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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서 보내준다? 거짓말!" 스타 커플의 아름답지 않은 막장 이별 스토리 1부

17.12.11 17:57


드라마, 광고, 영화에서는 이별을 아름답게 포장하기 위해 "사랑해서 보내는 거다"라고 말하지만, 연애를 해본 이들이라면 이 말이 거짓말 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이별의 순간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다. 하지만 선남선녀가 모인 연예계 특히 미국 할리우드 스타 커플의 이별 사례를 본다면 그 순간이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오늘은 그동안 소개한 스타 커플들의 이별 스토리 중 잘 알려지지 않았던 무수한 비하인드를 남긴 사례에 대해 이야기 해 보도록 하겠다. 


"헉! 레즈비언 커플이었어요?" 앤 헤이시 & 엘렌 드제너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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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NBC의 '엘렌 드제너러스 쇼'의 진행자 엘렌 드제너러스는 90년대 후반 배우 앤 헤이시와의 불같은 사랑으로 미국 전역을 들썩이게 한 구설수의 주인공이었다. 1997년 오스카 시상식 파티에서 두 사람은 만남을 갖게 되었고, 파티가 끝난 후 앤이 엘렌의 집에 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되었다. 

당시 동성 연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좋지 않았던 시기였지만, 두 사람은 그러한 편견을 깨고 당당히 사랑하기 위해 공개 연인을 선언하며 대중들 앞에 공개 키스를 하게 된다. 그런데 하필 선언 장소가 백악관이었고, 보수적 가치관을 지닌 사회 인사들이 많았기에 두 사람의 행위는 그들에게 있어 문화 충격과도 같았다. 결국, 그러한 돌발행동은 두 사람의 암흑기를 불러오게 된다. 

공개 연인 선언 이후, 시트콤 스타로 승승장구하던 엘렌의 출연작들은 줄줄이 광고가 빠져나가게 되면서 폐지되었고, 90년대 중반 이후로 잘 나가던 스타였던 앤 헤이시의 출연작도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다. 1년 만에 둘은 잊혀진 스타가 되었지만, 오히려 그러한 압박이 둘의 사이를 더 돈독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두 연인은 2000년 결별하게 된다. 자세한 사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반 연인들과 같은 성격 차이가 원인인 것으로 보고 있었다. 

문제는 결별 이후 두 연인의 서로 다른 행보였다. 어려움 속에서도 사랑을 지키던 관계였기에 갑작스러운 이별은  두 사람에게 큰 상처와 후유증을 남기게 되었다. 앤 헤이시 보다 한참 연상이었던 엘렌은 한동안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다 2003년 '엘렌 드제너러스 쇼'를 런칭하며 다시금 엔터테이너로 발전하게 되었고, 새로운 동성 연인을 만나 2008년 결혼하게 되었다. 

앤 헤이시는 엘렌과의 결별 다음 날, 사막 한가운데서 속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등 정신 이상 증세를 보여 모두를 놀라게 했다. 나중에 이 증상에 대한 원인으로 다중인격 장애와 같은 정신병과 마약, 알코올 중독 등이 차례대로 언급되면서, 앤 헤이시는 더 이상 재기불능의 배우가 되어 버린듯했다. 1년 후, 레즈비언 컴백 선언 이후 갑자기 한 남성과 결혼을 발표하게 되면서 레즈비언 생활이 끝났음을 선언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에도 이혼과 재혼을 반복하는 등 혼란스러운 사생활을 반복해야 만 했다. 
 
 
'지리멸렬'한 양육권 소송전! 킴 베이싱어 & 알렉 볼드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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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80년대 최고의 섹시 스타 킴 베이싱어는 수많은 남자 스타들의 대시를 받아왔지만, 잠깐의 만남만 허락했을 뿐, 지속적인 만남을 가진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던 1990년 [결혼하는 남자]로 만나게 된 5살의 연하남 알렉 볼드윈의 갑작스러운 기습 키스를 받게 되고,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영화 촬영 후 연인이 되었고,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두 부부는 차기작인 [겟어웨이]에도 함께 출연할 정도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잉꼬 커플로 이름을 알렸으나, 그 명성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뒤늦게 발견한 성격차이로 인해 두 사람은 2001년 이혼을 발표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이혼 이야기였으나, 이후 발생한 두 사람의 소송전이 두 사람의 이별을 '막장'으로 만들었다. 

