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파이브]리뷰: 너무 아픈 삶은, 사는게 아니었음을
13.11.06 11:47
[더 파이브]
감독: 정연식
주연: 김선아, 온주완, 마동석 외
개봉: 2013년 11월 14일 (청소년 관람 불가)
프레젠트(Present), 이 단어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선물', 그리고 '현재'가 바로 그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현재'는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고.
그런데 여기, '현재'가 지옥보다 끔찍한 여자가 한 명 있습니다. 그녀에게 현실은 죽지 못해 사는 시간입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숨을 쉬는 매 순간이 폐부를 갈기갈기 찢는 듯한 고통일 뿐이지요. 물론 그녀에게도 삶이 선물이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와 누구보다 듬직했던 남편, 소박하지만 인정받았던 꿈까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녀는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끔찍한 살인마는 순식간에 한 가정의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갔습니다.
눈앞에서 남편과 딸아이를 잃은 그녀는 이제 더는 잃을 것도, 두려울 것도 없습니다. 지독하게도 질긴 생명줄을 끊어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아직 가족의 복수를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살인마에게 하반신을 빼앗긴 그녀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한 복수 계획을 세웁니다. 다섯이 있어야 완성되는 복수는 그렇게 그녀 인생의 마지막 목표가 되었습니다. 살인마를 죽일 수만 있다면 심장이라도 뜯어주겠다는 여자, 은아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더 파이브]는 살인마에게 모든 것을 잃은 은아가 다섯이 있어야 완성되는 복수를 설계, 살인마를 추적한다는 내용입니다. 지금까지의 국내 스릴러 영화가 범인을 추격하는데 무게를 두었다면 이 영화는 송두리째 무너진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조금 더 포커스를 맞춥니다. 언뜻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것 같은 다섯 명의 복수 가담자들은 그러나, 가족에 대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닮아있습니다. 살인마에게 가족을 잃은 '복수 설계자' 은아부터 심장병 딸을 두고 있는 외과 의사 철민, 신장 이식이 시급한 엄마를 살리고 싶은 딸 정하, 밤마다 배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 하는 아내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전직 조폭 대호, 남한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한쪽 각막이 간절한 탈북자 남철까지. 방법은 각기 달랐지만 내 가족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다는 그 마음과 절박함 만큼은 같습니다.
이들에게 가족이 가장 소중한 존재라면 복수 대상인 재욱은 그 반대입니다. 재욱의 곁에는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사람'이 없습니다. 넓고 화려한 집을 채운 것은 사람의 온기 대신 기묘한 구체 관절 인형들과 온갖 작업 도구들뿐입니다. 대외적으로 잘 나가는 인형 작가인 재욱은 언론과 대중이 인정하는 잘생기고 실력 좋은 예술가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사람을 죽여놓고도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 되었다"라고 생각하는 사이코패스적 면모가 숨겨져 있습니다. "고개 돌리지 마" 소년의 그것을 닮은 따스한 눈은 웃고 있지만, 그의 손은 아래에 깔린 여자의 목을 조르고 있습니다. 마지막 숨을 들이쉬는 여자의 몸에 톱을 갖다 대면서 그는 말합니다. '내가 쓰레기를 재탄생 시킨 것이다' 라고.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라는 소재는 이미 [추격자]나 [악마를 보았다]에서 보았던 설정입니다. 자칫 진부한 소재가 될 뻔한 이 설정을 십분 살려내는 것은 바로 배우 온주완의 연기력입니다. 지금까지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로 부드러운 재벌 2세를 연기했던 그는 이번 영화에서 예술적 심미안이 뛰어난 사이코패스, 재욱을 맡아 열연했습니다. 영화 초반, 의도적으로 그의 얼굴을 비춰주지 않던 카메라가 붉은 피로 얼룩지고 무너진 은아의 가족 위로 온전한 얼굴을 보여주는 순간, 배우 온주완은 없습니다. 다만 광기에 사로잡힌 사이코패스, 재욱만이 있을 뿐입니다. 처음부터 살인범이 누구인지, 살인의 목적이 무엇인지 패를 공개하여 자칫 긴장감을 놓칠 수도 있었던 이 영화의 강렬함을 유지해주는 것 역시 온주완입니다.
그런가 하면 연기파 배우 김선아는 말할 것도 없고 마동석, 정인기, 신정근, 이청아 역시 자신이 맡은 역할의 120% 이상을 해냅니다. 그러나 방대한 웹툰의 내용을 2시간여의 영화로 축소하다 보니 각 캐릭터의 비중이나 어울림에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같은 목적으로 팀을 이루어 복수한다'는 설정이 영화의 베이스임에도 불구하고 '팀플레이'는 크게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오히려 '은아(김선아 분)과 재욱(온주완 분)의 대결에 다른 캐릭터들이 힘을 싣어준다' 고 하는 편이 더 설득력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 음악 사용도 조금은 아쉽습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BGM은 굳이 왜 이 음악을 넣었을까 하는 의문점만 남길 뿐입니다. 의외의 수확은 자원봉사자 '혜진'(박효주 분)이었습니다. 큰 비중은 아니지만, 진심으로 은아의 사연에 마음 아파하고 깊이 공감하는 혜진은 어둠이 내려앉은 은아의 삶을 비추는 유일한 빛입니다. 이쯤 되면 '삼재'라고 해도 좋을 두 여자, 은아와 혜진의 만남은 관객들을 빵 터뜨리다가도 어느 순간 함께 눈물짓게 합니다.
[더 파이브]는 개봉 전부터 원작 웹툰을 집필한 만화가가 직접 메가폰을 잡아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연출을 맡은 정연식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관객들이 영화에서 보여는 화면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기 바랐다"라고 밝혔습니다. 그의 말처럼 이 영화는 사건의 잔혹함보다 한 여자의 망가져 버린 삶에 대한 참혹함과 아픔의 관점에서 본다면 더 많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눈을 감으나 뜨나 복수만 생각했던 은아는 불구덩이를 향해 뛰어드는 한 마리 부나방과 같은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화 내내 어둡고 무표정했던 그녀는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복수를 계획하며 감정을 보이고, 다시금 사람과의 관계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참 지옥 같았던 삶은, 마지막에 그녀에게 present(선물)을 주려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단평
명불허전 김선아와 기대 이상의 온주완, 탄탄한 스토리가 만들어낸 제대로 된 스릴러!
비주얼:★★★
연기: ★★★☆
스토리:★★★
연출력:★★
총점:★★★
(But TV,VOD 평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