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신승훈 “30년을 음악 하니, 이제 좀 선이 그어진 것 같네요”
20.04.09 11:15
1930년 우리나라 최초의 전업가수이자 대중가수로 꼽히는 채규업이 등장한 이래로, 대중음악계에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슈퍼스타가 꾸준히 탄생했다.
4~50년대는 현인이 그랬고, 6~70년대는 남진, 나훈아, 이미자 등을, 80년대는 조용필이나 전영록을 이런 ‘시대의 아이콘’으로 꼽을만하다.
그렇다면 90년대는 어떨까. 90년대는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이 또렷이 남아있는데다가 유독 많은 스타가 탄생하고 사라진 시기인 만큼 다른 시대에 비해 많은 스타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곤 한다.
물론 ‘문화 대통령’ 서태지가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될 만 하지만, (지금은 방탄소년단에 의해 경신됐지만) 단일앨범 최다 음반 판매량 기네스 기록을 달성한 김건모나 90년대 말 혜성같이 등장해 현재 K팝 시스템의 기틀을 마련한 H.O.T나 젝스키스 등을 언급하는 사람도 있을 법 하다.
그리고 신승훈이 있다.
한국 가요사에서 ‘신승훈’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의 음악 성적부터가 이를 증명한다. 2020년 4월 현재, 신승훈은 역대 누적 음반 판매량 1위를 기록중(약 1700만장 추청)이며, 또 90년대 가장 많은 1위를 기록한 가수이며, 공중파 가요 차트 역대 최장 기간 연속 1위 기록(SBS ‘인기가요’ 14주 연속 1위)도 보유하고 있다.
신승훈의 가치는 단지 성적에만 그치지 않는다. 음악적인 역량에서도 ‘역대급’이라는 표현이 따라 붙는다.
지금까지 발표한 모든 앨범의 타이틀곡을 직접 작곡한 것은 기본이고, ‘발라드 황제’라는 별칭이 무색할 정도로 매 앨범마다 수많은 장르를 수록해 넓은 스펙트럼을 과시하기도 했다. 물론 이는 평단의 호평과 상업적 성공 모두 거머쥐며 그 완성도도 입증했다.
뿐만 아니라 신승훈은 일찌감치 믹싱과 마스터링 등을 중요하게 생각해 음질에도 세심한 신경을 기울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 결과 음반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한 단계 끌어올리기도 했다.
‘웰메이드 앨범’, ‘믿고 듣는’ 등이 요즘 들어 사용되는 표현이긴 하나, 이미 90년대부터 이에 정확하게 어울리는 활동을 해온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가 바로 신승훈이다.
그런 신승훈이 이제 데뷔 30주년을 맞이한다.
평생을 음악을 하겠다고 누누이 밝혀온 신승훈이지만, 30년이라는 세월은 그에게도 남다른 감회로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이에 그는 팬들과 함께 30년이라는 시간을 추억하고자 전국투어와 30주년 기념 앨범을 계획했다.
그래서 그런지 투어명과 앨범명도 의미심장하다. ‘2020 THE신승훈SHOW : 미소 속에 비친 그대’와 ‘My Personas’가 그것이다.
신승훈의 지난 30년이라는 시간을 들어보기엔 몇 날 며칠이 걸려도 부족하겠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그의 소회와 스페셜 앨범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 이하 신승훈과의 일문일답
(※본 인터뷰는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해 온라인 화상회의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Q. 먼저 30주년을 맞이한 소감을 말해주면 좋을 것 같다.
신승훈 “앞으로 어떻게 될지 이것저것 예측을 하는데, 화상 인터뷰를 할 거라곤 예측을 못했다. 30주년이라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몸이 힘들더라도 많이 만나서 이것저것 많이 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상황이라 이렇게 됐다. 이런 식으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다. 하하”
“30주년이 됐고, 그동안 열심히 해왔고,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는 이야기보다 뭔가 내 속에 있었던 이야기도 해야 할 거 같다. 소회도 말해야할 거 같고... 10주년에 누가 마라톤에 비유해서 ‘반환점을 돌았다’고 했는데, 그때 난 의아했다. ‘이분들은 20년만 음악을 할 생각인가? 난 평생 할 건데’라는 생각 때문에 그랬다. 20주년 때도 같은 생각이었는데, 30년이 되니까 이제는 ‘반환점을 돌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마라톤은 반환점이 있지만, 인생에서는 반환점이 없는 것 같다. 반환점은 갔다가 돌아오는 것 인데 인생은 쭉 가는 거지 않나?”
