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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긴 여운] 탈북소녀는 왜 교내 왕따에 동조했나? 한예리 주연의 [잘 되길 바라]

17.07.0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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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되길 바라, 2010]
감독: 이훈규
출연: 한예리, 임성미, 박미리, 형영선
상영시간: 20분 20초

줄거리
효진과 연주는 탈북해 남한으로 건너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이들은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감추느라 아이들과 활발한 교우관계를 못하며 외롭게 지내고 있다. 새터민 상담을 오래한 이 선생님이 이 둘을 설득해 북한에서 온 사실을 털어놓기를 요청하자, 이에 용기를 얻어 탈북 사실을 밝힌다. 남한 아이들의 반응은 의외로 긍정적이다. 한편 같은 반의 정은이란 아이는 가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 아이들 사이에서 왕따로 지내고 있다. 매일 혼자 밥을 먹고 외롭게 지내는 정은을 보고 효진은 동정심을 느껴 친해지려 노력한다. 반면 연주는 자기 앞가림도 힘든 처지에 왕따까지 챙기다 보면 효진까지 왕따가 될 것이라며 효진이 정은과 어울리는 것을 반대한다. 하지만 효진은 정은이를 같은 식사 테이블로 끌어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게 만드는데…

프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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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리의 신인 시절 풋풋함을 볼 수 있는 2010년 단편 영화. 두만강을 건너온 탈북 소녀들은 평안하다고 생각된 남한 사회에서 예상치 못한 건너야 할 또 다른 강을 맞이하게 된다. 그 강은 자유를 위해 건너던 두만강과 달리, 남한 사회의 보이지 않는 압력과 계급이 존재한 교내 문화의 '악습'으로, 이에 동조하지 않을 경우 북한에서 더욱 더한 무시와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놀랍게도 그것은 법이 아닌 집단의 암묵적인 합의라는 사실이다. 

[잘 되길 바라]는 탈북 소녀의 시선으로 왕따 문화를 바라보게 해 두 가지 의미 있는 관점을 유심히 다루려 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탈북자로 상징된 사회적 약자가 지닌 집단 문화에 대한 심리적 두려움, 둘째는 왕따 현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현실적인 시선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오래전부터 남한 학교의 '따돌림 문화'를 들어왔던 소녀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 따돌림으로 연결될까 우려했으나, 교우들의 관심으로 무난한 적응을 이어나가게 된다. 그러던 중 그들 앞에 놓인 정은이라는 왕따 피해자가 등장하자, 학교생활을 쉽게 적응하지 못했던 자신들의 과거를 떠올리며 각자 다른 반응을 보이게 된다. 

정은을 감싸려는 효진, 정은을 무시하려는 연주. 한쪽은 순수한 선의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쪽은 지극히 현실적인 시선으로 이를 회피하려 한다. 효진은 자신들을 편견없이 받아준 교우들의 마음씨를 생각하며 정은을 도우려 하지만, 그녀로 인해 자신들이 따돌림 당할 것임을 직감한 연주는 효진에게 정은을 무시하라고 충고한다. 힘들게 집단의 구성원으로 인정 받은 만큼 그들의 기분을 거슬리게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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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에 동정심을 갖고 그들을 돕는 것이 옳은 행동이지만, 이상하리만큼 학생들은 효진의 그러한 행동을 불편하게 바라본다. 그 이유는 연주가 우려하듯 자신 또한 왕따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이 구성원들에게 전염병처럼 퍼졌기 때문이다. 두려움의 원천에는 '일진'과 같은 힘의 논리로 대변되는 학원 폭력이 배후에 있었다. 집단에 적응하기 위해 감추고 싶던 치부를 드러냈던, 소녀들은 다시금 소외될 위기에 놓이게 되고, 그들을 맞아준 교우들은 집단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효진을 향해 암묵적인 위협을 가하게 된다. 효진은 그로 인해 자신 또한 또 다른 왕따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제 막 적응한 학교생활에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던 효진은 자신의 앞날과 윤리적 행동 사이에 깊은 갈등을 하게된다. 

