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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현철 “13년 만에 찾은 음악의 재미…지금이 가장 재미있다”

19.05.2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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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사진제공|FE엔터테인먼트

‘13년 만에 정규 10집으로 돌아온 시티팝의 황제 김현철’

이 짤막한 문장을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 김현철은 갑자기 음악을 하지 않은 이유부터 세간에 ‘시티팝의 황제’라고 불리고 있음에도 정작 자신은 ‘시티팝’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이야기, 13년 만에 다시 음악을 시작한 이유, 10집 이후 정규형식의 음반을 내지 않겠다는 계획 등을 오랜시간에 걸쳐 꺼내 놓아야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두번에 걸쳐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일단 ‘김현철이?’라는 의외의 내용들이 첫 번째였고, 듣다보니 ‘김현철이니까’라고 곧 수긍을 하게 된 게 두 번째였다. 

의외라면 의외이고 당연하다면 당연했던 그의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 이하 김현철과의 일문일답 

Q. 13년만에 현역으로 돌아온 기분이 어떤가?

김현철 “환경이 많이 바뀐 거 같다. 음반에서 음원으로 바뀌고, 가요계가 구조적으로 바뀌고... 그런 와중에도 음악이라는 것 자체는 17, 18세기, 더 오래전부터 들어오던 것이라는 점은 변함없다” 

“처음에 이런 질문을 많이 하더라. 13년 동안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 나오냐고. 9집 내고 나서 왠지 모르게, 이유도 모르고 음악이 재미가 없어졌다. 재미가 없어졌다고 표현하기엔 미안한 게 너무 재미있게 살았다. 그 당시에는 먹고 사는데는 별로 지장이 없었다. 감사하게도 DJ도 하고 ‘복면가왕’도 나가고 그러다보니까 음악을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겠더라. 음악을 그만둘 수도 있겠구나 해서 악기도 처분하고 컴퓨터 팔고 그렇게 지냈다. 그러다보니까 그 와중에도 강연회 나가고 진행도 하고 그냥 뭐 지내는 거다. 남들이 음악 하는 거, ‘누구 나왔다’하면 그런 거 들으면서 지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나한테는 나쁘지는 않았던 시간이었다” 

Q. 그렇다면 다시 음악을 하려고 마음먹은 계기는 무엇인가?

김현철 “그러다가 2년 전쯤에 친한 기자에게 전화가 왔는데, 나에게 ‘시티팝이라는 걸 들어봤냐’고 묻더라. 그때 난 ‘시티팝이 뭐냐? 아이스크림 같다’라고 했다. 하하. 일본에서 유행했다고 하면서 진짜 모르냐고 물어서 모른다고 했는데 내가 대표주자라고 하더라. 그래서 기가 막혀서 웃었다. 그리고 잊고 있었는데, 겨울쯤에 일본에 가 있는 후배가 전화를 했다 ‘형, 일본 아마추어 DJ가 형 음악을 틀더라’라고 하더라. 일본이라는 데를 온천 간다고 갔던 게 전분데 내 음악을 튼다는 얘기가 신기하더라. 그게 다 1집 앨범이었다. 그러다가 봄쯤에 아는 동생이 시티팝 프로젝트를 한다고 하더라. 시티팝이 젊은 애들에게 인기 있다고 하면서 ‘오랜만에’ 라는 곡을 죠지를 통해서 하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온 걸 들어보니 잘 했더라. 죠지를 한번 보고 싶어서 만나자고 했는데 2개월 있다가 네이버에서 연락이 왔다. 온스테이지를 하는데 죠지 공연에 게스트로 와달라고 하더라. 좋다고 하고 가서 보니 정말 똘똘하고 재밌더라. 그때 내가 ‘앨범을 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원이 됐든 뭐가 됐든 어쨌든 그냥 내고 싶었다. 앨범을 내고 싶어진 게 거의 9년만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다시 악기 사고 컴퓨터 사고 그랬다. 옛날에 조각조각 만들어놨던 거 찾아서 이어붙이고 작업하고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작년 10월에 오후에 발견 그만 두면서 앨범 작업을 했다” 

