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리부트' 되어야 할 영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13.11.08 17:35
감독: 유상욱
출연: 김태우, 신은경, 이민우, 신성호
출연: 김태우, 신은경, 이민우, 신성호
줄거리
이상에 관한 졸업논문을 준비하고 있던 용민(김태우)는 우연히 PC통신에서 'MAD 이상 동호회'를 발견하고 모임에 나간다.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능가하기 위해 이상이 필요하다는 카피 캣(박정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이상의 자화상이 필요한 캔버스(권병준), 이상과 포스트 모더니즘 시인에 관한 비교기사를 써야하는 태경(신은경), 그리고 자신의 계보를 찾기 위해 이상이 필요하다는 모임의 회장 덕희(이민우)등을 만난 용민은 그 자리에서 이상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듣는다. 1931년에 김해경이라는 이름으로 건축기사를 하던 이상이 사라져 33년에 '건축무한 육면각체의 비밀’이라는 시와 함께 돌아온 것이다. 멤버들은 사라진 2년에 대한 가상 소설을 릴레이로 연재하기 시작하고 그들의 소설이 시작됨과 함께 하나씩 죽음을 당한다. 카피 캣, 캔버스에 이어, 마지막으로 덕희는 안기부를 해킹하고 사건의 실마리를 남긴채 사라진다.
이상에 관한 졸업논문을 준비하고 있던 용민(김태우)는 우연히 PC통신에서 'MAD 이상 동호회'를 발견하고 모임에 나간다.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능가하기 위해 이상이 필요하다는 카피 캣(박정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이상의 자화상이 필요한 캔버스(권병준), 이상과 포스트 모더니즘 시인에 관한 비교기사를 써야하는 태경(신은경), 그리고 자신의 계보를 찾기 위해 이상이 필요하다는 모임의 회장 덕희(이민우)등을 만난 용민은 그 자리에서 이상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듣는다. 1931년에 김해경이라는 이름으로 건축기사를 하던 이상이 사라져 33년에 '건축무한 육면각체의 비밀’이라는 시와 함께 돌아온 것이다. 멤버들은 사라진 2년에 대한 가상 소설을 릴레이로 연재하기 시작하고 그들의 소설이 시작됨과 함께 하나씩 죽음을 당한다. 카피 캣, 캔버스에 이어, 마지막으로 덕희는 안기부를 해킹하고 사건의 실마리를 남긴채 사라진다.
건축무한육면각체
지은이: 이상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
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
비누가통과하는혈관의비눗내를투시하는사람
지구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의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
거세된양말(그여인의이름은워어즈였다)
빈혈면포,당신의얼굴빛깔도참새다리같습네다
평행사변형대각선방향을추진하는막대한중량
마르세이유의봄을해람한코티의향수의맞이한동양의가을
쾌청의공중에붕유하는Z백호.회충양약이라고씌어져있다
옥상정원.원후를흉내내이고있는마드모아젤
만곡된직선을직선으로질주하는낙체공식
시계문자반에?에내리워진일개의침수된황혼
도어-의내부의도어-의내부의조롱의내부의카나리아의내부의감살문호의내부의인사
식당의문깐에방금도달한자웅과같은붕우가헤어진다
파랑잉크가엎질러진각설탕이삼륜차에적하(積荷)된다
명함을짓밟는군용장화.가구를질구하는조화분연
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가고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간사람은
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사람
저여자의하반은저남자의상반에흡사하다(나는애련한후에애련하는나)
사각이난케이스가걷기시작이다(소름이끼치는일이다)
라지에터의근방에서승천하는굳바이
바깥은우중.발광어류의군집이동
위의 시를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은 '난해''기괴'하다 였다. 애초에 난해하기로 소문난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의 작품들 이지만 '건축무한육면각체'만큼 해석 불가에 각기 다른 다양한 정의가 담겨진 작품은 보기 드물었기 때문이다. 후대의 사람들은 시인 '이상'을 천재라 드높였지만 실질적으로 그에게 헌사의 의미를 보내거나 작품 정신을 계승하려는 문화계의 움직임은 드물었다. 그만큼 그의 작품성을 이해하고 계승한다는 것은 난해함 그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는 그 스스로도 말했듯이 후대에게도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시인 이상의 젊은 시절 사진
하지만 1998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서태지가 'TAKE'앨범으로 컴백을 준비하면서 공식홈페이지에 이상의 시 '오감도'를 개재하면서 '이상'에 대한 관심이 대중문화 전반으로 높아지기 시작했고 그의 세계관을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후 이상의 문제적 시 를 제목으로 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이란 영화가 등장했다.
