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0승 투수' 정민태가 20승에 도전하는 양현종에게
17.09.29 11:52
기록 달성을 눈앞에 둔 선수의 마음은 어떨까. 아마도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만이 그 심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마지막 20승 투수’ 정민태 한화 육성군 투수코치가 ‘21세기 첫 토종 20승’에 도전하는 양현종(KIA)을 바라보는 마음이 그렇다. 정 코치는 “양현종의 경우 팀 성적과 본인의 기록까지 함께 챙겨야하기 때문에 어깨가 무거울 것”이라고 말했다.
양현종이 2일 수원 kt전에 시즌 20승 사냥에 나선다. 이미 팀 한 시즌 토종 투수 선발 최다승 기록을 경신(전 조계현 KIA 수석코치의 18승)한 그는 20승을 달성한다면 외국인, 토종 할 것 없이 타이거즈의 한 시즌 선발 최다승 투수 타이틀을 갖게 된다. 리그를 통틀어서도 21세기 첫 토종 20승 기록이다. 팀 동료인 외국인투수 헥터와 나란히 도전하는 20승인만큼 다승왕 타이틀은 물론, 시즌 MVP 타이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시즌 막판까지 두산과 선두싸움을 진행 중인 팀에 정규시즌 우승을 안겨주는 승리가 될 수도 있다. 양현종에게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20승인 셈이다.
20승 달성이 대단한 이유는 역대 기록을 찾아보면 알 수 있다. 최근 토종 20승(구원 1승 포함)은 지난 1999년에 정민태(당시 현대) 코치가 달성했다. 18년 전 일이다. 순수 선발승으로 20경기를 모두 채운 것은 22년 전인 1995년 이상훈(당시 LG)이다. 그동안 국내 몇몇 투수들이 20승 근처에 가긴했지만, 뜻을 이루진 못했다.
이미 20승이라는 산에 오른 경험이 있는 정민태 코치가 야구 선배로서 양현종에게 조언을 건넸다.
- 양현종이 20승 달성에 도전한다. 외국인투수 헥터와 더불어 19승이기에 20승 달성에 개인 타이틀은 물론 팀 성적도 달려있다.
“현재 우리나라 토종 선발 중 김광현(SK)과 더불어 가장 강력하다고 볼 수 있는 선수다. 구위가 좋고, 연차가 쌓이면서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도 탁월해졌다. 사실 진작 이 정도의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했다. 예전과 비교해 타고투저 현상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더 가치 있는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토종 선발 20승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 선발 투수에게 20승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팀 사정상 구원 1승이 포함된 20승이다. 투수에게 승리라는 것은 그렇다. 나 혼자만 잘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결과가 아니다. 특히나 선발 투수는 더욱 그렇다. 야수들이 잘 막아주고, 잘 쳐줘야하고, 불펜진의 능력도 중요하다. 때문에 선발 20승은 운도 좋아야한다. 혼자 만들어낼 수 있는 기록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회가 흔하지도 않다.”
- 1999년에 20승 달성을 앞두고 어떤 기분이 들었나.
“그 해는 내가 야구에 눈을 뜬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당시에 (나는)직구, 슬라이더 두 개만 던졌는데, 1997년에 가래톳 부상을 당하면서 몸에 힘을 실어 던질 수 없게 됐고, 구속이 떨어졌다. 더 이상 강속구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기에 이전에 일본인 코치에게 잠시 전수받았던 느린 커브를 던질 생각을 했다. 공으로 윽박지르는 피칭이 안 되니 결국에는 제구력과 다양한 수 싸움을 가져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좋은 결과들이 뒤따라왔고, 야구를 하는 것이 즐거웠다. 더욱이 팀 성적이 좋았고, 내 구위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 당시 20승까지 1승을 남겨두고 시즌 마지막 전 경기인 쌍방울전에 나갔는데, 경기 내용이 상당히 타이트했다. 그때는 그 경기에서 20승을 못하면 시즌 마지막 경기에도 내가 등판할 각오로 던졌다. 그만큼 기록이 욕심났다.”
- 양현종이 20승을 달성한다면, ‘20세기 마지막 20승 투수’라는 타이틀은 온전히 역사가 된다.
“내가 은퇴를 한 후에 여러 기록이 남았지만, 그것도 언젠가는 후배들이 깨 주길 바랐다. 그래야 한국야구가 더 발전하는 것이 아니겠나. 지금도 늦은 감이 있다. 그만큼 토종 선발진이 많이 약해진 것 아니겠나. 앞으로 더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와서 새로운 기록들을 세워줬으면 한다.”
- 20승 도전을 앞둔 양현종에게 한마디 한다면.
“양현종의 경우 팀 성적과 본인의 기록까지 함께 챙겨야하기 때문에 어깨가 무거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뭔가를 할 필요는 없다. 그냥 하던 대로만 했으면 좋겠다. 자칫 긴장하고 욕심을 부리면 밸런스가 무너질 수도 있다. 머리는 비우고 평정심을 가져야한다. 앞서 말했지만, 투수의 승리는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믿고, 야수들을 믿어야한다.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사진제공 | 일간스포츠
김유정 기자 kyj@happyris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