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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남한산성] 이병헌, 광해를 배척한 최명길을 연기한 소감은?

17.10.17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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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 그렇지만 영화 또한 아이러니한 순간이 있다. [광해:왕이 된 남자]에서 광해를 연기했던 이병헌이 이번 영화 [남한산성]에서는 광해를 몰아내는데 주축이 되었던 최명길을 연기하게 된 것이다. 인물의 기준에서 봤을 때 원수 사이와도 같지만, 이병헌은 그러한 아이러니가 주는 재미 보다는 최명길이 지닌 소신적인 행동에 더 주목하고 있었다. 모두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소신적인 의견을 왕 앞에 이야기하는 당당함과 백성을 위해 여러 신하들과 맞서 싸웠던 광해의 용기가 다르지만 같았던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영화에서 그가 보여준 최명길에 광해의 모습이 비춰졌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영화를 본 주변인들 반응은 어떤가?

너무 좋았다고 한다. 개인적인 만족도로 봤을 때도 최고였다. 그래도 극장에서 오픈할 때까지는 계속 긴장할 것 같다. 다행히 언론 시사 이후 좋은 리뷰 기사들이 나와서 너무 좋았다. 


-자신의 연기를 직접 본 소감은?

이번 만큼 모니터링을 안 한 영화는 처음이었다. 황동혁 감독님이 너무 날카롭고 정확한 분이시다. 감독님이 생각한 오케이 컷과 내가 생각한 오케이 컷이 너무 달라서 조금 의아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주 미세하지만, 감독님의 의견과 판단이 너무나 정확했다. 그래서 이번 영화는 오로지 감독님만 믿고 모니터링을 하지 않았다. (웃음) 다행히 기가 막힌 편집으로 좋은 드라마를 만들어 주셨고, 덕분에 매우 만족스러운 연기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  


-본인이 연기한 최명길은 조선 역사에서 역적으로 평가 받을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이 캐릭터가 끌린 이유가 있었나?

사실 영화 속 모든 캐릭터가 끌렸다. 인물들 모두 서로의 소신을 확고하게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상헌, 최명길 모두 애국자이며 누가 더 좋은 사람인지 정의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어떤 캐릭터가 더 우월하고 좋다고 말할 수 없다. 나에게 김상헌에 대한 제안이 들어왔어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어떤 선배가 나에게 김상헌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웃음) 그분이 소설 '남한산성'의 골수팬이셔서 색깔이 분명한 김상헌 캐릭터가 더 인상적이었다고 강조했다. 영화사에서도 최명길을 선택해줘서 감사하다고 하는 걸 보니, 김상헌을 할 걸 그랬다. (웃음) 


-이 영화를 해야겠다는 계기가 있었다면?

시나리오가 너무 완벽해서였다. 그리고 대사들이 너무 좋았다. 어떤 장르여도 대사만으로도 모든 게 해결되는 영화여서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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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차분하고 담담한 편이다. 어떤 매력이 있다고 보는가?

영화는 아주 차분하고 정적으로 흘러가고 눈밭을 배경으로 하는 추운 영화지만, 그럼에도 매우 뜨겁게 진행된다. 그 정도로 매우 뜨거운 영화라 생각한다. 


-현실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최명길의 의견을 지지하는 편인가?

나는 김성헌과 최명길이 주장하는 방식에 감동이 있는 건 아니라고 본다. 최명길은 왕에게 허리를 숙인 채 엎드리며 이야기하고 있지만, 자신이 할 이야기를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그 지점을 보면서 소신과 사상을 넘어선 진정한 선비이자 용감한 지식인이라 생각했다. 누가 옳고 그런 것이 아닌, 정치적 소신과 목표보다는 인간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자세가 이 영화의 주제라 생각한다. 최명길은 그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주요 인물이다. 


