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정 칼럼] 연예인은 젠더 갈등의 아바타가 아니다
19.01.18 11:02
연예인을 두고 흔히 하는 말 중에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 있다.
하지만 요즘 연예계를 보면 이 말이 꼭 맞는 것 같지도 않다. ‘예기치 못한 논란’에 휘말려 치명적인 이미지 타격을 입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예기치 못한 논란’이란 녀석은 예전부터 꾸준히 연예인들을 괴롭혀온 적이었다. 다만 시대에 따라 논란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리고 요즘 벌어지는 대부분의 논란의 원인은 ‘젠더 갈등’이다. 그런데 이 젠더 갈등은 과거의 논란 원인들보다 더 특별하고 지독하다. 그렇기 때문에 쓸데없는 걱정을 쓸데없지 않게 만들고 있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 칼럼은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를 지적하는 글이 아니다.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스트가 젠더 갈등의 중요한 키워드이긴 하나, 이것 역시 표면적인 것일 뿐이다. 게다가 페미니즘 자체는 나쁘지 않다.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차별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당연히 바로잡는 게 맞다. 反페미니즘 진영에서 성인같이 여기는 유아인과 산이도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했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건 젠더 갈등을 일으키는 세력들이다. 이들은 페미니즘이라는 명목 하에 그저 혐오의 대상을 찾을 뿐이다. 이를 반대한다는 세력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 응징한답시고 똑같이 혐오의 감정으로 맞서고 있다. 어느 쪽이든 비상식적이고 못할 짓이다.
하나 예를 들어보자. 성실한 청년인 A가 열심히 일을 해서 모은 돈으로 땅을 사고 건물을 지었다고 치자. 그리고 A는 이 건물을 자신의 사무실 겸 작업실로 이용 중이었는데 2년 만에 전철 노선이 생기면서 땅값이 급격하게 올라 수십억의 시세 차익을 남기게 됐다.
이런 사례를 접하게 되면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대가를 얻었구나’, ‘투자에 대한 안목이 있구나’, ‘큰 수익을 얻어 부럽다’와 같은 축하나 부러움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 보통이고, 그것이 상식적인 반응이다.
이를 두고 갑자기 ‘저건 범법 행위’, ‘착한 척 하더니 인성 쓰레기’라며 범죄자취급을 한다면 오히려 이런 사람들을 이상하다고 할 것이다. 비상식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A’가 ‘아이유’로 바뀌자 상식과 비상식도 뒤바뀌었다. 상식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비상식을 외치는 게 정의이고 의식 있는 행동인 양 박수를 받는 해괴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실제 며칠 전 경제지가 아이유가 구입한 경기도 과천 지역의 부지의 시세가 광역급행철도 개설 이슈로 가격이 크게 올랐다고 보도하자 일부는 ‘투기가 목적아니냐’라고 의혹을 제기했고, 어처구니없게도 이 의혹은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실제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다는 해명도, 각종 기부와 선행을 통해 쌓은 성실한 이미지도, 가수 활동만으로도 차익으로 알려진 23억 원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매년 올리고 있는 그녀의 능력도 다 아무 소용없었다.
이 광기어린 아이유의 투기 의혹은 급기야 청와대 청원으로까지 등장했고, 이 청원은 무려 2만6000여명의 동의를 얻어냈다.
결국 이 집단 광기를 치료하는 특효약은 ‘강경대응’이었다.
아이유의 소속사 측이 작업실 내부 사진의 공개와 함께 허위사실유포 및 명예훼손에 대한 법적대응을 예고하고, 아이유 역시 “언젠가 꼭 사과 받겠다”라고 강경하게 나오자, 그제야 이들의 집단최면이 풀렸다.
그리고 동시에 펼쳐진 댓글 삭제와 사과문 릴레이는 이번 블랙코미디의 최고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한 장면이었다.
이번 아이유 사태의 표면은 ‘연예인의 투기 의혹’이지만 실상은 배후에 젠더 갈등이 있다는 의견이 많다. 아이유는 과거 남혐 세력에 ‘찍힌’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아이유의 투기 주장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하고, 동조하고, 발을 뺀 곳이 바로 여초 사이트들이었다.
아이유 사태의 배후가 젠더 갈등이라는 것이 ‘합리적 의심’이지만, 직접적으로 남혐 세력들의 공격 대상이 된 연예인도 흔하다.
불과 며칠 전만해도 박성광의 포차 콘셉트와 라이머의 신혼 생활이 공격대상이 됐고, 납득할만한 문제제기라기보다 생트집에 가까웠음에도 실시간 검색어에까지 오르는 큰 이슈가 됐다.
여혐 세력들도 만만치 않다. 남혐 세력이 엉뚱한 선동을 일삼는다면, 여혐 세력들은 교묘하고 편협한 낙인찍기를 일삼는다.
전자가 이미지를 깎아 내린다면 후자는 이미지를 덧씌운다. 어떻게 보면 연예인의 입장에선 이쪽이 더 질이 나쁘다.
실제로 이들은 ‘82년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로, ‘걸스 캔 두 애니띵’(Girls can do anything) 스티커를 붙였다는 이유로, 양예원 사건 청원을 공유했단 이유로, 단지 여성 인권을 위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단 이유로 레드벨벳 아이린, 에이핑크 손나은, 수지, AOA 설현을 ‘페미니스트’로 낙인찍어 버렸다.
‘82년 김지영’이나 ‘걸스 캔 두 애니띵’이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아이템이긴 하나, 단지 그것만으로 페미니스트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또 수지의 경우 전후 사정이 다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행동한 것은 신중치 못했지만, 범죄 피해자에 대한 인도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행동이었을 수도 있다.
설현은 황당할 지경이다.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을 갖고 공부한다는 말이 왜 페미니스트 선언으로 둔갑하고, 인스타그램 팔로워 정리가 그 증거가 된 건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를 일이다.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없는 것을 마치 증거인 것처럼 포장하고 섣부른 궁예질로 페미니스트라는 프레임을 씌워버렸다.
정리해보면, 여혐·남혐 세력들은 TV나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연예인을 남성 혹은 여성의 대표자로 삼아 말도 안 되는 논리로 -그런데 이게 또 먹히는 게 문제다 -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연예인들은 백이면 백 모두 이런 논란에 휘말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팬들과 이미지로 먹고 사는 연예인들이 팬들과 이미지를 깎아먹는 논란을 좋아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혹시라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특정 사상이나 이념을 지지한다고 한다면 스스로 커밍아웃을 하도록 놔두면 된다.
지금처럼 선동과 프레임을 씌우기로 몰아가기식 아웃팅을 하는 건 일종의 폭력이고 집단 괴롭힘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제발 부탁한다. 비상식과 몰상식의 판타지는 정말 판타지로 끝내주길 바란다. 상식과 현실에까지 끌고 오지 말고.
최현정 기자 gagnrad@happyris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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