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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리뷰: 부산의 [변호인],1980년 광주의 [택시운전사]로 돌아오다 ★★★☆

17.07.1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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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2017]
감독: 장훈
출연: 송강호, 토마스 크레취만, 유해진, 류준열

줄거리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은 외국손님을 태우고 광주에 갔다 통금 전에 돌아오면 밀린 월세를 갚을 수 있는 거금 10만원을 준다는 말에 독일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영문도 모른 채 길을 나선다. 광주 그리고 사람들. “모르겄어라, 우덜도 우덜한테 와 그라는지…” 어떻게든 택시비를 받아야 하는 만섭의 기지로 검문을 뚫고 겨우 들어선 광주. 위험하니 서울로 돌아가자는 만섭의 만류에도 피터는 대학생 재식(류준열)과 황기사(유해진)의 도움 속에 촬영을 시작한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만섭은 집에 혼자 있을 딸 걱정에 점점 초조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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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이 1980년 광주의 '택시운전사'로 변신했다. 이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택시운전사]는 많은 면에서 송강호의 전작 [변호인]의 영향이 많이 묻어나 있다. 민주화, 변화에 전혀 무관심한 채 오로지 가족의 생계만 걱정하는 평범한 중년남이 민주화의 현장과 마주하며, 책임감 있는 개인이 되어가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주제다. 다른 점이라면 [변호인]이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의 전기적 이야기와 시대의 흐름에 집중했다면, [택시운전사]는 독일 기자를 태운 평범한 택시 운전기사의 시선을 통해 그 시절 광주의 참혹한 현실과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개인의 변화를 유심히 담아내려 했다. 

주제 면에서는 이전의 광주 민주화 항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과 다를 바 없지만, 시점적인 부분에서 영화만의 차별점을 두려  한다. 서울과 도쿄에 있는 외지인들이 계엄령이 떨어진 광주에 오게 돼 생생한 위협과 위기를 맞게 되는 과정을 목격하게 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만섭과 피터의 눈을 통해 그려지는 광주의 현장은 인권이 유린당하는 공포의 순간으로 그려지며, 그 속에서 인간의 가치와 진실 추구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싸우는 광주 시민들의 정감 있는 모습을 유심히 다루려 한다. 

그런 와중에도 송강호 주연의 영화답게 특유의 인간미와 유머러스함이 담긴 휴머니즘적인 분위기는 빠지지 않는다. 그가 연기하는 만섭은 조용필의 음악에 흥얼거리며 운전하고, 수다를 떠는 익살스러움과 하나밖에 없는 딸과 사글세를 걱정하는 모습은 그동안 그가 연기한 대한민국 중년 가장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와 달리 손님인 피터는 반대되는 성격을 지닌 인물로 냉철한 성격과 기자라는 사명감에 투철한 인물이다. [택시운전사]는 이처럼 다른 국적, 언어, 성격을 지닌 두 사람이 광주로 가는 여정을 유심히 담으며, 이들이 운전사와 승객의 관계를 넘어서 동료가 되어가는 과정에 집중한다. 이 부분에서 영화만의 흥미와 드라마가 완성된다. 

그만큼 [택시운전사]는 캐릭터에 의존해 정서를 만들어내는 영화인만큼 이들 받쳐줘야 할 각본과 배우들의 연기가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했다. 민주화를 배경으로 한 작품의 전형성을 그대로 담고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두 개의 장점이 빛났기에 영화가 추구하려 한 휴머니즘적인 분위기가 정감있게 다가올 수 있었다. 그러한 장점이 돋보인 부분은 만섭과 피터가 만나게 되는 광주 시민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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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이 적은 조연 격 캐릭터들이지만, 분명한 특징과 개성을 드러내며 영화의 드라마를 완성한다. 억압의 순간에도 자신들을 취재하러 온 피터와 만섭을 따뜻한 인간의 정으로 대해주는 대학생, 택시 운전사 집단, 현지 기자 평범한 시민들이 군부 독재의 희생양이 되는 과정은 휴머니즘과 참혹한 참상의 정서를 오가게 된다. 

광주의 참혹한 현장을 묘사하는 방식은 극단적인 잔인함과 거리가 먼 심리적인 두려움과 정서적인 슬픔이 교차하는 방식으로 그려진다. 최루탄 연기를 상징하는 백색의 연기와 피를 상징하는 붉은 영상미를 극명하게 대비시켜 심리적 긴장감을 조성함으로써, 당시 현장의 생생한 공포와 참혹함을 객석으로까지 전하려 한다. 그렇게 관객이 맞이하게 될 감정은 만섭과 피터가 느끼게 되는 심리적 감정을 통해 전달된다.   

만섭의 시선이 소시민이 마주하게 되는 두려움에 대한 것이라면, 피터의 시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참혹한 순간을 봐야 하는 언론인의 무기력한 감정이다. 시위와 사회의 변화를 무시하던 만섭은 자신을 돕던 평범한 이들이 희생되는 것을 보며 감정적 동요를 느끼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 안에 잔재되어 있던 정의감을 깨우며 이들을 도우려 한다. 시종일관 카메라를 들이대며 참혹한 현장을 촬영하던 피터 또한 시간이 흐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무기력함과 슬픔의 정서를 느끼게 되고,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광주 시민의 모습에서 정의로운 언론인의 사명감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고군분투한다. 

두 인물의 이러한 심리적 변화가 [택시운전사]의 주제인 동시에 광주 민주화 운동을 향한 상징이자 메시지가 된다. 만섭의 각성은 폭력과 억압 속에 짓밟히기보다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시민 정신이며, 피터는 거짓 앞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언론인의 본보기다. 특히 언론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부분이 이 영화에 가장 돋보이는 메시지 중 하나다. 현재도 문제가 되고있는 80년대 '가짜 뉴스'가 등장해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폄하하고, 다른 지역 시민들에게 오해를 불러오게 하는 대목은 기자와 언론 분야에 일하는 모든 이들이 유심히 봐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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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인물의 심리적 변화와 주변의 다양한 에피소드가 더해져 유머와 인간미가 넘치는 드라마가 무난하게 완성된다. 이야기의 긴장감을 위해 두 주인공이 군인들의 추격을 받게 되는 '추격전' 형태의 이야기를 중요한 순간에 등장시켜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더하는 부분은 실제와는 다른 창작적인 설정인 탓에 다소 감정 과잉 적인 장면으로 보일 수 있다. 때문에 이 부분은 보는 이에 따라 극명한 호불호 적인 정서를 불러올 수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휴머니즘 드라마를 지향하는 이 영화의 전체적 분위기에 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인간미'의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장르적 변형을 무난하게 끌어내는 장훈 감독의 연출력과 함께 배우들의 열연을 통해 만들어지는 연기는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대변한다. 모든 배우가 제 역할을 충실히 해냈지만, 토마스 크레취만이 연기한 피터의 캐릭터가 좀 더 입체적이지 못한 부분이 아쉽게 느껴진다. 송강호는 영화를 보는 모든 이들이 웃고, 울게 만드는 명불허전의 연기를 펼치며, 그가 왜 한국 영화의 기둥인지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그들과 함께 마주한 1980년 광주의 현장은 참혹한 슬픔을 불러오지만, 한때 따뜻한 사람들이 살았던 정겨운 곳임을 깨닫게 해준다. 그 정겨운 이들은 바로 깨어있는 2017년 우리의 모습이며, 그 시민 정신이 오늘날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해낸 위대한 순간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택시운전사]는 8월 2일 개봉한다. 

작품성:★★★☆
오락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 ★★★☆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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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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