-극 중 시대상이 [광해:왕이 된 남자] 이후의 이야기며, 캐릭터도 광해와 비슷한 면이 많아서 오버랩이 있었을 것 같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연기한 최명길은 역사적으로 광해를 내몰아낸 선봉장이다. (웃음) 그럼에도 백성을 생각하는 지점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 상황에 있어다면 누구 의견에 찬성했을 것인가?

아마 나는 인조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웃음) 내가 만약 인조를 연기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해일이가 고생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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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현장도 영화 속 만큼 매우 추웠나?

촬영 날이 한겨울이었다. 춥긴 했지만, 의외로 입김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날 습도도 중요하다고 했다. 감독님께서 연기는 좋은데 입김이 많이 안나오면, 리얼함을 위해 입김이 나올 때까지 오케이를 안 부르실 때도 있으셨다. (웃음) 영화의 첫 장면인 최명길이 적진 앞에 서 있는 장면은 입김이 나올 때까지 한참 기다리다가 촬영했던 장면이다. (웃음)


-그러고 보니 실내 입김도 만만치 않았던 것 같다.

[남한산성]의 임시 궁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다. 수라상도 초라한 편이다. 그런 것을 강조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입김도 바깥과 똑같이 하기 위해 문을 열어두고 촬영을 했다.


-이번 영화는 말의 전쟁이다. 그동안 작업한 전작에 비해서 대사의 양도 너무 많은 편이며, 사극 톤을 유지해야 해서 신경을 많이 썼을 것 같다. 

맞다. 장면 하나하나가 매우 긴 신이었다. 김상헌과 최명길이 왕 앞에서 의견충돌을 하는 장면은 두 사람의 소신이 부딪치는 중요한 대목이다. 김상헌은 왕에게 바른말을 던지는 편이지만, 최명길은 처음으로 왕에게 자기 의견을 직접 던지는 타입이다. 그 신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를 설명할 수가 있다. 대사들이 정통 사극톤인 만큼 이 부분에 있어서 NG가 나오면 끝도 없겠다 생각되어서 대사에 매우 신경을 썼다. 나뿐만이 아니라 그 신에 참여한 해일, 윤석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장면은 그 어떤 화려한 액션 영화 장면보다도 훨씬 더 강렬하고 뜨거웠다는 점이다. 덕분에 아주 좋은 장면이 나올 수 있었다.  


-그 점에서 보면 최명길은 참 괴로운 주인공이다. 스스로 '역적'이라는 비난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인물이기에 동료 신하들에게 동정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외로운 인물을 연기한 소감은 어땠나?

그게 오히려 재미있었다. (웃음)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똑같은 소신과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 시대에 태어나서 그 말을 하면 역적이 되고, 또 그런말을 하면 영웅이 되는 시대가 있다. 그게 참 묘한 재미였다. 서글프기도 하면서도 어떤 시대에 태어나서 어떤 소신을 갖고 있어야 되는 것인가? 결과적으로 진리는 무엇인가? 라며 고민해 봤다. 현실의 진리가 미래에는 말도 안 되는 것이 될수도 있지 않은가? 그 점이 참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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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상대 배우와의 케미가 아닌 차이를 만들어 내야 하는 특징이 있다. 김윤석과 호흡은 어땠나?

실제 촬영현장에서는 김윤석 선배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김윤석, 송영창 선배 뒤로 수많은 연극 배우분들이 계셨다. 그분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니 너무 재미있었다. 그러다 우리 둘이 대립하는 장면에서는 다들 신중하고 긴장을 많이 한 모습을 보여줬다. 윤석 선배는 정말 연기 패턴이 너무나 달랐다. 내가 지금까지 상대한 배우들과 너무나 다른 느낌이었다. 각 테이크 마다 자신이 강조하는 상황을 만드는데 그 때문에 그 다음 어떤 연기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순발력 있게 윤석 선배를 따라 하게 되었다. 우리둘은 묘하게 달랐지만, 그로 인해 묘한 케미가 완성할 수 있었다. 


-박해일은 어땠나?