이훈규 감독은 소녀들의 감성어린 시선으로 분위기를 조성하며, 따돌림이 잔재된 냉혹한 현실과 딜레마에 놓인 인물의 심리를 흥미로운 드라마로 표현해 일상의 부조리함과 타협해야 하는 어두운 현실을 담담하면서도 묵직하게 다루려 한다. 특히 대사가 배제된 순간에 영화만의 표현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암묵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따돌림과 그에 동조하는 구성원들의 모습은 현실속의 우리 또한 알게 모르게 따돌림과 같은 부조리함에 동조하고 있지 않은지 냉철하게 묻는다. 또한 영화 초반과 마지막 장면의 침묵적 분위기속에 등장한 효진의 눈빛은 영화의 제목인 '잘 되길 바라'를 따돌림당하는 정은에게 보내는 그녀의 마지막 선의가 아닌가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자 왕따 피해자를 향한 위로의 메시지 같은 의미 있는 여운으로 남겨진다.

[잘 되길 바라]는 따돌림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공존하는 현실 속에 그려진 딜레마와 그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 작품으로, 잘못된 행위에 참여해야 하는 개인의 아픔과 모두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침묵한 왕따 문제를 외면하고 있지 않았는지 냉정하게 묻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효진과 같은 약자였으나, 그로 인한 두려움으로 비겁하게 돌아선 자의적 피의자가 아니었을까? 그러한 암묵적 상황이 '일진'으로 대변된 거대한 부조리한 권력이 이 세상을 지배하게 만든 원인이 아닐까? 그 점에서 보면 [잘 되길 바라]의 왕따 설정은 아마도 지금의 한국 사회에 만연하게 퍼진 현실적 문제를 향한 의미심장한 풍자이자 비판적 메시지일 것이다. 


결정적 장면

#1. 턱걸이하는 효진 (3분 4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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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탈북자임을 알린 후 체육 시간에 자신의 장기인 턱걸이를 통해 주목을 받는다. 친구들이 생긴 이후 자신감을 얻게 된 효진의 활발한 학교생활 풍경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2. 다투는 탈북 소녀들 (8분 4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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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돌림을 당하는 정은을 받아준 것에 대해 연주와 효주가 계단을 올라가며 다툰다. 독특하게 생긴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며 다투는 모습이 이후 발생하는 불길한 사건에 대한 여운을 남긴다. 효진과 정은의 위치를 번갈아 가며 바뀌는 카메라 앵글이 인상적이다.


#3. 잔인한 따돌림 (15분 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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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 효주와 정은이 반 아이들로부터 동시적 따돌림을 당하는 장면을 잔인하게 그렸다. 체육 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들어온 아이들, 효주와 정은이 마지막에 들어오려 하자 한 아이가 아주 거친 반응을 보이는데…반 아이 누구 하나 나서지 않은채 암묵적인 따돌림이 진행되는 장면으로, 일상에서 발생하는 부조리함에 침묵하는 집단과 상처받는 개개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4. 딜레마에 선 효진  (17분 2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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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의 옆자리에 않지 않는다면, 다시 무리에 포함해 주겠다는 연주의 말에 효진은 갈등하게 된다. 모든 반 아이들이 효진을 바라보는 가운데, 효진은 식판을 든 채로 자포자기한 정은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힌다. 과연, 효진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영화의 가장 긴장되는 장면이자, 집단에 의해 암묵적으로 자행되는 '왕따'가 공개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준 가슴아픈 장면이다. 딜레마에 빠진 채 슬픈 표정을 짓는 한예리의 표정이 서글픈 감정을 절로 불러오게 한다. 

[잘 되길 바라]는 바로 아래 영상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잘 되길 바라] 감상하기 (제공 : 씨네허브)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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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상=씨네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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