이별 과정부터 시끌벅적해 타블로이드 신문의 메인을 장식하던 두 사람은 이혼 후 슬하에 태어난 딸 아일랜드 볼드윈의 양육권을 놓고 심하게 대립했다. 결국 양육권은 엄마인 킴 베이싱어에게 돌아갔고, 알렉 볼드윈은 정해진 기간에만 딸에게 접근해야 만 했다. 하지만 킴 베이싱어가 볼드윈이 딸을 만나려 할 때마다 전화로 허락을 받아야 하는 복잡한 절차를 고집했고, 이것이 볼드윈의 심기를 건드렸다. 
 
너무 화가 나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던 볼드윈은 2003년, 2004년, 2005년 세 번이 넘도록 양육권 소송을 걸었고, 그때마다 킴 베이싱어는 편법을 활용한 방식으로 볼드윈과 딸의 만남을 쉽게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 (그녀 입장에서는 볼드윈의 신경질적인 성격을 문제삼아 딸을 보호하려 했었다.) 법원은 세 번 모두 킴 베이싱어의 양육권을 인정했지만, 두 사람의 지나친 양육권 소송전을 문제삼으며 "딸을 위해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생각해 보기 바란다"라는 충고어린 조언을 하며 두 사람의 진심 어린 반성을 촉구했다. 

 
"아내를 폭행했지만…사랑해서 그런거다?" 마릴린 먼로 & 조 디마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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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당대 최고의 섹스심벌 마릴린 먼로는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타자 조 디마지오와 결혼하게 된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두 번째 남편인 셈. 조 디마지오는 1941년 ‘56경기 연속안타’로 미국 메이저리그 120년 역사의 ‘3대 기록’ 중 하나를 내며, 뉴욕 양키스에 10차례나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긴 선수였다. 게다가 2차 세계 대전에는 직접 참전한 전력이 있어, 미국인에게는 만인의 영웅이자 당대 최고의 스타였다. 영화계와 스포츠계의 당대 최고 스타들의 결혼이란 점에서 둘의 결혼은 큰 화제가 되었다. 당시 디마지오는 39세였으며, 마릴린 먼로는 이보다 12살 어린 27세였다. 은퇴한 야구선수 남편과 한참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배우 아내였기에 둘의 상황이 온전할 리 없었다. 수많은 남성 팬들의 환호와 남자 배우들과의 스킨쉽에 조 디마지오는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고, 그럴 때 마다 사사건건 그녀의 일상에 개입했다. 자유분방한 먼로와 달리 조 디마지오는 가족관의 관계를 엄숙하게 따지는 보수적인 이탈리아계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은 자주 충돌했고, 불화설 또한 심심치 않게 제기되었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에 종지부를 찢는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1954년 9월 10일 새벽 2시 뉴욕, 마릴린 먼로는 [7년 만의 외출]이라는 영화 촬영에 참여했고, 그 유명한 지하철 통풍구에서의 노출신을 선보이게 된다. 새벽 시간대에 불구하고 섹시한 마릴린 먼로의 노출연기 소식에 4,000여 명이 넘는 인파가 촬영장으로 몰려들었고, 마릴린 먼로는 대중들 앞에서 15번이 넘는 노출을 선보였다. 대중들의 열광하는 소리는 호텔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조 디마지오를 분노케 했고, 결국 촬영이 끝나고 돌아온 마릴린 먼로에게 폭력을 가하게 된다. 두 사람의 난투극에 호텔은 큰 난리를 겪게 되었고, 먼로는 얼굴의 멍든 자국을 숨기기 위해 짙은 화장을 해야만 했다. 결국 결혼한 지 287일 만에 두 사람은 이혼을 하게 된다.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결혼 생활이었지만, 조 디마지오는 헤어진 가운데도 "나는 여전히 마릴린을 사랑한다."라며 그녀를 향한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1962년 마릴린 먼로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되자 조 디마지오는 마지막까지 함께하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마릴린 먼로 사후 매주 세 번씩 먼로의 무덤에 꽃을 바치며 그녀를 그리워 했다. 사후 유언에는 "이제 먼로를 만날 수 있겠군" 이란 말을 남겼다고 한다. 결혼 생활 당시 먼로를 폭행해 왔던 그의 전과를 생각해 본다면 조금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법한 상황이다. 