해일이가 정말 참 어려운 역할을 했다. '만약에 나에게 이 역할 제의가 왔다면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초반에 찍었을 때는 나는 땅만 보고 연기를 해야만 했다. 카메라가 해일이를 향해 나갈 때는 그때야 해일이가 어떻게 연기하는지를 지켜볼 수 있었다. 해일이는 정말 자기 스타일의 왕을 만들어 냈다. 인조의 우유부단함과 괴로운 모습을 적절하게 잘 보여줬다. 


-송영창 선배 연기가 다른 배우들과 달리 희극적인 면이 담겨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웃었던데…

현자에 있던 우리도 많이 웃었다. (웃음) 웃어서는 안 되는 상황인데 영창 선배는 연기를 할 때 많이들 웃게 만든다. 극장에서도 사람들이 웃을 거라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많이들 웃었다고 한다. 해일 씨가 또 잘 받아쳐 줘서 그런 효과가 생겼던 것 같다. 웃기려는 의도가 없었는데, 이 장면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 


-듣고 보니 배우들의 조합이 좋은 작품이었던 것 같다.

박휘순, 고수 씨와는 촬영장에서 거의 볼 일이 없었다. 그쪽은 거의 밖에서 싸워야만 하니까. 그래서 거의 다른 영화를 따로 찍은 느낌이었다. 아마도 고수가 매우 힘들었을 것 같은데, 전혀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 오래전부터 친한 사이였는데 작품을 같이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평소 불평이 없는 긍정적인 친구라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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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들]을 통해 알게 된 조우진 씨를 또 만나게 되어서 매우 반가웠을 것 같다.

그렇다. (웃음) [내부자들] 찍을 때 처음 본 연기자였다. 그러다 내 손목이 잘리는 문제의 장면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봤을 때 "이 친구 뭐지?"라며, 진짜 물건이 나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가 끝나면 많이들 이 친구 이야기를 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영화 이후에도 조우진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친구가 잘돼서 참 좋다. 이번에 두 번째로 연기를 하는데 역시나 아주 잘하더라. (웃음) 조우진은 정말 좋은 연기자라 생각한다. 


-실제 역사 속에서의 최명길은 병자호란 이후에도 매우 드라마틱한 인생사를 겪게 된다. 청태종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말하고, 여러번 투옥되는 불행을 겪기도 한다. 만약 그의 이야기만 따로 담은 스핀오프 영화가 나온다면 출연할 의사가 있는가?

글쎄, 근데 그 스핀오프 영화가 최명길의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이야기라면 꽤 흥미로울 것 같다. 지금과 같은 톤의 이야기라면 오히려 재미없을 것이다. 김상헌이 나루, 날쇠와 같은 여러 캐릭터들과 관계를 맺는 장면을 통해, 그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했다면, 명길은 고민하고 진지하기만 한 인물로 그려졌다. 최명길의 스핀오프 영화가 그의 그러한 인간적인 모습을 조명하는 이야기를 지향한다면 관심을 가질 것 같다. 


-역사적 사실과 김훈 작가의 원작이란 점에서 부담은 없었나?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과 이야기라는 점에서 부담이 컸을 수도 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연기를 하려했다. 만약 내가 틀린 부분이 있다면 감독님 께서 직접 무전을 치신다. (웃음) 그래서 되도록 내가 그 시대에 돌아가서 그 인물을 보고 싶지만, 시나리오에서 요구한 대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왜곡하지 않으려 신경을 많이 썼다. 시나리오가 참 좋아서 그 부분만 믿고 나갔다.


-수염이 너무 길어서 불편하지 않았나?

사실은 너무 길었다. (웃음) 나중에 강풍기를 돌리는 장면에서 수염이 날라다녀서 결국 감독님이 좀 잘라주셨다. 나보다 더 긴 수염을 붙이신 김윤석, 송영창 선배님이 고생이 많으셨다. 수염 때문에 사극 제안이 오면 거의 읽어보기 전에 한숨을 쉬고 읽게 된다. (웃음) 그럼에도 선택을 하는 것은 정말 마음에 들어서다.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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