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리뷰: 소년, 청순 살벌한 '소녀'를 만나다
13.10.22 13:12
감독: 최진성
출연: 김시후, 김윤혜
줄거리
사소한 말실수에서 비롯된 소문 탓에 친구가 자살한 상처를 지닌 윤수(김시후). 시골 마을로 이사하던 날, 얼어붙은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소녀 해원(김윤혜)에게 빠져든다. 머지않아 마을 사람 모두가 함부로 말하며 대하는 그녀에 대해 알게 되고…소문 때문에 힘들었던 자신의 과거와 꼭 닮은 상처를 지닌 소녀를 그냥 두고만 볼 수가 없게 되는데…잔혹한 소문이 또다시 마을을 휩쓴 어느 밤, 윤수는 칼을 든 채 방으로 들어가는 해원을 목격하고, 다음 날 그녀의 아버지가 한쪽 팔이 잘린 시신으로 발견된다. 점점 끔찍해지는 사건과 소문, 차디찬 시선 앞에서 결국 윤수는 해원을 지키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잔혹·핏빛 로맨스를 표방하는 [소녀]
영화는 [러브레터]의 명장면인 와타나베 히로코(나카야마 미호)의 "오겡끼데스까"를 연상시키는 흰 설원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포스터속 '소녀'의 순백의 이미지 처럼 이 영화도 그러한 아름다운 영화가 될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아쉽게도 [소녀]가 추구하는 정서는 이와는 전혀다르다. 순백의 색깔이 배경인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있지만, 안을 들여다 보면 암울하고 추악한 세계다. 성인들을 비롯한 아이들까지 소문으로 서로를 헐뜻고, 마을의 유일한 자산인 돼지들은 죽어가며 온갖 악취와 폐수가 마을을 더럽힌다. 소년은 도시가 준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시골로 전학오지만 이곳 또한 도시와 다를바 없는 거짓되고 추악한 세상이다. 그곳에서 자신과 비슷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소녀를 만나며 서로의 아픔을 보다듬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이것이 영화 [소녀]의 전체적인 구조이자 구성이다. 아름답지만 세상은 추악하고 아픈 상처를 지닌 두 청춘은 살아남기 위해 싸우며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구성은 단순하지만 영화가 추구하려는 이미지는 강렬하다. 그래서 [소녀]를 보자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작품들이 많다. 설원속 세상의 배경과 성장하지 못하는 두 소년,소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스웨덴 영화 [렛미인]이 연상되며, 김기덕 감독의 작품에서 느낄수 있는 몽환적인 세계관속의 잔혹한 이미지가 생각날 정도다. 게다가 영화는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를 암시한듯 파장이 컸던 '구제역 사건'을 비중있게 그려낸다.
그럼에도 영화가 추구하려는 방향은 로맨스다. 소년, 소녀가 머무르는 공간은 아름답게 그려지고 이와 상반된 외부세계를 상반되게 그려내면서 관객들이 이들의 로맨스를 애틋하게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사춘기 청소년들의 수줍은 로맨스를 보는듯한 여운이 대담하게도 잔인한 핏빛 영상이 첨가된 비주얼과 절묘하세 결합되며 묘한 결과물을 만든다. 서로를 의지하며 아름답게 살아갈수도 있지만 영화속의 현실은 둘의 사랑을 순탄하게 완성하려 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현실적인 방향을 추구하는 영화였다면 '소나기'식의 비극을 향해 달려가는 작품이 되겠지만, 영화속 주인공들은 그러한 관습에 반기를 들며 폭력으로 이에 대항한다. 세상이 추악한 만큼 순수한 주인공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똑같이 추악해야 하는게 이 영화속 세계의 법칙이다.
*때로는 어설퍼 보였던 [소녀]
영화가 추구하는 '잔혹 로맨스'가 윤리적이든 비윤리 적이든, [소녀]는 묵직하게 자신의 주관대로 나간다면 그만이며 강렬한 영화로 기억되어질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러한 분위기의 영화에 다른 부가 메시지와 이야기를 첨가하려 한다면 어설프게 보일뿐이며 때로는 이것이 이 영화의 '독'인 셈이다. 전자에서 언급한 영화가 비중있게 그려내는 '구제역 파동'과 같은 현실속 문제와의 연결은 어설퍼 보이며 굳이 연결을 안해도 되었을 부분이었다. 물론, 영화의 비주얼을 통한 메시지 전달에는 성공했기에 이 부분을 사회적인 시각에서 보려는 시도는 안해도 될것같다.
영화의 주제이기도 한 '말'과 '소문'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도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미지를 통한 감성전달에만 몰두해서 그런지 본래의 주제의식이 무엇이었는지 모호할 뿐이다. 상황반전을 위해서 갑작스럽게 급전개 되는 중반부 사건의 연결도 다소 미흡해 김기덕 감독의 전작들 처럼 투박하게 그려진다. 주인공들의 로맨스를 부각하기 위해서 부가적으로 언급된 이야기와 캐릭터들이 뭍혀져 버린것도 아쉽다. 이처럼 세세핟고 외적인 요소로 영화를 감상하려 한다면 너무나도 아쉬운 작품으로 인식될수 있다.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 [소녀]
[소녀]는 앞에서도 계속 이야기 했듯이 로맨스의 시점과 시각적인 이미지로만 감상해야 한다. 아름다운 로맨스와 잔혹한 이미지가 함께하는 이중주는 재미있고 묘한 느낌을 전달해 줄것이다. '순수의 잔혹한 반격'이란 의미에서 영화가 보여주는 갑작스러운 잔혹한 로맨스의 연결은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우면서 섬뜩한 기운까지 느끼게 만든다. 부가적 메시지에 실패했어도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 비주얼과 이미지 만으로도 감성적인 요소를 불러와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그래서 이 영화가 비극을 향해 간다한들 그 순간 까지도 아름답게 기억할수 있을것이다.
그점에서 영화는 영리했다.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B급 적인 요소가 담겨진 개성강한 영화로도 볼수있기 때문이다. 정적이었던 영화가 후반부의 급반전과 같은 잔혹함을 이어가게 되면서 잠시나마 영화의 장르가 호러로 변하는것 같은 묘한 기운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것은 소녀가 타는 스케이트를 공포적인 요소로 그려내는 의도적인 영상미도 한몫했다. '아름다운 잔혹 로맨스'로 불려지는 영화이기에 이 영화는 여러 장르적 시각에서 다양하게 해석할수 있다. 어찌보면 지나친 장르적 모험을 시도해 애매모호한 작품으로 남겨질수 있는 위험을 않고 있지만, 본래의 연출적 의도인 '로맨스'의 방향을 끝까지 유지하려는 감독의 의도덕분에 예상치 못한 새로운 감성을 전달할 멜로물이 탄생되었다.
[소녀]는 올 가을 특별한 감성을 자극하는 가을에 제격인 영화이며, 강렬한 감수성을 전달해줄 작품이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거부감을 줄수도 있는 작품이며 완성도적인 측면에서 아쉬움을 주고 전개면에서 어설픈 작품이지만, 감성을 자극하는 강렬한 요소 만으로도 이 모든것을 극복하고 재미있게 감상할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비주얼:★★★☆
연기: ★★★☆
스토리:★★★
연출력:★★★☆
총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