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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비하인드] 성매매만 안했어도 완벽했을 남자...영원한 로맨틱 가이 휴 그랜트

18.03.15 12:55


전 세계 모든 여성의 마음을 뒤흔든 신사적인 로맨틱 가이 였지만, 단 한 번의 큰 실수로 경력의 큰 오점을 남긴 휴 그랜트의 흥미로운 비하인드를 아래와 같이 모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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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휴 존 멍고 그랜트 (Hugh John Mungo Grant)
생년월일: 1960년 9월 9일
신장: 180cm
출생지: 잉글랜드 런던 해머스미스


1, 명문가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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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그랜트의 집안은 영국의 상류층 집안으로 친가는 군인, 외가는 영국 총리를 배출한 정치 명문가였다. 그랜트는 유년 시절부터 왕자들이 다니던 명문 초등학교를 다녔으며, 청소년기에는 명문 데이스쿨인 라티머 어퍼 스쿨로 진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다. 


2. 옥스퍼드를 나온 엄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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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공부와 스포츠에 두각을 드러내며 각종 대회의 학교 대표로 출전했던 그는 라티머 어퍼 스쿨을 졸업해 곧바로 옥스퍼드 대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옥스퍼드에서도 눈에 띄던 존재였던 그는 '옥스퍼드 드라마틱 소사이어티'에서 연기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유수의 명문 대학원들의 제의를 뿌리치고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3.배우가 되기 전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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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가를 나왔지만 휴 그랜트는 집안의 명성에 기대지 않은채 오로지 홀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려고 했다. 배우로 성공하기까지 의외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식 배우가 되기 전에는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는데, 글 솜씨가 워낙 좋아서 책 리뷰와 라디오 상품 광고의 대본과 TV 코미디 쇼의 대본을 쓰기도 했다. 그 밖에도 좋아하는 축구 구단인 풀햄 FC의 구장 관리 조수로 일했으며, 친구들이 만든 극단의 일원으로 들어가 다양한 창작 작품을 선보였다. <노포크의 기수들> 이라는 작품은 에든버러 페스티벌에도 초청되어 큰 인기를 얻었으며, BBC 2 방송의 전파를 타기까지 했다. 


4. 로맨틱 가이가 되기 전에는 독립영화계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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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가이로 알려지기 전인 신인시절의 휴 그랜트는 지금은 다소 의외로 느껴질 법한 독립영화계의 스타였다. 지금은 상업적인 로맨스 영화에만 출연하는 이미지지만, 신인시절에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제임스 아이보리 같은 거장들의 영화에 출연해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인 신성이었다. 1987년 출연한 영화 <모리스>는  E.M. 포스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20세기 케임브리지를 배경으로 당시 금기시되었던 동성애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영화에서 휴 그랜트는 동성간 사랑에 빠지다가 주변의 압력으로 사랑을 포기하는 클라이브를 강렬하게 연기해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이라는 영예를 않게 된다. 이때의 유명세로 만나게 된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1992년 <비터 문> 이라는 영화를 함께 찍게 되는데, 이 작품에서 잔인한 에로티시즘에 매료되는 파격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다. 지금의 영화팬들에게도 컬트작으로 추대되고 있는 작품이기에 휴 그랜트의 등장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수도 있다. 