조 디마지오는 먼로의 죽음을 가장 슬퍼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특히 케네디 일가가 그녀를 죽였다는 의혹을 마지막까지 믿어왔으며, 평생 그들을 증오했다고 한다. 오히려 그는 마리린 먼로를 마지막까지 지켜주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마릴린 먼로 사후 매주 세 번씩 먼로의 무덤에 꽃을 바치며 그녀를 그리워 했고, 사후 유언에는 "이제 먼로를 만날 수 있겠군" 이란 말을 남겼다. 결혼 생활 당시 먼로를 폭행해 왔던 그의 전과를 생각해 본다면 조금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법한 상황이다. 


애초부터 너무 맡지 않았던 두 사람, 마돈나 & 가이 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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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감독과 최고 팝스타의 결혼으로 주목을 받았던 마돈나와 가이 리치 커플.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마돈나가 신비주의 종교에 빠지고, 함께 작업한 영화가 망하게 되면서 위기를 맞게 되었다. 2008년 자연스럽게 이혼하게 된 이후 두 사람의 이혼 사유와 관련한 여러 개의 이야기가 전해지게 되었다. 

우선 두 사람은 애당초 '처음부터 왜 결혼했을까?'라고 생각될 정도로 가치관 자체가 달랐다. 마돈나가 자신이 속한 상류사회에 가이 리치를 편입시키려 했던것과 달리 가이 리치는 소박한 결혼, 가족 생활을 희망했다. 레드카펫과 수많은 매체들 앞에 서는 모습을 마돈나가 즐겼다면, 가이 리치는 큰 부담을 느꼈다. 종교관에서의 차이도 가장 컸다. 

마돈나는 애초부터 가이 리치가 카발라의 신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라도 가이 리치를 종교 집회장에 불러내려 했다. 한 가지 종교에 심취하기보다는 다양한 종교와 철학을 배우고 싶었던 그의 입장에서는 카발라에 대한 강요는 억압과도 같았다. 

가장 정점을 찍은 사건은 뉴욕 양키즈의 야구선수 알렉스 로드리게스와의 불륜설이었다. 마돈나와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평소부터 친분이 있던 사이였지만, 결혼후에도 자주 만남을 가져왔던 탓에 가이 리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이 문제를 놓고 시종일관 다퉜지만, 마돈나는 그때마다 새로운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며 다른쪽으로 화제를 돌리려 해 가이 리치를 힘들게 만들었다. 

두 사람의 이별 스토리는 무수한 이야기를 남겼지만, 이혼 후 각자의 짝을 찾게되면서 잠잠해지는가 싶었다. 가이 리치는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마돈나와의 이혼에 괴로웠다고 말하면서 "마돈나는 엄마로서 최고였다. 좋은 쪽으로 기억하고 싶다." 라고 이야기하며, 결혼 생활의 비하인드가 이슈화 되려는 것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2012년 마돈나는 새롭게 발표한 앨범의 수록곡 ‘I Don't Give A’에서 “나는 좋은 여자가 되려고 노력했고 좋은 아내가 되려고 노력했다. 내 사진을 억제하려고 했지만 결국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라는 가사를 공개하게 된다. 가사만 봐도 영락없이 가이 리치를 디스하는 듯한 내용이었고, 전 남편에 대한 마돈나의 심경이 담긴 이야기여서, 무수한 논란을 불러오게 되었다. 

2부에서 계속...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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