*한국문화사에 다시 보기 힘든 파격 소재
1996년 영화진흥위원회가 주최한 시나리오 공모전의 수상작을 발표하는 날, 영화관계자들과 기자들은 대상이 확정된 작품의 제목에 의아해했다. 대부분 단문/단어형의 단순한 제목이 영화의 제목인것과 다르게 당선작의 제목은 섬뜩함과 이상한 단어조합이 의심될 정도였다.나중에야 이상 시인의 시제목을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 혹여나 이상의 일화를 그린 작품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확인해본 작품은 그 당시 한국영화의 기준에서는 감히 상상도 하기 어려운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오죽했으면 96년 당시 당장에 영화로 제작할수 없었던 환경이었기에 공모전 당선 1년후 소설로 먼저 출간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문제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았다.
일제 강점기 시대. 이상(본명:김해경)은 시인이기 이전에 저명한 건축가 이기도 했다. 어느날 그는 일제의 부탁으로 공사중인 지하 건축물의 내부설계에 참여하게 되는데… 90년대 서울, 대학생인 두 명의 청년 건우와 덕희는 그 당시 유행하는 PC 통신을 통해 'MAD 이상 동호회'를 결성하고 이상의 시와 과련한 재미있는 음모물 형태의 소설을 연재하게된다. 이들은 이 소설로 PC 통신 내에서 큰 인기와 명성을 얻게된다. 그러던 어느날, 이메일로 소설의 팬이라고 전한 한 제보자가 안기부(현재 '국가정보원')사이트를 해킹하는 방법을 알려주며 흥미있는 정보가 있을 것이라는 제보를 받게된다. 건우와 덕희는 제보자가 시킨대로 안기부에 접속하게 되고 박정희 시절, 대통령의 명령으로 안기부에서 비밀리에 만들어진 조직과 10여명 내의 비밀요원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얻게된다. 이들은 이 정보를 토대로 새로운 픽션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다음날 건우는 신문을 통해 한 남성이 살해 되었다는 기사를 읽게 되는데, 살해된 남성은 바로 자신들이 확인했던 안기부의 비밀요원중 한명이다. 서서히 죽음의 그림자가 문제의 전직 안기부 요원들의 목숨과 동시에 건우와 덕희의 목숨까지 위협하게 되고 두 청년은 살기위해 이와 관련된 진실을 파헤치다가 시인 이상이 남긴 '건축무한육면각체' 라는 시에 엄청난 음모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현재 서점에 출간된 2007년 개정판은 줄거리와 인물 이름, 설정의 일부가 바뀌었다.)
내용만 본다면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가 연상될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다빈치 코드] 보다도 상당히 앞선 시대에 나온 대한민국만의 '팩션'(팩트+픽션) 작품이었다. 일제 강점기를 비롯해 어두운 유신시절, 90년대 현대사 까지…한편의 시를 통해 창조된 방대한 스토리는 그야말로 흥미진진했다.
*원작의 특징
[건축무한육면각체]는 소재만큼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설정면에서도 여러 매력적인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이 소설을 단순한 장르 소설로 국한 하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여러모로 눈여겨 봐야할 부분들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소재이기도 한 '음모물'이 완성되는 장소는 하이텔,천리안,나우누리 같은 PC 통신 서비스였다. '모뎀'을 전화선에 연결해 접속하던 방식으로 지금의 무선랜&초고속 인터넷 방식보다 현저하게 떨어지는 속도였기에 그 당시 웹이 구현할수 있었던 방식에는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유저들은 이미지와 영상을 구현하는 방식 보다는 게시판, 채팅과 같은 '텍스트' 형태의 서비스가 주를 이루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 거리를 만들면서 연재 소설과 자신들이 들었던 여러 이야기를 기재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탕이 되어서 '루머'와 같은 '소문' 형태의 다양한 글들이 파생되기도 하였다. 일상생활에서나 현실이 되는 '소문'이 'PC 통신' 이라는 불특정 다수에 의해서 전파되는 방식은 특별했다. 그래서 원작의 주인공들이 장난삼아 완성한 글들이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그로인해 거대한 음모가 현실이었음을 알게되는 방식은 이러한 'PC 통신'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잘 표현한 부분이었다. 원작은 바로 이러한 'PC 통신 세계의 현실화'를 기반으로 둔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음모의 소재는 어디에서 왔을까?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 역사의 어두웠던 일제 강점기와 70년대 유신 시절을 배경으로 두고있다. 모든것이 통제되고 국민이 억압당했던 시기로 위정자들은 이를위해 온갖 무시무시한 계획과 음모가 자행되던 시기였다. 이 때문에 시인 '이상'이 일제에 의해 문제의 건축물을 계획하게 되었고 핵 미사일 개발을 원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안기부의 비밀 조직을 만들게 된다는 설정은 자연스럽게 녹아들수 있었다. 여기에 [인다아나 존스]를 보는듯한 모험적인 요소와 함께 90년대를 향유했던 록음악과 왕가위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원작을 흥미롭고 서정적인 요소로 그려낸다. 이처럼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를 갖추고 있는 [건축무한육면각체]는 여기에 궁극적인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있다. 주인공을 비롯해 여러 등장인물들은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라는 대사를 읆조린다. 한 예로 고등학교 은사가 수업도중 "세상을 변화 시키는 힘은 발명가의 발명품도 아니고 위정자들의 정치도 아닌 현재 밖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는 저 노인 이다"라는 부분처럼 보이지 않는것들의 중요성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변화를 이야기하고있다. 즉, 주인공들이 진실을 밝히려는 행위가 왜 중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다. 어둡고 암울한 역사의 시기에 가려졌지만 그것이 세상을 바꿀수 있는 거대한 힘이라면 그것을 얻기위해 진실은 밝혀져야만 한다. '음모'와 같은 어두웠던 역사를 극복하고 얻게되는 새로운 희망이 이 작품이 말하려던 메시지였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의 소설 버전은 장르 소설을 좋아하던 그 시대의 매니아들의 입소문을 타며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초기[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작품은 다시 1년후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이라는 이름의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되었고, 2007년에 현대적 감각에 맞는 스토리로 다시 각색되어 장르 소설팬들 사이에서는 전설적인 작품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원작의 각주인공인 장용민은 현재 소설가로 활동하며 [운명계산시계] [신의달력] [궁극의 아이]와 같은 파격적이면서도 획기적인 작품들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보기드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타고난 스토리텔러중 한 사람이다.
