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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비하인드] 연기의 신(神) 다니엘 데이 루이스, 그가 인간계서 저지른 유일한 실수는…

18.03.08 20:38


제90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된 이후로 연기 은퇴를 선언한 다니엘 데이 루이스. (개인적으로 은퇴를 다시 번복하기를 바라며...) 영화 역사상 최고의 메소드 연기를 선보이며 영화팬들로 하여금 경이를 불러오게 만들었던 그 아니 연기의 신(神) 이셨던 그의 발자취와 비하인드를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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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다니엘 마이클 블레이크 데이 루이스 (Daniel Michael Blake Day-Lewis)
생년월일:1957년 4월 29일
신장:188cm
출생지: 잉글랜드 런던 켄싱턴


1. 예술인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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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아버지는 영국의 유명 시인이자 소설가인 세실 데이 루이스로 왕에 의해 공식적으로 임명된 '계관시인' 이었다. 니콜라스 블레이크 라는 필명으로 추리소설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대표작으로는 '야수는 죽어야 한다'가 있다. 어머니 질 밸컨은 유대인 출신의 배우였으며, 외조부인 마이클 밸컨은 영화사 일링(Ealing) 스튜디오의 대표였다. 다니엘과 함께 영화인으로 활동중인 누나인 태머신 데이 루이스는 유명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이다. 그의 천부적인 연기적 재능이 어디서 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2. 거칠게 살았던 유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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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이 두 살이 되던 시기에 가족들은 런던 동남쪽에 위치한 그리니치 크룸즈힐로 이사를 가게 된다. 지역적인 특성상 거친 성향의 사람들이 살던곳으로 어린 다니엘은 마을 아이들로 부터 폭행과 따돌림을 경험해야 했다. 어머니가 유대인 이었던 탓에 유대인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이유에서였다. 나중에는 이러한 생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좀도둑질과 같은 사소한 범죄까지 저질러야 했을 정도로 심한 방황기를 보내야만 했다. 


3. 아역 배우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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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에 1971년 영화 <사랑의 긴 여로>를 통해 첫 스크린 데뷔를 치르게 된다. 그의 역할은 교회에 주차된 ql싼 차를 파손시키는 소년 역할이었다.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을 정도로 분량이 적은 단역에 불과했지만, 그 자신에게는 매우 흡족한 경험이었고 그때부터 배우로서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 


4. 단역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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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의 길을 선택한 그는 청년기에 브리스톨 올드 빅과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의 연극 무대에서 주연급의 연기를 펼치며 연기적 입지를 탄탄하게 쌓게 된다. 1982년 영화 <간디>를 통해 첫 성인 연기 데뷔를 치르게 되는데, 연극계에서는 스타였던 그였지만 영화, TV 드라마 첫 출연부터 단역 생활을 지속해야 했다. 단역 생활은 2년간 지속되었으며, 1982년 영화 <바운티호의 반란>에서 조연으로 출연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름난 연기자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5. <나의 왼발>부터 시작된 메소드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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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뇌성마비 환자 크리스티 브라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나의 왼발>에 출연해 모두를 놀라게 한 사실적인 뇌성마비 환자 연기를 선보여 제6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첫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캐릭터에 완전히 이입하는 메소드 연기를 지향하게 되고, 이 역할을 위해 수 개월 동안 휠체어 생활을 해왔고, 직접 발을 사용해 식사와 바느질, 글씨를 쓰는 등 완벽한 캐릭터 연기를 위해 광기에 가까운 노력을 펼치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이후 그만의 연기 습득 방식이 된다. 


6. <햄릿> 연극을 거부한 사연이... 유령을 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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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만의 연기 습득 방식은 그 자신의 건강에도 큰 위험을 남기기에 이른다. 영화를 통해 스타가 된 이후 <햄릿>을 통해 다시 연극 무대를 밝게 되는데, 연기 도중 무대에서 탈진해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가 탈진한 대목은 햄릿이 아버지의 유령을 만나게 된 장면으로 너무 연기에 몰입한 탓에 그만 그 자신이 실제 아버지의 유령을 만났다고 한다. (본인 주장) 그때의 후유증으로 인해 다니엘은 다시는 연극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7. 잠시 반 은퇴를 하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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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은퇴 발표를 여러 번 하다가 번복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1997년 <더 복서>에 출연한 이후 무려 5년 동안 연기 공백 시기를 갖게 되었다. 연기를 쉬는 동안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제화 일에 열중하며 제화공 견습에만 집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외에 다른 활동에 대한 질문이 나왔을 때는 상세한 답변을 거부하며 "그 누구로부터 방해없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라며 짧게 언급했다. 


