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배우다] 리뷰: '배우 탄생'으로 본 인생의 쓴 맛
13.10.21 11:24
[배우는 배우다]
감독: 신연식
각본, 제작: 김기덕
출연: 이준, 서영희, 강신효 외
어렵습니다. 개인적인 느낌일지, 아니면 다른 분들도 같은 마음이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저의 감정은 '어렵다' 였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 깊이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여운이 남았다는 것입니다. 글쎄요, 묵직하게 남은 감정은 단역 배우에서 톱스타로, 마침내는 날개 없는 새처럼 추락해 버린 한 남자에 대한 연민일 수도 있고, 원하던 것을 손에 넣은 순간 무엇이 정말 소중한지 잊어버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일 수도 있겠지요.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영화인지 구분 짓지 않는 영화의 구성방식은 이러한 감정을 더욱 배가되어 느끼게 합니다.
알아주는 사람은 없어도 마음껏 꿈꿀 수 있었던 단역부터, 주연배우 못지않은 연기력으로 단숨에 비중 있는 조연이 된 신인, 마침내 단 한편의 영화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최정상에 올라선 주연까지. 배우 오영(이준 분)의 삶은 탄탄대로였습니다.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고 했던가요. 최고의 스타가 되는 대신 그는 소중한 친구를 잃었고, 자신을 성공한 배우 반열에 올려준 매니저를 잃었으며 단역 시절의 초심마저 잃고 맙니다. 매일 술을 마시고, 여자들과 의미 없는 하룻밤을 보내던 오영. 그는 단역 시절 자신을 철저히 무시했던 여배우와의 격렬한 정사 후 차갑게 말합니다. "여배우, 별거 없네"
[배우는 배우다]는 제목 그대로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진짜 배우가 되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단역 시절, 소극장에서 공연하던 오영은 상대방의 대사를 듣지 않고 자신의 연기를 보이는 데만 급급합니다. 한편 스타가 된 후에는 연기뿐만 아니라 영화 전체를 좌지우지하려 듭니다. 마치 감독이라도 된 양 '컷'을 외치고 디렉팅 역시 자신의 입맛에 맞게 바꾸어버립니다. 마침내 바닥으로 추락해 버린 이후 오영은 비로소 연기란 서로 호흡하며 함께 해 나가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이는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대비를 통해 표현됩니다. 영화 초반, 감정 과잉으로 상대 여배우의 목까지 졸랐던 오영은 일련의 사건들 후 같은 연기를 길거리에서도, 마네킹과도 함께 연기할 수 있는 진짜 배우로 거듭납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의 추락은 아이러니하게도 오만했던 오영을 담금질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혹독한 트레이닝이 됩니다.
화려한 연예계의 뒷이야기를 담고 있는 만큼 같은 날 개봉하는 [톱스타]와의 비교는 불가피해 보입니다. 물론 두 영화 사이에는 유사한 점들이 많습니다. 대중에 공개되지 않는 스타의 뒷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 점, 단역이나 배우 지망생이었던 주인공이 톱스타를 꿈꾸고 결국 그렇게 된다는 점, 마침내는 다시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점 등은 같은 영화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닮아있습니다. 그러나 [톱스타]가 매니저, 제작자, 소속사 대표 등 연예계 전반에 걸쳐서 관심을 두고 있는 반면 [배우는 배우다]는 온전히 배우 '오영'에게만 포커스를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관객의 입장에서는 '오영'이라는 인물에 좀 더 감정 이입하여 영화를 보게 됩니다.
한편 영화는 전작 [영화는 영화다]와 같이 관객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습니다. 가장 화려하지만, 또한 가장 외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오영에게는 그를 따뜻하게 품어줄 가족 하나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그에게 연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소극장에서 함께 연기했던 연희(서영희 분). 하지만 이마저도 크게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영화에는 또한 눈에 띄는 악역이나 선인 역시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자간담회에서 연출을 맡은 신연식 감독은 이 세상에 절대적인 선인과 악인은 존재하지 않기에 눈에 띄게 치우치는 캐릭터는 없다고 답했습니다. 감독의 설명처럼 영화는 묵묵하게 오영에게 포커스를 맞출 뿐,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들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배우는 배우다]의 가장 큰 수확은 배우로 돌아온 이준입니다. 단언컨대 이준은 "아이돌 출신이 뭐 얼마나 연기하겠어?" 하는 우려 섞인 시선을 단번에 없앨 만큼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입니다. 서브 주인공이나 조연들의 서포트 없이 홀로 영화를 이끌어 가는 역할이기에 더욱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뛰어난 연기력이 요구되었던 상황. 이준은 기대 이상을 해내며 아이돌 출신 연기자의 대표주자로 자리 잡았다는 평입니다. 광기에 휩싸인 신인 배우부터 톱스타가 된 이후 공허하게 흔들리는 모습 어디에도 아이돌 그룹 엠블랙의 이준은 없습니다. 여기에 농도 짙은 배드씬은 신인 배우의 그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습니다. 기자간담회 현장에서 이준은 "부끄러움이 많아 배드신 촬영하는데 애먹었다" 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물은 그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배우는 배우다]는 분명히 관객들에게 친절한 영화는 아닙니다. 오연희를 비롯한 주변 인물에 대한 설명은 과도하게 축약되어 있어 장면 사이의 개연성을 알아채기 힘듭니다. 게다가 첫 장면과 끝 장면의 대비는 가장 중요한 장면임에도 불구, 신연식 감독의 설명이 아니었다면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배우는 배우다]가 참 가슴 속에 많이 남는 것은, 우리 모두 한 번쯤은 목표를 향해 전력질주 해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손에 잡히는 순간, 뜨거운 열정을 잃고 나태해졌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영화 [배우는 배우다]는 진짜 배우의 탄생 과정을 통해 매너리즘에 빠진 우리 모두를 비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영화 [배우는 배우다]는 오는 24일 관객들을 찾아올 예정입니다.
P.S. 영화 속에서 오영이 촬영하는 영화의 제목은 [뫼비우스]입니다. 김기덕 감독의 최신작이 [뫼비우스] 였다는 것을 생각 해 보면 참 재미있는 장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색채는 비단 영화 스토리 뿐만 아니라 작은 소품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단평
배우는 배우다! '이준'은 진짜 배우가 되었다.
비주얼:★★★
연기: ★★★☆
스토리:★★★
연출력:★★★
총점:★★★
(But TV,VOD 평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