Q. 그렇다면 김현철이 했던 과거 음악은 시티팝이 아니라는 건가?

김현철 “시티팝이라는 명칭이 일본에서 만든 건데, 미국에서 컨템포러리 재즈가 유행하던 게 일본으로 건너가 시티팝이란 장르가 된 것같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음악을)하는 사람은 분명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음악이 발전된 거다. 그런데 어느 장르를 규정하는 건 미디어에서 만들어내는 거다. ‘시티팝’이라는 게 먼저 있던 게 아니라 음악이 먼저 있었고, 나중에 이름이 붙었다. 그 당시 음악 흐름을 요즘에 시티팝이라고 정의한 거 같다” 

Q. 합동 공연을 해보니 어떻던가? 

김현철 “관객들이 나를 봐서 좋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정말 좋았다. 내가 왜 이런 걸 안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자주, 많이 하려한다. 오랜만에 공연하니까 집에 가려고 나올 때 거기 앞에서 몇 분이 기다리고 있더라. 그걸 보고 감동 받았다. 내가 왜 저런 분들이 있는데 뭐 잘났다고 음악을 열심히 안 했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저 팬이라고 표현하기도 너무 미안하다. 단순히 팬이 아니라 진정한 팬을 표현하는 다른 용어가 있어야 한다” 

“지금 나이가 되니까 그렇다. 예전엔 음악이 권리였다. 그런데 이제 점점 의무가 된다. 음악 열심히 해야 한다. 그나마 조금 할 줄 아는 게 음악밖에 없더라. 이거라도 열심히 해야겠더라. 나이가 들면 겸손해진다고 하는데 겸손해지는 게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 이제야 자기 꼴을 아는 거다. 그동안 잘나간다는 미명하에 날아다녔다고 하는데 결코 날아다닌 게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알았으니까 열심히 해야겠지 않나” 

Q. 후배들이 피처링을 많이 했다. 

김현철 “후배들이랑 낸 거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선배들과 많이 작업하고 있다. 10집 앨범은 선배들, 동료 스태프들과 같이 작업을 많이 했다”

“죠지는 ‘오랜만에’라는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음악을 찾아들었다. 그전에는 몰랐다. 그런데 음악이 정말 좋았다. 제일 좋았던 곡은 ‘let's go picnic’(렛츠고 피크닉)이다. - 실제로 이때 김현철은 자신의 휴대폰 플레이리스트에 죠지의 곡이 담겨있는 걸 보여주었다. - 아직도 듣고 있다” (※주: 죠지는 ‘10th - preview(프리뷰)’에 수록된 더블타이틀곡 ‘드라이브’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쏠이라는 친구도 내가 직접 찾아갔다. 회사에 전화해서 찾아갔다. 우연찮게 ‘슬로우’라는 노래를 들었는데 너무 노래를 잘했다. 이 가수의 편곡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회사까지 찾아갔다. 쏠은 그 가수에 맞는 곡을 쓴 거다” (※주: 쏠, Sole은 ‘투나잇 이즈 더 나잇’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옥상달빛은 데뷔할 때부터 친동생처럼 생각한 친구다. 김윤주 결혼할 때 내가 주례였다. 그때 처음 주례를 해봤다. 내가 쟤랑 같이 곡을 하면 축가를 써봐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주: 옥상달빛은 ‘웨딩 왈츠’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Q. 정작 타이틀곡 ‘한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는 마마무의 화사와 휘인이 곡 전체를 모두 부르고 본인은 아예 보컬에 참여를 하지 않았다.  