8.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까지 '빡'치게 한 그의 연기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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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2년 작품 <갱스 오브 뉴욕>을 통해 복귀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도 악명 높은 그의 연기 열정이 유명한 일화가 된다. 극중 악명높은 갱단의 리더 도살자 빌(Bill the Butcher)을 완벽하게 연기하기 위해 언어 습관을 뉴욕 악센트로 바꾼것은 물론이며, 광기에 찬 캐릭터의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오랫동안 에미넴의 음악을 들었고, 실제 푸줏간의 도살 견습을 받기까지 했다. 문제는 그 다음 촬영현장에서 벌어졌다. 촬영 기간 동안 쉴 때마다 소품인 푸줏간 칼을 시종일관 갈며, 도살자 빌 분장을 한채로 상대역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시종일관 노려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마저 정신적 스트레스가 엄청났다고 고백했다. 여기에 19세기 의상인 얇은 코트를 촬영장 밖에서도 입고 다닌 바람에 폐렴에 걸리기까지 했으나, 그런 상황에서도 항생제를 투여받으면서까지 연기를 하는 열정을 보여줬다. 


9. 연기를 위해 아내와 떨어져 살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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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스 오브 뉴욕> 이후 영화감독이자 그의 아내인 레베카 밀러가 연출을 맡은 2005년 영화 <발라드 오브 잭 앤 로즈>의 주연으로 캐스팅된다.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며 죽어가는 남자가 갖고 있는 고독을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다니엘은 몇 개월 동안이나 아내와 강제 별거를 하기에 이른다. 


10. 두 번째 아카데미 수상작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섬뜩한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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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미국 서부 석유 개발자였던 다니엘 플레인뷰의 이야기를 담은 <데어 윌 비 블러드>를 통해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 배역 또한 <갱스 오브 뉴욕>의 배역만큼 광기에 쌓인 캐릭터로 성공을 위해서라면 폭력과 잔인한 방식도 불사하는 악마 같은 남자였다. 이 영화에서 그는 극중 상대역인 일라이 선데이 목사를 시종일관 폭행하고 저주하는데, 원래 이 역할을 맡은 이는 켈 오닐 이라는 배우였다. 하지만 완벽하게 광기 어린 모습을 지닌 남자로 변신한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에 질려버린 그는 곧바로 하차하게 된다. 그 배역을 이어받은 이가 바로 폴 다노. 폴 다노는 이 영화에서 대선배의 온갖 폭력과 저주스러운 언변을 다 받아내고, 그에 뒤지지 않은 연기력으로 맞서게 된다. 덕분에 폴 다노는 이 작품을 통해 최고의 연기파 신예로 등극하게 된다. 


11. 세 번째 수상작 <링컨>에 출연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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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링컨> 출연이 결정된 이후, 다니엘은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1년 동안의 준비 기간을 달라고 요구하며 100권이 넘는 링컨과 관련한 책과 연구 서적을 탐독한다. 그리고 당시 링컨의 모습을 닮기 위해 수염 길이와 체중까지 연구하며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오랫동안 함께 작업했다. 2011년 촬영 날 완벽한 링컨의 모습을 재연한 그는 2013년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세 번째로 주연상을 받게 된다. 세 번의 수상기록은 아카데미 역사에 길이 남을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12. 그 외 악명높은 메소드 연습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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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모하칸> 출연 당시에는 극 중 주인공에 몰입하기 위해 야생동물 사냥 방법을 배웠고, 음식도 직접 사냥해서 잡은 동물을 요리하며 먹었다. 여기에 시종일관 극중에서 사용된 장총을 촬영장 밖 일상생활에서도 들고 다녔다고 한다. 친구 가족이 모인 크리스마스 파티에서도 말이다. 그 외에도 <크루서블>의 배역을 위해 오랫동안 목욕을 하지 않았으며, <순수의 시대>를 위해 두 달동안 탑 햇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집은 채로 뉴욕 시내를 돌아다녔다. 