*안타까운 영화 버전의 실패
이처럼 탄탄한 기반을 가진 원작을 토대로 만들어진 각본이었기에 영화화 과정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쉬리] 이후로 영화계가 다양화된 장르에 진출할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된 1999년,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이라는 동명의 제목으로 영화는 공개되었다. [피아노 맨]의 유상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당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카이스트]로 청춘스타의 반열에 오른 이민우, 김태우, 신은경이 비밀을 밝혀낼 남녀들로 분했고 제작비는 당시로서는 블록버스터 규모였던 5,60억 가량이 투입되었다. 이처럼 영화의 주인공들을 연기할 연기자들은 그럴듯 했지만 중요한 것은 과연, 원작이 가져다준 흥미진진한 전개와 음모론을 각본과 CG가 잘 받들어 줄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이 부분이 완성된 영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을 망하게한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영화가 완성되면서 CG에 관한 질문에 "[쥬라기 공원2:잃어버린 세계}에 등장하는 소형 공룡에 미치지 못하는 예산이었다"라고 고백했을 정도로 그 당시 한국영화에서 사용할수 있는 최대 범위의 CG를 사용했지만, 원작에서 묘사된 스케일을 재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무리 각본이 탄탄하고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한다 했들, 실사와 CG 배경이 제대로 합성되지 못한 조악한 특수효과를 눈뜨고 봐주기란 쉽게 용납할수 없는 부분이었고 이로인해 영화의 모든 과정이 한순간에 엉망이 되어버렸다. 비단 이것은 CG에만 국한된것이 아니었다. 모든것이 한정적인 제작비로 인해 한계를 느끼게 되면서 자연히 원작에 의해 재연되어야 할 일부 묘사 장면이 각본에서 사라지거나 다른 장면으로 대치되었고, 그로인해 스릴감이 넘쳐야할 전개와 미스터리적 요소가 두서없이 이리저리 뒤죽박죽 되었고, 기승전결의 묘미마저 사라진 망작이 되고 말았다.
영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은 참담한 실패였다. 그보다는 한국에도 [인디아나 존슨] 못지않은 역사적인 '팩션 어드벤처'와 미스터리 스릴러의 탄생을 기대해온 원작 소설의 팬들과 영화인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는 점에서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다시 리부트가 필요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영화 개봉이후 8년. 원작 소설은 2007년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주인공들의 이름, 설정,시대적 배경과 디테일은 모두 바뀌었지만 줄거리와 역사적 배경은 변하지 않았다. 예전의 신선하고 파격적인 느낌은 사라졌지만 명불허전 이었던 미스터리는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그와 동시에 한국영화의 특수효과와 CG도 진일보했다. 수준급의 기술력을 자랑하며 헐리웃과 중국 블록버스터 영화의 CG 작업을 수주할 정도로 최고 수준의 비주얼을 구현할수 있게 되었다. 또한 다양한 소재의 영화들을 재미있게 연출할수 있는 젊고 패기넘티는 연출자와 스태프들도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생각해 본다면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이 이 시대에 등장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처럼 좋은 환경에 만들수 있는 파격 소재의 작품이라면 충분히 좋은 작품으로 탄생할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현재, 헐리웃은 과거의 소재가 좋은 작품들을 다시 리부트/리메이크 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그 시대에 빛바랜 작품이건 저주받은 걸작 취급을 받았던 작품이건 현대적인 해석이 가능하다면 언제든 재해석 할수있는게 '영화'가 가진 장점이다. 개정판을 통해 여전히 건재한 스토리 기반을 자랑한 만큼 현재 영화계의 유능한 감독과 제작사를 통해 멋지게 리부트 될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