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슬리피 “‘형이 이렇게 랩 잘하는 줄 몰랐다’고 하더라”
17.09.06 15:05

Mnet ‘쇼미더머니’ 시리즈를 보고 있자면 ‘굳이 여길 왜 나왔지?’라는 생각이 드는 참가자들이 있다.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보통 두 가지다. 이미 씬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자리를 잡았음에도 굳이 ‘쇼미더머니’에 출전해 경연을 펼치는 경우가 첫 번째이고, 이름값에 비해 실력적인 부분에는 물음표가 뒤따르는 -흔히 아이돌 출신 래퍼들이 그렇다- 경우가 두 번째이다.
슬리피는 후자에 해당하는 경우다. 아이돌 래퍼는 아니지만 그동안 사람들에게 래퍼라기보다 예능인으로 더욱 이름이 알려졌고, 그동안 발표한 노래들도 힙합보다는 팝에 가깝다고 할 만한 것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슬리피가 ‘쇼미더머니6’에 나간다고 선언했을 때 사람들은 ‘괜히 나가서 창피만 당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슬리피는 1, 2, 3차 예선을 통과하고 팀 선택 싸이퍼 미션까지 진출하는 결과를 남겼다.
웬만큼 이름 있다 하는 래퍼들도 예선에서 탈락하는 모습이 숱하게 펼쳐지는 ‘쇼미더머니’의 분위기를 고려할 때, 슬리피의 성적은 ‘아쉬움은 남지만 선전했다’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슬리피 본인도 “처음 생각만큼의 결과는 아닌데, 진짜 잘 나갔다고 생각한다”라고 자신의 ‘쇼미더머니’ 도전을 자평했다.
슬리피가 ‘잘 나갔다’라고 평한 건 단순히 예선을 통과해서가 아니라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슬리피는 “(‘쇼미더머니’ 출연으로 얻은 건)힙합적인 이미지나 실력의 인정보다 내가 만족하는 건 나에 대한 자신감을 찾은 거다. 사람들이 나를 인식할 때 화요비 남친, 슬좀비, 국주 남편 이렇게 가다가 이제는 래퍼로 보는 거다. 요즘에 나를 보면 첫마디가 ‘쇼미 잘 봤어요’다. 사진도 힙합 좋아하는 사람들이 와서 찍자고 한다. 그것만이라도 좋다. 거짓말이라도 좋다. 이제는 군대 얘기, 국주 얘기로 다가오지 않으니까 그렇다”라며 ‘쇼미더머니’가 자신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그로인한 래퍼로서의 자신감 회복에 큰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슬리피에게 득이 된 ‘쇼미더머니’의 출연이지만, 사실 ‘쇼미더머니’에 나가는 건 그에게 큰 결심이었다.
슬리피는 “만약 내가 구리게 떨어지면, 벼랑 끝에 떨어지는 거다. 힙합적인 이미지를 복구할 수가 없으니까. 나도 멋있는 걸 하고 싶은데 너무 안 어울린다고 하니까 극단적으로 여기밖에 없으니까. 일단 나를 클릭을 안 하는 거다. 이제 내 음악은 듣고 싶지 않은 것이 됐나 싶었다. ‘음악으로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멋있는 음악이 하고 싶은데’ 해서 용기를 냈다. 집에 있으면 작년에도 ‘나갈 걸’이라고 생각했다. 집에서 욕하고 있어봐야 변하는 게 없더라. 내 구린 상황은 그대로다. 변화를 주려면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쇼미더머니6’의 출연 계기를 밝혔다.
사실 슬리피의 ‘쇼미더머니6’ 출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평가를 받을 만하다. 슬리피는 이미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방송인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에 생각을 달리하면 안정적이고 편한 길을 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리피는 예능인, 방송인이 아닌 래퍼이자 음악인으로 인정받고자 했다.
슬리피는 “음악으로 까먹고 예능으로 메꾸고 그랬다. 그런데 예능은 좀 더 늙어도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나중에 내가 플레이어로 활동을 못할 때 하고 싶었다. 지금은 음악을 더 하고 싶었다”라고 ‘음악인 슬리피’로 인정받고 싶은 열망을 드러냈다.
재미있는 점은 막상 ‘쇼미더머니6’에 출연해 래퍼들을 만나보니 슬리피 혼자 자격지심에 빠져있었던 것이지 슬리피를 깔보고 무시하는 시선은 없었다는 것이다.
슬리피는 “(나가서 보니)인정을 하고 있었다. 나 혼자 자격지심에 갇혀 있었다. (다른 래퍼들과) 교류를 못해서 그랬다. 그런데 다 나를 알고 인정을 하고 있더라. 자신감을 엄청 얻었다”라고 말했다.
보다 구체적인 사례를 묻자 그는 “2차 예선 때 사람들이 전부 다 무대를 보고 있는데, 대기실에 돌아오니 반응이 엄청 좋은 거다. 좀 떨면서 해서 ‘욕 먹으면 어쩌나’ 했는데 애들이 다 일어나서 박수 치더라. 애들이 인터뷰하는데 ‘(슬리피)형이 이렇게 랩 잘하는 줄 몰랐다’고 하더라. 근데 다 편집됐다. 하하. 또 결승전 특별무대에서 내가 못했다는 댓글이 있는데, 현장에서는 도끼가 와서 내가 제일 잘했다고 하더라”라며 웃었다.