5. 로맨틱 가이로 만들어준 인생작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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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비주류 영화판에서만 활동하던 그에게 1993년 상업 영화계가 손짓을 하게 되는데, 바로 그를 로맨틱가이로 만들어준 인생작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2세 였다. 이 작품에서 그는 앤디 맥도웰과 환상의 호흡을 선보이며 전 세계적으로 2억 4,400만 달러를 벌어들이게 되는데, 당시 영국 영화로서는 경이적인 수치에 가까운 대기록이었다. 이때의 성공으로 휴 그랜트는 로맨틱 영화의 황제다운 행보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6 엄청난 순자산 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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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당시 출연료가 4만 달러에 불과했던 그였지만, 영화의 성공 이후 <노팅 힐><브리짓 존슨의 일기> 같은 히트작을 연이어 내놓게 되면서 1,000만 달러 이상의 출연료를 받는 스타로 대접받게 되었다. 다작을 한 만큼 누적된 출연료 액수만 놓고 봤을때 어마어마한 금액인데, 상류층 집안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까지 더하면 순자산은 엄청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집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런던에만 17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을 정도다. 그의 재산과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로 2001년 술김에 앤디 워홀이 그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그림을 400만 달러에 구입해, 2007년 2,350만 달러에 팔았다고 한다. 엄청난 돈 낭비와 함께 이를 메꿔주는 사업적인 수완도 갖춘 부자 남성이다. 


7. 완벽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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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 넘치고 신사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지만, 보기와는 다르게 촬영장에서는 완벽주의자에 가까울 정도로 연기 연습과 준비에 엄청난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학창시절부터 꼼꼼한 성격을 유지하며 우수한 성적을 받아냈던 이력 탓인지 연기에 있어서도 완벽을 추구하려고 한다. 신인시절 작업한 <모리스> 때만 해도 대본 1장당 분석만 4장이었다고 하니, 그의 꼼꼼함이 어느정도 수준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와 함께 작업한 동료들의 증언을 들어보자.

"그는 현장에서 비참하고 우울했다. 그건 그가 모든 일에 있어 완벽주의자이고, 절대 만족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산드라 블록-

"그는 신경질적이고 까다로운 사람인 척 하는 것을 즐긴다. 그러나 실제로는 무척 재미있고 신사적인 사람이다" -사라 제시카 파커-

"평소에는 재밌고 야한 농담도 잘하는데, 일할 때만 되면 진지하게 돌변한다"" -리차드 커티스 감독-

그 때문에 완성된 장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재촬영을 요구해 감독, 스태프와 여러번의 갈등을 불러오기도했다. 


8. 자기 자학이 강한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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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출연과 인터뷰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비판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연기자인 본인에 대한 평가에 "내가 생각해도 나는 너무 끔찍한 배우다."라고 말하며 역대 출연작에서 선보인 연기와 흥행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비판했다. 이안 감독과 함께 <센스 앤 센서빌리티>를 촬영할 당시 "연기를 못하는 배우처럼 해보라"라는 감독의 요구에 "아, 그건 이미 많이 보신 것 같은데요"라고 답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 밖에도 자신이 선택한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직업 이상으로 여기거나 연기하는 일을 사랑해 마지않는 것은 아니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했다. 한 번은 어떤 기자가 "언제 연기의 열병에 감염되셨나요?"라는 질문에는 "그런 병은 앓은 적이 없는 것 같은데"라고 답했다. 


9. 그의 영원한 적 파파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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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라치를 향해 브이를 외치는 스타가 있는 반면, 거침없이 욕을 하거나 주먹질을 하는등 거칠게 반응하는 스타들도 있다. 휴 그랜트가 바로 후자의 대표주자. 파파라치로 인해 개인 사생활이 침해된 적이 많았기에, 파파라치와 마주치면 곧바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모습을 자주 보여줫다. 특히 자신을 향해 근접한 파파라치를 향해 발길질을 가한 모습은 아직까지도 유명하다. 

▲파파라치를 발로 걷어차 버리는 휴 그랜트 영상


10. 화려한 입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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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쇼 진행자이자 코미디언인 제이 레노는 휴 그랜트의 입담을 다음과 같이 칭찬했다. "내 쇼를 진행할 수 있는 사람을 전 세계에 18명 정도밖에 없는데, 휴 그랜트가 그중 하나다" 그 정도로 휴 그랜트는 영국식 블랙유머, 위트, 자기비하적인 농담과 이를 활용하는 순간적인 재치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화려한 입담을 자랑한다. 2004년 '오프라 윈프리 쇼' 출연 당시에 <노팅 힐>에 함께 출연한 줄리아 로버츠에 대해 "문자 그대로, 정말로 그녀는 아주 입이 크다. 그녀와 키스 신을 찍었을 때 희미한 메아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라고 표현해 스튜디오에 있던 모두를 크게 웃겼다. 


