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다옹] '송구 공포증' 극복한 박민우의 성장
16.12.08 15:26
프로야구에는 입스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선수들이 꽤 있다. 올겨울 FA(프리에이전트) 100억 시대를 연 최형우(KIA)는 ‘송구 공포증’으로 인해 포지션 변경과 방출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KIA 김선빈의 경우 2008년 신인 시절 2루수로 첫 출전해 SK 박정권의 빗맞은 타구를 놓친 게 빌미가 되어 ‘뜬공 공포증’을 앓게 됐다. 물론 피나는 노력과 훈련으로 공포증을 어느 정도 이겨냈지만, 여전히 그는 뜬 공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있다.
NC 박민우도 그랬다. 올 시즌 초 그는 그라운드 위에서 커져버린 심리적인 부담감과 불안감 탓에 ‘송구 공포증’을 앓았다. ‘송구 직전까지 머릿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싸운다’고 말할 정도로 힘든 시간들을 겪었다. 1군 엔트리에서 말소돼 상담을 받기도 했고, 한동안 수비에 나서지 않기도 했다.
극복의 답은 스스로에게 있었다. 흠이 생길까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아 결점 없는 삶보다는 실패와 상처 속에서 성장하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올 시즌 고군분투했던 자신에게 기꺼이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다.
- 올 시즌 ‘송구 공포증’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
박민우 “공을 던질 때 불안감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나를 이해할 수가 없다. 이건 뭐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내가 가진 불안감은 나만 느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그 누구의 말도 위로가 되진 않았다. 정말 많이 힘들었고, ‘이러다 영영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나’라는 무서움까지 느꼈다.”
- 이전 인터뷰에서 ‘송구를 하기 전 그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싸운다’고 말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박민우 “천사는 ‘자신 있게 던져. 괜찮아. 실수하면 어때’라고 용기를 주지만, 악마는 ‘그러다 실책하면 너 때문에 팀이 피해를 볼지 몰라. 차라리 던 지지마’라고 말한다. 공을 잡고 있는 짧은 순간에 별별 생각이 다 드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팀에서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줬다. 경기를 치르면서 서서히 불안감이 자신감이 되더라. 예전에 플레이할 때보다 심리적으로 훨씬 편하다. 천사가 이기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
- 그래서일까. 지난 2년과는 달리 이번 포스트시즌에서는 ‘가을 징크스’를 이겨낸 모습이었다.
박민우 “시즌하고 다르게 플레이오프나 한국시리즈는 매 경기 팀이 이기지 못하면 다음이 없다. 개인보다는 팀이 잘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때문에 나 혼자 잘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 다만 나한테 붙은 꼬리표를 조금씩 없애갈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 박민우에게 붙은 꼬리표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박민우 “수비 아니겠나. 많은 분들이 박민우하면 ‘송구 트라우마’ ‘수비 불안감’ 등을 떠올린다. 내가 평생 해결해야하는 숙제다. 플레이할 때마다 여전히 신경을 쓰고 있다. 결국은 내가 어떻게 해내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실패하고 실수한다고 해서 도망가거나 작아지지 말고 과감하게 이겨내야 한다. 정답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더 그렇다. 내년에는 더 자신감있게 할 생각이다.”
- 한국시리즈 직후 김경문 감독에게 ‘감독님, 죄송합니다. 내년엔 꼭 우승시켜드릴게요’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김 감독이 기특해하기도 했는데.
박민우 “원래 감독님께 매년 시즌이 끝나고 메시지를 보냈었다. 신인 때부터 늘 잘 챙겨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김경문 감독님과 함께했기 때문에 지금의 박민우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개인적으로 다사다난했는데, 힘들 때마다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배려해주셨다. 감독님 덕분에 더 잘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나 싶다. 내년에는 꼭 우승시켜드리고 싶다.”
- ‘도루왕 제조기’로 정평이 나 있는 김평호 코치가 NC에 합류했다. ‘내년에는 박민우를 도루왕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박민우 “도루왕 타이틀에 대한 욕심은 있다. 올해는 많이 못 뛰었지만, 2014년과 2015년에 2년 동안 도루 부문 2위를 차지해서 나름 한을 품고 있다. 그동안 전준호 코치님한테도 많이 배웠다. 여기에 김평호 코치님이 갖고 계시는 노하우가 합해진다면 도루왕 도전에 조금 더 자신감이 붙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도루를 좀 더 잘할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 마무리캠프 때부터 준비를 하고 있다. 비시즌이지만, 체중을 늘리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있고, 지금부터 조금씩 순발력을 키우는 훈련을 하고 있다. 내년 시즌에는 꼭 도루왕 타이틀을 따고 싶다.”
- 수비에서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공격에서는 한 층 더 발전한 모습이다. 특히나 1번 타자로서 삼진 수가 줄고(108개→70개), 출루율이 높아진 것(0.399→0.420)이 고무적이다.
박민우 “올해 타격폼을 바꿨다. 이전에 이용규 선배가 '우리 같은 타자들은 절대 삼진을 쉽게 당하면 안 된다'라고 말한 것이 도움이 됐다. 그래서 타석에서 공을 길게 보기 위해 다리를 들지 않은 채 타이밍을 맞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삼진이 줄었고, 출루율도 좋아지더라. 야구라는 것이 늘 뭔가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는 한 해였다.”
- 김경문 감독이 ‘(박)민우는 앞으로 정근우(한화)의 뒤를 이어서 국가대표 2루수가 돼야할 선수’라고 말했다. ‘송구 공포증’을 극복하고 국가대표 2루수가 됐다는 점에서 정근우에게 보고 배울 부분이 많다.
박민우 “국가대표는 모든 선수들의 꿈의 무대다. 나 역시도 국가대표의 꿈을 갖고 뛰고 있다. 이번에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팀 명단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국가대표는 말 그대로 나라를 대표하는 자리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말했던 꼬리표를 떼야한다. 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나 이미지가 바뀌면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다.”
- 우여곡절이 많았던 시즌이었지만, 그만큼 더 성숙해진 것 같다. 내년에 대한 기대감도 드는데.
박민우 “성숙보다는 한 해, 한 해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올해 풀타임 출장을 못 한 게 너무나 아쉽다. 내년에는 안 다치고 엔트리에서 빠지는 일 없이 꾸준히 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