. 이론과 실전에 대한 고민의 거리를 좁히게 된 게 가장 큰 수확이다.”
- 야구에 대한 호기심이 상당히 많다. 책이나 칼럼도 쓰고, 늘 뭔가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데.
손혁 “솔직히 나는 지금도 투수를 하고 싶다. 일찍 야구를 그만두면서 이렇다 할 전성기도 없었다. 때문에 미련이 더 남아있다. 막상 내가 은퇴를 하고나니 투수는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순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현실로 다가오더라. 야구선수는 야구를 그만두면 그저 사회초년생에 불과하다.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안 아프고 야구를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게 됐다. 내가 아니더라도 내가 도움을 줘서 잘 되는 선수들을 보면 마치 내가 야구를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어떤 선수들이 무엇을 물어보든 묻는 말에 확실하게 대답해주고 싶다. 그래서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 올해 일구회 시상식에서 지도자상을 받게 됐다.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뜻 깊을 것 같다.
손혁 “선수 생활까지 통틀어서 프로에 와서 공식적인 상은 처음 받아봤다. 내가 잘해서 받은 상이 아니라 선수들이 잘해줘서 내가 복을 받은 것 같다. 넥센 투수들을 대표해서 내가 받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상을 통해서 더 열심히 노력해서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는 코치가 되라고 주는 것 같다. 늘 믿고 맡겨주신 염경엽 감독님께 감사드리고, 옆에서 힘이 돼준 박승민 코치와 이지풍 트레이너, 김기영 홍보팀장 등 넥센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기에 좋은 상을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손혁 “올해 매 경기마다 일기를 썼다. 투수들 얘기도 있고, 경기 상황마다 내가 느끼고 배우게 된 부분들도 있다. 겨울에 쉬는 동안 이것을 책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를 하면 도움이 될 만한 자료들이다. 많은 분들이 다음 거취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데, 아직은 버리고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정리할 것은 정리도 좀 하고 싶다. 무엇보다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러다 어떤 일이든 좋은 기회가 온다면 팬들 앞에 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직은 정해진 게 없다. 아, 이 말을 꼭 해야 할 것 같다. 2년 동안 넥센의 투수코치로 있으면서 팬들의 사랑을 정말 많이 받았다. 믿고 응원해 주셔서 그 힘으로 좋은 결과로 만들어냈다. 앞으로도 선수들 많이 응원해주시길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