11. 비공식 런던시장으로 불린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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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쇼 외에도 공식 자리에서 지적인 모습과 소신 있는 발언을 선보여 '비공식 런던시장'이라는 별명을 부여받게 되었다. 미국 부시 대통령이 재임했을 당시에는 자신만의 직설 화법과 논리로 부시를 거침없이 공격했는데, 이러한 모습이 <러브 액츄얼리>에서의 이상적인 영국 수상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휴 그랜트의 이런 모습을 본 前 영국 수상 토니 블레어는 "사람들이 내가 휴 그랜트처럼 하길 바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좋은 영화와 실제 삶은 다르다"라고 말하며 자신과 그랜트를 비교해주지 말 것을 요구했다. 


12. 영원한 성공 콤비, 워킹 타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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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대표작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노팅 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어바웃 어 보이> <러브 액츄얼리>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

이들의 공통점은 제작사가 워킹 타이틀 이라는것. 워킹 타이틀의 흥행 역사에는 언제나 휴 그랜트가 있었고, 휴 그랜트 또한 워킹 타이틀의 작품 덕분에 지금의 대스타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한 공생관계가 과연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13. <해리포터><닥터 후> 시리즈에 출연할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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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나마 로맨틱 가이 이미지를 벗어나 유명 작품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선보일 뻔했다.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자기 허세가 강한  질데로이 록허트교수 역을 제안받은 적이 있었지만, 스케줄로 인해 포기해야만 했었다. 결국 그 역할은 감독이자 배우인 케네스 브래너가 맡게 되었다. 그리고 영국의 국민 SF 드라마 <닥터 후>의 9대 닥터 역을 제안받게 되었지만, 인기가 없을 것이라 판단해 거절했고, 그 배역을 크리스토퍼 에클스턴이 맡게 되었다. 


14. 복잡하면서도 난잡해 보이는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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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 스타들의 전례답게 여자관계와 사생활이 매우 복잡하다. 

신인시절이었던 1987년부터 2000년도까지, 총 13년간 사귀었던 배우 출신의 엘리자베스 헐리와 교제했지만, 결혼을 앞둔 상황에서 바보 같은 실수를 한 바람에 결국 이별을 하게 되었다. (이 부분은 바로 다음 내용에 상세 설명) 지금은 친한 친구 사이가 되어  헐리의 아들의 대부가 되어 주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엘리자베스와 결별한 이후에는 상류층 여성인 제미마 칸과 사귀다가 2007년 헤어졌으며,(결별 사유가 휴 그랜트의 못 말리는 바람기 때문) 곧바로 중국 출신의 배우인 팅란 홍과 교제하다가 2011년 딸 타비사를, 2012년에는 아들 펠릭스를 얻었다. 그러던 중 2015년 그의 새로운 아이가 탄생하게 되는데 다름아닌 팅란 홍이 아닌 다른 여성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었다. 주인공은 스웨덴 TV 프로듀서 안나 에버스틴. 팅란 홍 몰래 교제한 다른 여성으로 팅란 홍 사이에서 펠릭스가 태어나기 3개월 전에 안나 에버스틴 사이에서도 아들 존을 낳게 되었던 것이다. 당연히 팅란 홍과의 관계는 정리되었지만, 휴 그랜트는 아이들의 탄생과 성장에 행복감을 느낀다며 너스래를 떨었다. 2018년 초에는 안나 에버스틴과의 사이에서 셋째 임신 소식이 전해지게 되어서, 현재까지 다섯째 아이를 두게 되었다. 


