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카드'는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 비장의 무기입니다. 게임에서 상대가 예측하지 못하도록 숨겨두었다가 적절한 순간 상대를 무너뜨리는 방법이지요. 여기 진정한 히든카드가 있습니다. 천재적인 두뇌로 아이비리그에서도 우수학생으로 손꼽히는 리치(저스틴 팀버레이크 분). 그러나 리치의 몰락은 한순간이었습니다. 엄청난 학비를 감당하기 위해 시작했던 인터넷 도박은 결국 그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됩니다. 인생은 올인이라며 호기롭게 전재산을 판돈으로 걸었지만 끝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가진 돈을 다 털리고 말았습니다.

 

 

상심에 빠져있는 그는 일명 '미드나잇 블랙'이라고 불리는 인터넷 도박 사이트에 자신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어떤 법칙과 음모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무작정 코스타리카로 향합니다. '미드나잇 블랙'의 수장이자 온라인 겜블계의 거물 아이반(벤 에플렉 분)을 만나기 위해서였죠. 리치의 천재적인 두뇌가 마음에 든 아이반은 엄청난 액수의 돈을 제안하며 그를 겜블의 세계로 유혹합니다.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제안을 수락한 리치는 아이반의 충실한 '개'가 되어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시작합니다. 아이반을 잡으려 혈안이 되어있는 FBI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주연을 맡은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이 영화에서 겁 없고 도전 정신 넘치는 리치를 맡아 열연합니다. 부자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으로 무모한 짓도 서슴지 않는 청춘의 모습을 그는 잘 소화합니다. 이 영화에서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세계적인 가수로서 무대 위에서 보여주던 섹시한 모습은 잠시 접어둡니다. 섹시는 커녕 찌질하다고 느껴지는 정도이지요. 특히 누가 봐도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아이반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기고 그의 충실한 심복이 되는 장면들은 프리스턴의 수재가 맞나 싶을 정도로 멍청해보입니다. 그나마 가장 섹시했던 장면은 보스의 여자인 레베카(젬마 아턴튼 분)을 유혹할 때 입니다.

 

그런가하면 아이반은 하룻밤 사이 수억달러가 오가는 인터넷 도박의 요새 코스타리카를 쥐고 흔드는 억만장자입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는 살인도 서슴지 않는 잔인함을 지녔습니다. 일개 대학원생 주제(?)에 자신을 찾아온 리치의 두둑한 배짱에 반해 수하로 두고 부려먹기 시작합니다. 차기 배트맨으로 캐스팅된 벤 에플렉은 이번 영화에서는 정의를 무너뜨리려는 인터넷 도박계의 검은손으로 분했습니다. 데뷔 이래 처음으로 악역에 도전한 그는 그동안의 젠틀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에서 벗고 돈을 우선시하는 이기적인 보스를 연기했습니다.

 

 

지금까지 카지노와 도박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은 많았습니다. [오션스]시리즈나 [21]과 같은 작품들이 바로 그것이지요. 그러나 대다수의 영화는 범인들이나 천재들이 카지노를 터는 장르의 '케이퍼 무비'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히든카드]가 가지는 의미는 꽤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도박을 주제로 하였지만 끝내는 정의를 찾으려 한다는 점은 여타 영화와는 확실히 다릅니다.

 

 

안타까운 점은 딱 여기까지라는 점입니다. 시도는 좋았는데 크게 기억에 남는 장면도, 매력적이라는 느낌도 없었습니다. 전개는 지루했고 스토리는 예측 가능했습니다. 리치와 아이반, 두 인물을 부각시킨 영화인 만큼 캐릭터의 힘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습니다만 두 사람 모두 반할만큼 매력적이지는 않습니다. 브래드 퍼맨 감독의 전작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가 빠른 전개와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관객들의 허를 찔렀기에 이번 행보는 더욱 아쉬웠습니다. 이준익 감독의 [소원] 안권태 감독, 유아인 주연의 [깡철이] 한재림 감독, 송강호, 백윤식, 이정재 주연의 [관상] 등 쟁쟁한 한국영화들이 버티고 있는 가을 극장가에서 [히든카드]가 정말 숨겨둔 한 방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