“내가 신인 때 어느 인터뷰에서 ‘한 획을 그으려고 소란스럽게 음악을 하지 않겠다. 한 해 한 해 점을 찍어서, 나중에 멀리서 봤을 때 선이 되는 가수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제 멀리서 보면 좀 선이 되어있는 것 같긴 하다. 그래도 기념하고 추억하고 이런 걸 이야기하기에는 내가 공연도 앨범도 이야기할게 많아 바쁘다. 과거의 영광을 이야기하기보다 오늘 이 자리에 충실하게 싶다. 그런 마음이 내 첫 소감이다”
Q. 신승훈의 대표곡 1곡을 꼽자면 어떤 곡을 선정하겠나?
신승훈 “‘그 후로 오랫동안’도 있고 ‘보이지 않는 사랑’도 있고... 매년 계속 바뀐다. 어쩔 때는 이 곡, 이럴 때는 이 곡 그런다. 하지만 오늘은 30주년이라 의미 있는 곡이 ‘미소 속에 비친 그대’이다. 이 곡으로 (신승훈의) 처음이 시작됐으니 그렇다. 6월부터 하는 투어 ‘The신승훈 Show’의 제목도 ‘미소 속에 비친 그대’이다. 30주년에 의미 있는 대표곡일 거 같다”
Q. ‘발라드의 황제’와 ‘국민가수’의 수식어는 어떻게 생각하나?
신승훈 “내가 농담식으로 이야기한 게 ‘우리 집안에 왕족은 없다. 영의정까지만 있다’고 했다. 지금은 발라드 황제가 나만 있는 것도 아니더라. 컴백하면 ‘돌아온 황제’라고 하기도 한다. 하하. 연인이 헤어지고 뒤돌아보면 나쁜 기억보다 좋았던 기억이 생각나는 것처럼, 발라드를 했을 때가 제일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장르는 여러 가지를 많이 했다. 그런데 ‘신승훈이 잘해도 이런 걸 하면 어색해’라고 한다. 애증의 관계인 닉네임이다. 한 가지 색을 정해줬다. ‘발라드 황제’하면 신승훈이 꼭 들어가는 건 고맙지만, 그래도 난 이 프레임에 갇혀있진 않겠다”
“국민가수라는 닉네임도 어느 기자분이 ‘자기 가족이 다 신승훈을 좋아하는데 이 정도면 국민가수’라고 해서 생긴 건데, 나는 예전에 반납했다. 이제 어린 친구들이 나를 잘 모른다. 그래서 국민가수는 아니다. 또 ‘다시 국민가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냐’고 하면, 그건 아닌 거 같다. 나에 대한 추억이 있는 분들과 같이 가는 게 좋은 거 같다. 그러면서 더 알려지면 고마운 일이지만, 아무튼 국민가수에 대한 생각은 이 정도다. 또 예전에는 ‘설명이 필요 없는 가수’라고도 했는데 이제 설명이 많이 붙었으면 좋겠다. 하하”
Q. 가수로서, 또 제작자로서 가요계를 30년간 이끌어왔다. 30년 전과 지금의 음악계를 비교하면 달라진 점이 있나?
신승훈 “난 (가요계를)이끌지 않았다. 묻어왔다. 하하. 나의 데뷔시절은 90년 초반이다. 그때는 연예계라는 걸 통틀어서 가요계가 중심이었다. 모든 방송사의 프라임 시간대에 음악프로가 있었고 시청률도 엄청났다. 그래서 많은 이슈를 모았고, 가수의 앨범을 사서 서로 공유를 했다. 음원이 아니라. 앨범을 사기위해 노력하고, LP에 바늘을 올리고 하는 그런 수고에 대한 쾌감과 대가를 많이 느낀 시절이다. 아날로그지만 정감이 있었다”
“지금은 레코드점이 많이 없어졌다. 음원사이트가 생기면서 음원시장으로 바뀌게 됐다. ‘노래를 듣자’가 아니라 ‘노래나 듣자’가 되어 버린 거 같다. 예전에는 오직 음악을 들으러 찻집을 찾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음악이)바쁜 일상 속에 BGM이 되어 버린 거 같다. 나는 사실 음악 때문에 인생이 바뀐 사람이다. 난 경영학과를 나왔는데 음악을 한다. 이제는 음악이 인생을 바꾸기보다 한 사람의 위안이 되는 것 같다. 씁쓸하진 않다. 그게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감성이 사라진 건 아쉽긴 하지만 대신에 전문성이 깊어졌다. 예전에 가수들이 모든 장르를 다 건드렸다. 나도 하우스, R&B 등등 이것저것 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예를 들어, 아이돌 음악은 확실히 아이돌 음악이있다. (아이돌이 아닌)다른 가수들이 하면 어색하다. 확실하게 자기의 장르를 발전시킨 거 같다. 나도 마찬가지로 발라드 안에서 락풍, 재즈풍으로 발전시키는 거 같다”
“예전에는 전주만 들어도 ‘팝송같다’라고 했는데, 지금은 어떤 게 팝이고 가요인지 구분이 안된다. 그만큼 음악적 역량과 전문성이 높아졌다. 예전엔 ‘음악시장’이었는데 지금은 ‘음악산업’이다. 예전엔 시장이고 주먹구구가 통했다. 지금은 체계적이다. 많이 전문적이 됐다. K팝의 위상이 높아진 것도 사실인 거 같다. 아날로그 감성은 없어도 디지털 안에서 이런 게 충실하게 됐다. 그 와중에 뉴트로가 유행하면서 다시 살짝 아날로그가 살아난 거 같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섞인 시대가 됐다. 재밌는 거 같다”
[인터뷰②]에 계속
최현정 기자 gagnrad@happyris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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