15. 영원한 오점으로 남겨질 매춘 스캔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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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여자친구 엘리자베스 헐리와 함께

휴 그랜트는 세계적인 미인이자 모델인 엘리자베스 헐리와 연인관계를 유지하며 세기의 커플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영화와 사랑 모두 잘 나가던 그는 결국 한눈을 팔게 된다. 엘리자베스 헐리와는 1987년부터 교제를 지속하다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휴 그랜트의 인생에 오점이 된 사건이 발생한다.

때는 1995년 영국에서는 잘 나가는 스타였지만, 미국에서는 생소한 스타였던 휴 그랜트는 줄리안 무어와 함께 호흡을 맞춘 [나인 먼쓰]라는 로맨틱 코미디에 출연해 미국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하게 된다. 첫 헐리웃 영화인 만큼 수많은 인터뷰와 방송 출연을 강행한 휴 그랜트는 긴장감을 풀기 위해 영화사에서 렌트한 BMW에 몸을 싣고 L.A 선셋 대로의 홍등가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휴 그랜트는 디바인 브라운이라는 예명을 사용한 매춘부를 태우게 되고, 한적한 주차장에서 관계를 맺다 순찰 중이던 경찰에게 들켜 공공장소 음란행위죄로 체포된다. 벌금과 2년의 약식 보호 관찰, 에이즈 교육 프로그램만 참여하는 가벼운 처벌만 받으면 끝나는 일이었지만, 영국의 대스타가 미국땅에서 저지른 행위였기에 아침 뉴스의 '톱'을 장식하게 되고, 이 사실은 바다 건너 런던에 있었던 연인 엘리자베스 헐리에게 까지 전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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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체포된 휴 그랜트,왼쪽이 디바인 브라운

개인적인 이미지 실추를 비롯해 영화 흥행에까지 악영향을 줄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은 휴 그랜트의 존재를 미국인과 전 세계에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휴 그랜트는 이러한 난처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 날 출연 예정인 제이 레노의 [투나잇 쇼]에 출연해 한껏 여유를 부리다 엘리자베스 헐리에게 사과까지 하는 장면을 보여주기에 이른다. 남자친구의 외도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 헐리는 휴 그랜트와 다정한 모습을 보이며 [나인 먼쓰]의 런던 프리미어 행사에 참석했으며 [나인 먼쓰]는 흥행에 성공한다. 하지만 이 사건의 여파로 휴 그랜트와 엘리자베스 헐리 사이에는 종종 여러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고, 2000년 결별하게 된다. 

한편 휴 그랜트와 선셋 대로에서 관계를 맺은 디바인 브라운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인생 역전'을 하게 된다. 전기 요금도 못 낼 정도로 가난한데다가 몸을 팔아 남편과 두 딸을 부양하던 그녀는 성인 잡지 '펜트하우스'의 화보 촬영은 물론이며 방송 인터뷰와 토크쇼에 출연하며 한순간에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로 인해 그녀는 비버리힐스의 집을 얻게 되고, 두 딸을 사립학교에 보내게 되었으며, 조그만한 레코드 회사의 소유주로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휴 그랜트 덕분에 행운을 얻은것이 아닌 "나 때문에 휴 그랜트가 지금의 월드스타가 될 수 있었다."라며 자신있게 말했다. 


16. 그의 파격적인 결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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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국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 <더 하워드 스턴 쇼>에 출연해 자신의 결혼관에 대해 말하는 자리에서 "나는 인간이 40년 동안 일부일처제로 지내면서 서로에게 충실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성경에서나 나오는 얘기" 라고 말하며 "결혼에 헌신적인 프랑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감탄한다. 이들은 결혼에 진중한 태도를 보이지만 아마 오후 5시쯤에는 다른 손님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불륜을 하면서도) 자랑하지 않고 아무런 말도 없겠지만 이는 두 사람의 관계를 유지시키는 행위다." 라고 말해 기존의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결혼관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며, 일부다처제 혹은 일처다부제를 지지하는 발언을 해 논란을 불러왔다. 

자료참조: .fame10.com, IMDB 트라비아, 위키피디아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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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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