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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비하인드] 니콜라스 케이지, 韓 부인과 이혼한 진짜 이유 1부

18.07.06 16:41


할리우드 스타이자 다양한 표정 연기로 영화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니콜라스 케이지와 관련한 비하인드를 모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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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니콜라스 킴 코폴라 (Nicolas Kim Coppola)
생년월일:1964년 1월 7일 
출생지: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
신체:183 cm 


1. 영화인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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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인 코폴라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부><지옥의 묵시록>을 연출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조카다. 그렇기에 친척, 사촌 중에도 유명한 영화인들이 많다. 코폴라 감독의 딸이자 감독과 배우를 겸했던 소피아 코폴라, 코폴라 감독의 동생인 탈리야 샤이어 (<록키>의 애드리언) 그리고 가수 출신의 영화인 로버트 슈왈츠만도 사촌이다. 


2. 생소하게 느껴질 그의 데뷔시절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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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는 1981년 ABC TV의 코미디 영화 [베스트 오브 타임]을 통해 첫 데뷔를 하게 된다. 당시 그의 나이는 17살이었다. 탄탄한 상체를 드러낸 채 '오버'하는 운동을 하는 장면과 친구들과 슈퍼마켓에서 춤과 노래를 하는 장면은 지금의 그의 연기와 너무 달라 생소한 느낌을 주고 있다. 10대 시절의 니콜라스 케이지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3. 이름 케이지의 기원은 다름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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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를 결심하면서 삼촌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그늘에서 피하기 위해 이름을 개명하게 된다. 성인 케이지의 기원은 만화광인 그가 좋아했던 흑인 슈퍼 히어로 캐릭터 마블 '루크 케이지'에서 따왔다. 


4. 첫 번째 인생작 <아리조나 유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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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여러 청춘 영화에 출연해 바보 같은 인물들만 맡다가 1987년 코엔 형제의 초기작 <아리조나 납치 사건>을 통해 본격적인 존재감을 받게 된다. 20대의 니콜라스 케이지의 지금과는 다른 망가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5. 두 번째 인생작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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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출연한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 실감 넘치는 음주 연기를 완벽하게 펼치며, 다음해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의 남우주연상을 휩쓸게 된다. 이후부터 할리우드의 본격적인 니콜라스 케이지 러브콜이 이어지게 되었다. 


6. 액션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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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후반까지 니콜라스 케이지는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 위주로 출연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액션스타로 인식되었다. 그럼에도 당시 출연한 영화들 모두 흥행에 크게 성공해 최고의 흥행 스타로 등극하게 되었다. 90년대를 상징하는 액션 블록버스터 <더록><콘 에어><페이스 오프>가 당시 그의 대표작이다. 


7. 기복이 심했던 작품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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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오프> 이후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한다. 문제는 그 이후 작품들이 평단과 흥행 면에서 심한 기복을 보여 케이지의 존재감을 흐리게 만들었다는 것. <시티 오브 엔젤><스네이크 아이즈><8mm> 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이었으나, <패밀리 맨><코렐린의 만돌린><윈드토커><어댑테이션> 이후의 작품들이 흥행과 평단에서 오르락 내리는 작품들이었다. 그럼에도 2008년까지는 <내셔널 트레져> 시리즈와 <고스트 라이더>의 흥행 성공으로 인지도는 유지되었지만, 태국 액션 영화 <방콕 데인저러스> 리메이크가 기대이하의 성적을 거두면서 부터 하락세를 보였다. 그러다 <노잉>과 <킥 애스>의 흥행으로 존재감을 살리나 싶더니, 괴작 블록버스터 <마법사의 제자>의 흥행 실패와 심혈을 기울여 출연한 <드라이브 앵그리> <고스트 라이더 3D>의 실패로 흥행 영화에서의 인지도는 하락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기본적인 탄탄한 연기력을 지니고 있어서 <조><스노든>을 비롯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과 애니메이션 <크루즈 패밀리>의 후속 시리즈에 연이어 캐스팅 되어서 존재감을 이어나가고 있다 


8. 세 번의 결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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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은 복잡한 편이다. 1995년 동료 배우인 퍼트리샤 아켓과 결혼했지만 2001년 이혼했다. 2002년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외동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만나 뜨겁게 사랑하다 하와이에서 호화로운 결혼식을 올리며 백년해로를 다짐했었다. 하지만 이 결혼 생활은 107일 만에 끝나게 된다. 성명서 또한 의미심장했는데 "애초에 우리는 결혼해서는 안 될 사람들 이었다." 라는 내용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슬하에 자식은 없었지만, 1988년부터 사귀었던 배우 크리스티나 펄턴 사이에 혼외 자녀인 아들 웨스턴 코폴라 케이지가 있다. 2004년 레스토랑 직원이었던 20대 초반의 한국계 미국인 앨리스 킴을 만나게 되고, 두 달 후 결혼하게 된다. 


9. 한국계 앨리스 킴과 결혼 그리고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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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한국에서는 '케서방' 이라고 부를 정도로 정감 있는 배우로 인식되었다. 슬하에 아들인 칼 엘 코폴라 케이지를 낳았을 정도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듯 보였으나, 2011년 4월 앨리스 킴에게 폭행죄로 고소당하면서 논란이 되었다. 당시 케이지가 술에 취해 이웃집은 자기 집이라 생각해 들어가려고 하자 이를 말리던 아내와 다투게 된 것이다. 사소한 말다툼이 거친 몸싸움으로 이어지자 이를 본 행인들이 신고하게 되었다. 이 일로 케이지는 유치장에 갇히게 되었고, 앨리스 킴이 고소를 취하하고 폭력은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잘 마무리 되는 듯 싶었으나, 2016년 6월 25일 결국 이혼하게 된다. 케이지로서는 세 번째 이혼이었다. 이혼 소식이 알려진 사흘 후 기모노를 입은 동양인 여성과 데이트를 하는 모습이 포착돼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 두 사람 사이의 이혼 사유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두 달후 드러난 전말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앨리스 킴이 니콜라스 케이지 몰래 다른 남성과 정기적으로 교제 중이었고, 서로 껴안고 키스하는 장면을 니콜라스 케이지에게 들켜 갈등을 촉발했던 것이다. 이후 두 사람은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으나, 불륜을 목격한 어색한 상황이 갈등을 불러오면서 결국 이혼을 선택하게 되었다. 


10. 지금 그는 할아버지 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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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1일 50이 된 나이에 할아버지가 되었다. 손자의 이름은 루시언 오거스터스 코폴라 케이지로, 크리스티나 펄턴과의 사이에서 낳은 웨스턴 코폴라 케이지가 여자친구와 낳은 자식이었다. 이른 나이에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손자의 탄생을 기쁜 마음으로 축하했다고 한다. 

2부에서 계속...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IMDB,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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