김현철 “나는 내가 가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가수가 아니더라. 음악을 전체적으로 만드는 사람이더라. 노래 부르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긴 그렇다.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아니고 가창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노래를 불러야 자기노래라고 생각한다고 하는데 그 얘기도 맞다. 그런데 나는 내가 만든 음악이 내 노래라고 생각한다” 

“마마무는 김도훈이란 제작자가 내 대학교 후배다. 걔랑 가끔 만난다. 이번에 앨범 준비한다고 하면서 발라드를 들려줬는데 김도훈이 ‘마마무가 부르면 안돼요?’라고 하더라. 그래서 좋다고 했다. 또 마마무는 발라드가 없고 난 발라드를 썼고 그게 딱 맞았다. 그땐 가사도 없었는데, 그다음에(마마무가 부르기로 하고) 가사를 썼다. 휘인과 화사가 불렀는데 단짝이 어쩔 수 없는 라이벌이 되는 내용이다. 화사랑 휘인이 실제 단짝이라는 내용을 어디 인터뷰에서 봤는데 그게 영감이 됐다. 마마무에게 노래 얘기를 하니 절대 우리는 그럴 일이 없다고 반응하긴 하더라. 하하”

Q. 10집에는 누가 참여하나?

김현철 “최백호, 황소윤, 정인 등 많이 있다. 듀엣도 있고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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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사진제공|FE엔터테인먼트

Q. 프리뷰 미니앨범을 내고 10집 앨범을 내는 방식도 독특하다. 

김현철 “이번엔 꼭 LP를 내고 싶었다. 테이프도 내고 싶고, 그런데 테이프나 CD는 상관이 없는데, LP는 앞뒤로 46분밖에 못 넣는다. 한 면에 23분씩. 그래서 더블 앨범으로 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게 너무 무겁더라. 그래서 여름에 어울리는 음악을 먼저 하기로 했다” 

Q. LP를 내려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김현철 “앞으로 음악을 언제가지 할지 모르겠는데, 30주년이라고 말하는 건 싫다. 그렇다고 10집을 내는데 그냥 내고 싶지는 않았다. 옛날에 CD가 없었을 때, LP로 냈을 때의 기분이 그립고 그런다. LP를 끝까지 듣고 그런 감정이 너무 그립더라. 그래서 다음에 앨범을 내면 LP를 내겠다고 생각했다” 

Q. 스스로를 가수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 이유가 있나?

김현철 “내가 노래를 잘 못했다. 못했다기보다 가창력이 있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가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가창력이 없다고 모두 가수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가창력으로만 따지면 밥 딜런도 그렇지 않나. 하하”

Q. 앞으로도 계속 이번 ‘프리뷰’처럼 협업 방식으로 음악을 할 생각인가?

김현철 “이번 10집을 내면 캐비닛을 닫아버리려고 한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OO집’ 이런 시리즈는 10집이 마지막이다. 그 이후는 무슨 형태가 됐든지 자유롭게 음악을 할 수 있을 거 같다. 싱글이든, 음원이든, 50부작 곡이 됐든지... 큰 숙제를 한 기분이다. 정규형태에 머무르는 건 10집이 마지막이다” 

Q. 10년을 넘게 쉬다가 다시 음악을 하는 건데 잘 되나?

김현철 “당연히 안된다. 하하. 음악이 좋아지고 하고 싶은데, 음악이 잘 안된다. 곡 쓰는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진데 노래하는데 안 나오더라. 이제 음악이 제일 재밌어졌다. 그래도 힘에 부치긴 부친다” 

Q. 혹시 음악을 쉬고 다시한 게 육아와 관련이 있나?

김현철 “육아와는 거의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오늘날 음악이 다시 재밌어진 첫 번째 이유는 하기 싫을 때 충분히 안 해서 그런 거 같다. 아주 쉬게 될 수도 있었지만, 그래서 요즘에 음악이 재밌고 ‘이거 해볼까, 저거 할까’ 그러고 있다. 그때 꾸역꾸역 했으면 먹기 싫은 밥 먹듯이 억지로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Q. 그렇다면 지금이 음악을 하면서 가장 재미있고 열정이 넘치는 시기라고 봐도 되나?