오해하지 말아야할 건, 슬리피가 지금까지 예능인으로 쌓은 인지도나 인기, 과거 대중적인 랩을 하던 모습을 부정하거나 거부하려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슬리피는 자신이 출연한 예능인으로서의 이미지와 인기에도 큰 자부심과 고마움을 지니고 있었다.
슬리피는 “(예능은)재밌다. 옛날에는 창피하기도 하고 내가 왜 이렇게 해야 하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은 자부심도 있다. 다른 래퍼나 음악 하는 애들이 부러워하더라. 아닌 애도 있는데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많더라. 어떤 친구는 나에게 라디오라도 불러달라고 한다. ‘우결’ 같은 것도 이미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멋진 래퍼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결혼하는 그런 거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 막상 찍고 나니 얻은 게 많았다. ‘우결’하면서 팬층이 많아졌다. 진짜 평생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우결’을 찍고 나서)생일에 팬이라고 20명이 와서 선물을 주고 그러더라. 국주 챙겨주고 그런 모습이 좋았다더라”라고 말했다.
즉, 슬리피가 ‘쇼미더머니6’를 통해 얻은 자신감은 과거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온 것들을 버리지 않고도 더욱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할 수 있다는 믿음에 가깝다.
또 그렇기 때문에 슬리피는 더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슬리피는 “곡 작업을 하는데 동생들에게 전화해서 전부 다 물어봤다. ‘너희들 어린 친구들이 봤을 때 내가 뭘 하면 어울릴 거 같냐’고 물어보고 피드백을 받았다. 디렉도 봐달라고 하고 레퍼런스도 다 받았다. 이 친구들 생각을 이해하려고 마음먹어서 다 내려놓고 그렇게 했다.
발품 팔아서 새로운 프로듀서도 만났고 페노메코와 함게하는 프로듀서에게 곡도 받았다. 예전엔 내가 랩할 때 누가 내 랩을 터치 못하게 했다. 내 마음대로 했다. 이제 어린 애들 앉혀 놓고 ‘구리면 구리다고 하라’고 한다. 애들은 진짜로 구리다고 한다. 고마운 게 그 친구들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안하더라. ‘왜 이런 거까지 물어봐요’라고도 안 하더라”라고 꼭 자신의 것이 아닌 새로운 스타일에도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달라진 접근법으로 만든 슬리피의 첫 곡이 9월 10일 발매된다.
슬리피는 “‘쇼미’때 했던 거 음원으로 만들어 놨다. 메킷레인의 블루(Bloo)와 나와 같이 있는 신인 래퍼가 참여했다. 내가 하면 어색한 가사를 애들이 대신 불러주고, 뮤직비디어에서 멋있는 건 모델이 하고 그랬다. 하하”라며 웃었다.
또 슬리피는 싱글 이후 계획도 이미 구상중이다. 슬리피는 “내 욕심도 크고 내걸 지금 하고 싶다. 내가 ‘쇼미’ 빨이 있는지 없는지 몰라도 1이라도 있을 때 싱글이라도 하나 내고 앨범도 내고 그러고 싶다. 앨범을 안내는 래퍼들은 또 무시를 받더라. 그런 거는 자기가 부지런해야하니까 내년 초에는 첫 솔로앨범을 내고 싶다. 곡은 거의 다 만들어 놨다. 색은 어느 정도 맞춰 놨다”라고 래퍼 슬리피의 행보를 밝혔다.
더불어 슬리피는 ‘쇼미더머니’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슬리피는 “내가 어렸을 때 ‘쇼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엄청 생각한 적이 있다. 그때 그런 게 있었으면 심사위원도 할 수 있었을 거 같다. ‘쇼미’를 안좋게 보는 사람도 많은데 난 좋게 본다. 프로그램이 이거 하나 밖에 없고 또 편집이 문제지, 래퍼들 다 끌어올렸다. ‘쇼미’가 없었으면 스윙스, 도끼도 이 정도까지는 안됐다”라며 “분명히 여기 나와서 자기 인생을 바꾸는 친구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슬리피 본인도 어떤 의미론 ‘쇼미더머니’를 통해 인생을 바꾼 주인공이었다.

(사진=TS엔터테인먼트)
최현정 기자 gagnrad@happyris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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