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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 리뷰: 이창동 감독의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

18.05.1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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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 2018]
감독:이창동
출연:유아인, 스티븐 연, 전종서, 김수경

줄거리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는 배달을 갔다가 어릴 적 같은 동네에서 살았던 해미(전종서)를 만나고, 그녀에게서 아프리카 여행을 간 동안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를 돌봐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여행에서 돌아온 해미는 아프리카에서 만난 벤(스티븐 연)이라는 정체불명의 남자를 종수에게 소개한다. 어느 날 벤은 해미와 함께 종수의 집으로 찾아와 자신의 비밀스러운 취미에 대해 고백한다. 그때부터 종수는 무서운 예감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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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를 모티브로 두고 있지만, 기존 이창동 감독이 추구한 문법과 정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그만의 영화였다. 한편으로는 그의 영화에서 좀 처럼 보기 힘든 스릴러와 같은 장르적 형태가 눈에 띈 영화라는 점에서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다. 물론 대중에게 익숙한 일반적인 스릴러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형태지만, 시종일관 호기심과 의문점을 던지며 긴장감과 몰입도를 선사하는 방식이 잘 만든 월메이드 스릴러를 보는듯한 여운을 전해준다. 

초반 종수와 해미의 만남을 통해 둘의 관계에 집중했던 이야기는 중반부 벤이라는 정체불명의 남성을 등장시킴으로써 자연스러운 삼각관계의 구성을 띄게 된다. 일반 장르물 이었다면, 이 구도를 대립 혹은 우정과도 같은 관계를 끌고 나갔을 테지만, <버닝>은 세 인물의 관계를 통해 의미심장한 다양한 주제관을 담아내며 흥미로운 심리극을 완성한다.

얼핏 보면 종수와 해미는 '청년 실업'과 '삼포 세대'로 대변된 현세대를 대변하는 듯 보이지만, 이 영화의 시선에서 넓게 본다면 욕망을 실현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공통된 분류에 속해있다. 두 사람은 한 번의 섹스를 통해 연인으로 발전할 것처럼 보였지만, 벤이라는 인물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그러한 관계진전을 막아선 걸림돌이 된다. 벤은 현실 속 금수저이자 한국 사회의 상류층으로 분류된 재미교포 청년으로 두 사람이 가질 수 없는 것을 소유하고 있다. 해미는 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갖고자 한 욕망을 어느 정도 실현할 수 있게 되지만, 종수는 자신이 원했던 해미를 뺏겼다는 사실에 벤에 대한 질투심과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 

<버닝>은 이러한 모호한 삼각관계 속에서 시대와 계급 사회를 향한 문제를 상징적으로 담아내는 동시에 세 인물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 관계를 유연하게 끌고 나간다. 이야기의 특수성 만큼 캐릭터에 대한 깊이 있는 설정과 시선도 눈길을 모은다. 세 사람 모두 욕망에 의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존재들처럼 보이지만, 그들 각자에게는 자신들만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정서들이 내포되어 있다. 이는 <버닝>의 철학을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는 도구인 동시에 이야기를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게 하는 긴장 요인으로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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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서가 연기하는 해미는 팜므파탈과 여린 감성의 순수함을 지닌 캐릭터로 등장하지만, 마음에 따라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줘 예측불허의 불안감을 조성한다. 주인공인 유아인의 종수는 부모가 남긴 상처와 가난이라는 대물림 속에 허덕이는 존재로 욕망의 대상인 해미의 부재와 질투와 동경의 대상인 벤의 존재에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극의 긴장감을 이끌어 나간다. 스티븐 연의 벤은 일반적인 금수저와 달리 이 두 사람과 좋은 친분을 유지하는 착한 부자의 면모를 지니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자신만이 만족하는 이상한 악취미를 지닌 두 얼굴을 지닌 미스터리한 존재다. 

세 캐릭터 모두 복합적인 관계를 지양하고 있다는 점에서 <버닝>이 이들을 통해 전하고자 한 인간의 복합적인 철학은 감독이 남긴 상징적인 묘사와 여백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게 한다. 이는 미완성 혹은 모호함으로 끝맺은 결말 부분에 대한 해석에도 적용된다. <버닝>의 큰 장점이자 매력은 감독 본인이 지정한 메시지를 고집하지 않고, 관객이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남겼다는 점에 있다. 

홍경표 촬영감독의 디테일한 화면구성은 이러한 여지를 전해주는 정점으로 완성된다. 남산 타워 아래 해미의 집, 북한의 대남선전 방송이 울려 퍼지는 파주 종수의 집, 벤의 거주지와 같은 핵심적인 공간을 다루는 화면은 의미심장한 미장센을 구성하며 치밀하게 설정된 이 영화의 이야기와 함께 몰입감을 높여주는 장치가 된다. 

지금까지의 설명으로만 본다면 비평가와 작가주의적 감성을 좋아하는 관객을 위한 영화로 느껴질법 하지만 <버닝>은 전자에서 언급한 장르 영화팬 (스릴러)을 위한 구성에도 충실한 면을 지니고 있어, 시선을 다르게 유지한다면 충분히 흥미를 갖고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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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가 종수에게 부탁하는 고양이의 존재, 해미의 갑작스러운 부재로 인해 벤을 감시하고 추적하는 종수의 행동, 잔혹 범죄의 여운을 암시하는 일부 장면들은 긴 러닝타임에 도 불구하고 지루함 없이 몰입하며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맥거핀과 같은 관객의 시선을 속이는 장치와 눈여겨 보이지 않는 요소들이 후반부의 복선이 되는 부분도 영화의 각본과 설정이 얼마나 치밀하게 구성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작가주의적 시선과 스릴러적 구성을 적절하게 배합했다는 점에서 볼 때 <버닝>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1966년 작품 <욕망 (Blow-Up)>을 떠올리게 한다. '공원에서 촬영된 사진'이 촉발시킨 사건을 메인 소재로 삼아 긴장감을 높이지만, 정작 영화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와 시선은 이와 거리가 먼 다른 것이 <욕망>의 주 설정이다. <버닝> 또한 이같은 설정을 기반으로 관객의 시선을 시종일관 끌고 가게 하는 묘한 매력을 전해줘 스릴러의 관점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에게 신선한 재미를 전해줄 것이다. 

<버닝>은 5월 17일 개봉한다. 

작품성:★★★★★
오락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파인하우스필름/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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