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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철이] 리뷰: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위하여

13.09.26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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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철이]
감독: 안권태
출연: 유아인, 김해숙, 김정태 외
개봉: 2013년 10월 2일

"아가, 나 배고프다. 밥 좀 다오." 열일곱 여고생은 치매에 걸린 늙은 아버지가 너무나 싫었습니다. 쓰러진 아버지 대신 엄마는 생계에 뛰어들었고 예순이 넘은 아버지의 병간호는 온전히 소녀에게 맡겨졌습니다. 유독 날씨가 좋았던 그 날, 친구들은 소녀만 빼놓고 시내에 놀러 나갔습니다. 화가 난 소녀는 설거지도 하지 않은 그릇에 죽을 대강 퍼 나르며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아버지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이제 중년이 된 그 여인은 철없는 시절, 자신이 품었던 못된 생각에 통한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스물세 살 되던 해, 결국 눈을 감으셨습니다. 나이 쉰에 낳은 딸을 유난히 예뻐하시던 아버지는 이제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짝사랑'의 대상일 뿐입니다. 마치 [깡철이] 속의 강철(유아인 분)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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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단 둘, 부산의 부두 하역장에서 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강철에게 가족이라고는 엄마 '순이 씨' 한 명 뿐입니다. 치매로 천진난만해진 엄마의 별명은 자칭 '김태희', 타칭 '헬렌 켈러'. 전자는 순이 씨만 인정하는 별명이고 후자는 온몸 중 성한 곳이 없어서 붙여진 별명입니다. 성치 않은 몸으로 동네방네 사고를 치고 다니는 엄마를 수습하는 것은 온전히 아들의 몫. 엄마를 간호하느라 정작 20대의 강철은 온전한 직장은커녕 빚더미에 올라 앉아있습니다. 그럼에도 묵묵하게 엄마를 책임지던 강철이 병원에서 탈출하여 길을 잃어버린 엄마를 찾고 오열합니다. "제발 나도 좀 살자"고.
 
엄마 순이 씨와 행복하게 사는 것이 유일한 소원인 강철에게 세상은 깡패와 같은 존재입니다. 무엇하나 쉽게 허락하지 않더니 마침내는 강철의 삶의 목적이던 엄마까지 앗아가려고 합니다. 강철에게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는 엄마와 아끼는 친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경멸해 마지않던 뒷골목의 세계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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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깡철이]는 충무로 대세 유아인과 국민 엄마 김해숙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개봉 전부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아저씨]의 소름 돋는 악역, 김성오와 [응답하라 1997]로 떠오른 샛별, 이시언의 합류는 [친구], [범죄와의 전쟁]을 잇는 진짜 '남자'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연출을 맡은 안권태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깡패들의 이야기' 보다는 가족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공개된 지금, [깡철이]는 액션 영화와 휴먼 드라마 사이에서 그 길을 잃은 듯한 느낌입니다.
 
안 감독은 '깡패'를 미화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지만, 검정 정장을 차려입고 스크린을 휘젓는 깡패들과 야쿠자들은 이 영화의 장르를 의심하게 합니다. 여기에 의좋은 형제(?)의 정석을 보여주는 상곤(김정태 분)과 휘곤(김성오 분)의 모습은 '굳이 저럴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무한 긍정 주의'였던 바른 생활 강철이 상곤을 만나고 뒷골목에 자진해서 들어가게 되는 설정 역시 무리라고 느껴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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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으로 주연배우 유아인의 과한 연기는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입니다. [깡철이]에는 분명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할만한 장면들이 존재합니다. 어머니를 향한 아들의 사랑과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아들에게 미안해 어쩔 줄 모르는 어머니의 모습은 모자(母子)의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슬픔을 느끼기도 전에 스크린 속의 배우가 오열 하니 관객의 입장에서는 온전히 배우의 감정선을 따라가기 힘듭니다. 수지(정유미 분)와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에서 여행차 부산에 내려온 수지는 강철의 웃음을 이끌어내는 특별한 친구입니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씩씩한(?) 수지와 '이게 바로 부산 사나이'를 외치는 것 같이 힘이 들어간 강철은 살짝 오글거리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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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살리는 것은 누가 뭐래도 '국민 엄마' 김해숙의 연기가 아닐까 합니다.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때로는 집안을 이끌어가는 종부로, 또 때로는 쿨하면서도 속정 깊은 엄마로 등장했던 그녀는 이번 영화에서 천진난만한 바보 엄마를 연기합니다. "남들이 그랍디다. 볼수록 귀엽다고", "내는 김태희"를 외치는 '순이 씨'는 미워할래야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치매에 걸려 대부분의 기억을 잃었지만, 성치 않은 몸으로 강철의 소풍 도시락이라며 김밥을 싸고 유치원 가방을 들려주는 장면은 이 영화 최고의 명장면입니다.
 
[깡철이]는 분명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영화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가슴 한편이 따뜻해 옴을 느끼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하는 부모님을 미워해 보았고, 답도 없는 청춘의 고민 앞에 좌절해 보았으며, 끝도 없이 휘몰아치는 역경에 무너져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오늘을 웃으며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영화 속 '순이'의 대사처럼, 인생에서 한 두 번은 올 최고의 전성기를 위해서.
 
 
비주얼:★★★
연기(목소리):★★★
스토리:★★★
연출력:★★★
 
총점:★★★
관객취향: 올 가을, 따뜻한 감성이 필요한 당신이라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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