13. 그가 인정한 후배 히스 레저와 라이언 고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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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 윌 비 블러드>로 SAG (Screen Actors Guild Awards) 시상식의 남우주연상을 받은 후, 수상소감으로 2008년 사망한 히스 레저를 직접 언급했다. <브로큰백 마운틴>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가 너무나 완벽했다고 극찬하며, 히스 레저에게 자신의 수상을 헌사해 모두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그 외에도 그가 직접 언급하며 칭찬한 후배로 라이언 고슬링이 있으며, 2012년 작품 <하프 넬슨>을 보고 "그의 연기가 존경스럽다"라고 언급했다. 


14. 거절한 배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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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의 주인공 앤드류 벡켓역을 제안을 받고 관심을 표했으나, 하필 그때가 <아버지의 이름으로>를 찍었던 시기였다. 결국 그 역할을 거절해야 했고, 이를 이어받은 이가 톰 행크스였다. 행크스는 이 영화를 통해 다음 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게 된다. 이후 피터 잭슨으로 부터 <반지의 제왕>의 아라곤 역을 제안 받았으나, 거절했고 그 역할을 비고 모텐슨이 이어받게 되었다. 직접 거절한 역할은 아니지만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기획 당시 멜 깁슨이 최초 예수 역으로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고려했으나 너무 유럽인 스럽다는 의견이 빗발쳐 결국 후보군에서 제외되었다고 한다. 


15. 연기의 신이 탈락한 배역? 다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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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에 지원했다가 탈락한 일화가 전해졌다. 그를 탈락시킨 작품은 다름 아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1994년 영화 <펄프 픽션>으로 극 중 주인공인 빈센트 베가역을 맡기위해 오디션에 참여하게 되었다. 좋은 연기를 보여줬음에도 타란티노는 더 불량한 모습을 보여줄 배우를 원했고, 다니엘을 제치고 이 배역을 차지한 이는 존 트라볼타 였다. 


16. 장인 어른은 그 유명한 극작가 아서 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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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내 리베카 밀러의 아버지는 <세일즈맨의 죽음>을 집필한 유명한 극장가 아서 밀러로 다니엘에게 있어서는 유명한 장인 어른이었던 셈이다. 심지어 그가 출연한 영화 <크루서블>의 각본도 아서 밀러가 집필을 맡은 작품이었던 셈이다. 현재 다니엘은 리베카 밀러 사이에 두 명의 아들을 두고 있다. 


17. 흑역사 여자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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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편이지만, 여러 매체를 통해 언급된 유일한 오점으로 남겨질 법한 일화가 있다. 프랑스의 유명 배우 이자벨 아자니와 6년 정도 사귀었는데, 사실혼에 가까울 정도로 동거생활을 하다가 이자벨의 다니엘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오랫동안 사귀어온 만큼 결혼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팩스를 통해 이자벨 에게 이별을 통보하게 된다. 쿨함을 떠나 실례가 되는 이별 통보 방식이었는데, 당시 다니엘은 할리우드에서 잘나가고 있는 신예 스타 줄리아 로버츠와 눈이 맞아 비밀스러운 연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줄리아 로버츠 와의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 이자벨과의 관계를 정리해야만 했다. 관계가 끝난뒤 이자벨은 그들 사이의 자식인 게이브리얼 케인 데이 루이스를 낳게 된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줄리아 로버츠의 관계는 1년이 지난 후 끝나게 된다. 


18. 은퇴를 한 진짜 이유는 <팬텀 스레드>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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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촬영한 <팬텀 스레드>를 끝으로 사실상 진짜 은퇴라 선언한다. 그의 은퇴와 관련해 많은 추측이 오가다가 2017년 W 매거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팬텀 스레드>에서의 작업이 은퇴의 이유였다고 고백한다. 극 중 그는 1950년대 런던에서 왕족과 상류층을 위해 화려한 옷을 만드는 의상디자이너를 연기했는데, 그 역할이 연기를 위해 집념을 발휘하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해 보였다. 

그는 인터뷰에서 "내가 은퇴 선언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감독인 폴 토마스 앤더슨과 나는 영화를 만들기 전에 많이 웃었지만, 나중에는 슬픔에 사로잡혀 웃음을 거두게 되었다."라고 말하며 "연기를 사랑하고, 심지어 내가 거부할 수 없는 일로 느끼고 있지만, 최근엔 그렇지 않다."라며 연기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전했다. 아마도 완벽한 연기를 위해 장인 정신을 발휘했던 그가 극 중 드레스를 만드는 장인이 되면서 수많은 고민을 했던것으로 보인다. 

자료 참조: IMDB 트라비아, 위키피디아, ppcorn.com, 허핑턴 포스트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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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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