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다옹] 최형우에게 더할 나위 없던 2016(下)
16.12.07 15:54
12월의 시작점, 서울 모처의 카페에서 최형우를 만났다. 그가 전하는 FA 계약에 대한 솔직한 심정부터 힘들었던 지난날의 회상과 앞으로의 다짐까지. 우여곡절 많았던 그의 인생만큼이나 들려주는 이야기 역시 풍성했다. 최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산다는 그는 평범하지 않은 노력 끝에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즐기고 있었다.
- 이전에 ‘FA 120억’ 발언과 관련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100억 시대를 열었는데.
최형우 “나는 그 발언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잘 했다는 생각도 든다. 당시 FA 자격을 2년 정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얘기를 했던 부분이다. 과거와 비교해 요새는 FA 대우도 많이 좋아졌고, 2년이라는 시간을 남겨 둔 시점이었기 때문에 ‘내가 야구만 한다면 무리가 아닌 금액’이라고 생각했다. 꿈을 크게 가지라고, 120억 원의 가치가 있는 선수가 되자는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했다. 원래 기사 댓글을 잘 안보는 편인데, 지인들이 그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을 캡처해서 보내줘서 잘 봤다. 그 인터뷰가 있었기 때문에 100억 계약도 있지 않았을까.”
- 화려하게만 보이는 ‘FA 100억 계약’까지 야구인생의 우여곡절이 많았다.
최형우 “21살에 쪼단(공을 잘 던지지 못한다는 의미의 야구 속어)이 왔다. 그때 코치님들이 ‘최대한 빨리 극복해야한다. 안 그러면 그것 때문에 야구 그만 둘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에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결국 그것 때문에 방출을 당했다.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공을 던질 때마다 손이 떨리고 불안감이 커지더라. 이 증상은 아직까지 있다. 지난 2014년에 경기 중에 사정상 포수 마스크를 쓴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긴장을 많이 했다. 손도 떨리더라. 포수 포지션에 대한 애정이 컸고, 지금도 갖고 있지만 끝내 쪼단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도 방망이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이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FA는 생각도 못했다.”
- 지금도 매년 이맘때가 되면 보류선수 제외 명단이 발표된다. 과거 최형우와 같이 방출의 아픔을 겪는 선수들이 나오게 되는데.
최형우 “그걸 볼 때마다 남 일 같지가 않다. 방출을 안 돼본 사람들은 그 기분을 모른다. 뭐랄까 숨이 턱 막히고 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주전을 꿰차서 꽃길을 걸어온 선수들은 이해하지 못할 감정이다. 어쩌면 그 선수들은 방출 선수 명단이 뜨면 ‘그러려니’하고 넘길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그게 안 된다. 하지만, 그 참담한 기분을 내가 안다고 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결국 선수 본인이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다. 나도 그랬다.”
- 어려움을 딛고 일어난 선배로서 조언을 해준다면.
최형우 “포기하지 말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아마 방출된 선수들은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야구에 재능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고, 기량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면 도전하면 된다. 포기만 안하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 물론 ‘잡느냐, 못 잡느냐’는 본인의 몫이다.”
- FA 대형 계약 뿐 아니라 타격(0.376)과 타점(144개), 최다안타(195개) 등 타격 3관왕에 오른 것도 개인적으로 만족할 만한 성과다.
최형우 “사실 시즌 내내 야구장에 나가는 게 즐겁지는 않았다. 우리는 계속 1등을 했던 팀이기에 떨어진 순위나 분위기를 못 받아들이겠더라. 지면 지는 것이고, 이겨도 큰 감흥이 없더라. 뭔가 팀 분위기도 많이 어수선했다. 다른 팀 선수들에게 물어보니 ‘성적이 안나는 팀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 이전까지는 내가 홈런을 쳐도 기쁘지 않았다. 그러다 시즌 10경기 정도 남겨두고 팀 순위가 확정나면서는 개인 성적을 신경 쓰게 됐다. ‘마치고 FA다’라는 부담감을 갖지 않고 마음 편하게 뛰었던 게 좋은 개인 성적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 최형우는 나날이 진화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최형우 “기술적인 큰 변화는 없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내 성격을 부러워한다. 성적이 안 좋거나 슬럼프에 빠져도 깊이 생각을 안 하는 스타일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럴 경우 생각이 많아지기 때문에 더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빨리 털어낼 수 있어서 스트레스도 덜 받는 것 같다. 야구는 정신력이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운동선수로서 타고난 성격인 것 같다. 내야에서 공을 던질 때 쪼단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도 운명이거니 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 삼성 박해민이 ‘해외 진출이면 몰라도 다른 팀으로 가면 목숨 걸고 (최)형우 형 타구를 잡아서 타율을 낮춰주겠다. 다른 팀에 간 걸 후회하도록 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하기도 했는데
최형우 “(박)해민이가 다 잡아서 3할이 될 수 있는 타율이 0.299가 되더라도 상관없다. 최선을 다하라고 말해주고 싶다.(웃음)”
- FA 대형 계약 선수의 경우 첫 해 부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는데. 좋은 조건에 팀을 이적까지 한 상황이라 성적에 대한 부담감과 책임감이 클 것 같다.
최형우 “아직 야구를 하지도 않았는데, 부정적인 주위 말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늘 나는 ‘3할-30홈런-100타점’을 목표로 하고 야구를 해왔다. 쉬운 기록은 아니지만, 내가 세운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가 뭐라 해도 팀과 나 자신에게 창피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물론 좋은 계약을 했고, 팀을 옮겼기 때문에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있다. 무엇보다 준비를 잘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오는 17일에 괌으로 개인 훈련을 떠난다. 몸 잘 만들어서 내년에도 ‘제 몫을 해내는 선수’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