김현철 “그렇다. 지금이 음악에 대한 열정과 재미가 가장 높을 때다. 1집 낼 때가 생각난다. 제일 재밌다. 2집, 3집이 잘되니까 아이디어 생각하고 성적 생각하고 그러니까 지루해졌었다” 

Q. 유튜브 채널을 한다고 하던데?

김현철 “기자들이 기사를 쓰고 릴리즈를 할 때 온라인과 지면으로 하지 않나 온라인과 지면은 활동할 수 있는 게 다르다. 유튜브도 그런 방식의 차이다. 나는 신인가수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 동료 교수들이 (재능을)안타까워하는 애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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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사진제공|FE엔터테인먼트

Q. 한 회사의 대표이기도 하다. 직접 가수를 키워볼 만도 한데?

김현철 “나는 내 회사 가수의 음악에 대해 전혀 터치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훈수를 두는 가수가 있다. 나랑 관계가 없는 가수들은 그런다. 하지만 우리 회사 가수가 되면 내 의지가 거기에 반영되면 안 되는 거다. 이거는 좀 다른 방식일 거다. 내가 그렇게 음악을 했다”

“회사는 내일 망할 수도 있다. 그런 게 회사다. 하지만 아티스트라는 건 쉽게 얻을 수 있는 직함이 아니다. 나는 회사가 아티스트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Q. 지금 과거 자신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나?

김현철 “‘우주선 안에 선입견’이라게 있다. 지구에서 목성으로 우주선을 쏘면 우주선 안에 있는 사람은 좌표만 목성으로 찍었지 실제 목성으로 가고 있는지 어긋난 지를 모른다. 그냥 (목성으로 가고 있다고) 믿고 있는 거다. 우리가 다 그렇게 산다. 자신이 어떻게 변했다는 건 자신은 모른다. 남이 봐야 목성으로 가고 있는지를 안다. 내가 순수하다, 변질됐다, 그런 건 나도 모른다. 김현철이라는 우주선은 목성에 가고 있다고 나는 순수하게 믿고 있지만, 실제로 그 우주선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Q. 그럼 지금의 음악은 마음에 드나?

“그걸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고민하는 거다. 떨어져서 보니까 ‘이것이 이런 식으로 변질이 될 수도 있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더라. 지금 앨범도 대단히 마음에 드는데 또 세월이 흘러서 다른 시각에서 보면 다른 느낌이 들 거다. 사람이란 게 어딘가 정착해서 볼 수밖에 없다. 지금의 시선에서는 마음에 든다” 

“내가 철학적인 얘기를 잘 못하지만 이런 얘기를 하는 게, 결국에는 나도 제1자나 제2자다. 제3자가 될 수 없다.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 

Q. ‘천재 가수’라는 호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현철 “하하. ‘천재 가수’는 아니다. 승철이형이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한참 할 때 인터뷰 하면서 ‘그 동아기획에서 나온 걔가 천재라고 그러던데...’라고 말한 게 와전이 돼서 천재 가수가 됐다. 그게 지금까지 꼬리표가 붙은 거다” 

Q.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바라는 것이 있나?

김현철 “점점 더 프로듀서가 득세를 할 거 같다. 30년 음악을 하다보니까 내가 음악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컨트롤 하면 안 되는 거 같다.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여기까지 와도 이제는 그러면 안 되는 거 같다. 내가 커피만 마시고 나와도 이 정도는 해라고 할 수 있는 게 진짜 프로듀서 같다. 좋은 프로듀서라는 건 사람을 어떻게 기용하느냐인 거 같다” 

“세상이 다 그렇다. 가장이 아들, 딸이 크면 점점 놓아야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총수가 되면서 점점 놓아야하고, 정치도 그렇다. 당수가 되려면 현역 정치에서 나오는 거다. 감독도 현역선수에서 은퇴해야한다. 프로듀서를 잘하려면 점점 넘겨줘야한다” 

“그저 내가 오늘 만든 회사는 또 30년 후에 어떤 회사가 될까 그때 가서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잘 만들자 그런 마음이다. 또 (윤)종신이야 좀 다른 경우지만, 세(勢)라는 게 있듯이 우리 또래 가수들의 힘이 됐으면 좋겠다. 이게 잘되면 다 줄줄이 나올 수 있을 거 같다” 

최현정 기자 gagnrad@happyris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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