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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테오앙겔로 풀로스를 '기억'하다

12.02.23 20:58


프란시스포드 코폴라의 '대부' '돈 꼬넬리오'(말론 브란도)
최후는 아름다웠다. 그 것은 어린 손자와 정원에서 행복하게 뛰어놀다 심장
박동이 멈추는 순간 이었다. 냉정하고 잔인한 마피아 인생을 산
인물 치고는 너무나도 행복하고 아름다운 최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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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혹시나 이 세상을 떠나면 저렇게 잠시나마 떠나는 순간을
생각 했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과 작별 하기 직전 행복한 결말을 바랄것이다.
인생 최고의 순간을 기억 하거나 또는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거나 하물며 어떤 이들은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이 작업을 하다가 떠나고 싶어" 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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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급작 스럽게 타개한 그리스 출신의 세계적 거장 '테오 앙겔로풀로스'는 마지막 후자의 순간을 최후로 선택했다.
자신이 그토록 열정과 애정을 불태웠던 영화 촬영장에서 말이다. (비록 불의의 교통사고 였지만..)
사실 그의 명성은 세계 3대 영화제와 회고전을 통해서만 알수 있을 정도로 국내에서 그와 그의 작품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70-80년대 유럽 예술 영화의 전성기 시절의 키에프슬롭스키와 타르코프스키와 같은 동유럽 거장들과 함께 명성이 자자하게 활동했다고
말하면 대충 어떤 스타일의 영화를 추구한 인물 인지 이해할 것이다. (이 부분은 영화를 전공한 분들이 더 자세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대중 영화
 관객의 시선에서 어려우면서도 지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평론가는 예술 작품이나 특정 분야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대중에게 이해를 시킴과 동시에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는 것이란 것을 얼핏 들은 바 있다.
나는 평론가 만큼의 재능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는 사람 으로서 이번 만큼은 감히 평론가가 가진 의무와 같은 가치있는 행동을 지향하려 한다.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은 나에게 있어 지금까지 본 작품들중 가장 큰 감동을 준 감독 이기에 부족한 실력 이지만 이렇게 라도 그에 대한 애우와 존경을 표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영화 감독 이었을까?

1.시대의 아픔
 
테오 앙겔로풀로스는 인류가 살아온 비극의 역사를 스크린에 담는것을 의무처럼 생각한 연출가였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빼놀수 없는 것은 시대와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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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필름을 찾으러 미국 으로 망명 하다가 고국 그리스로 돌아온 영화감독 (율리시즈의 시선) , 전쟁과 독재로 인해 고아가 되어 버린 아이들(영원과 하루),
한창 사냥을 즐기던 엘리트 들은 우연히 발견한 시체를 통해 내전의 역사와 관련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사냥꾼들). 고대의 영광과 근대의 좌절의 시대를 살아온
 그리스와 1차 세계 대전과 인종학살이 만행했던 발칸 반도의 우울한 역사가 바로 그 대표적인 비극의 시대면서 그의 영화의 배경이다.
 그러한 가슴 아픈 역사와 시대를 대면한 앙겔로폴스 감독의 작품은 대부분 우울하고 희망이 없는 듯한 정적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시간이 지나가며 모든것이 해결 될 거라 생각 하지만 그것이 남긴 상처는 치유 되지 않는다.
거리를 해매는 전쟁 고아들은 인신매매나 불법 입양에 팔리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사상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인 어린 소녀가 트럭에서
성폭행을 당해 치마에서 처녀막 피가 흐르는 상처처럼 영원할수 밖에 없으며 그 아픔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들이 감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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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중요한 순간에 감독은 언제나 매우 긴 '롱테이크'로 장면을 정면에서 잡으니 그것에 대해 관객이 느끼는 바는 각양각색이 된다. 누구에겐 불편함이요..
누구에게는 이루 말할수 없는 강렬함 이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작품 '희생'의 엔딩신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불태우며 신과 함께한
약속을 지키려는 주인공의 행동을 길게 바라보는 5-10분 정도의 긴 롱테이크 장면은 마치 그것을 바라본 우리가 신의 입장에서 그를 바라보는 것과 같이 앙겔로풀로스의
그러한 불편한 역사를 향한 롱테이크 화면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 역사에 대한 목격자이자 증인이 되기를 바라는 듯한 의도같다.
 
하지만 감독이 말하려는 것은 절망이 아니다. 그는 그런 모든 것을 사랑했고, 치유될 거란 긍정의 믿음 또한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현실적인 표현 이라기 보다는 비현실에 가까운 시공간을 초월한 장소를 나왔을 때나 가능했다.

2.비현실적인 판타지
 
그의 작품의 대부분이 우울한 작품이어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그것을 다루는 데 있어 비현실적인 다른 판타지와 같은 묘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영화는 측면에서 다가오는 기차가 역에서 등장하는 장면에서 부터 시작했다. 그때 부터 영화는 활동사진 이라 불리며 움직이는 장면을 주로 찍는 것을 의무로
보였지만, 앙겔로풀로스는 이러한 활동사진화 되어버린 일반 영화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영화가 비록 필름과 카메라 라는 활동을 담을수 있는 매개체 지만 그것을 이용해 더 풍부한 영상을 담을수 있다는 것을 그만의 연출 스타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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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들어, [안개속의 풍경] 이란 작품에서 갑자기 내린 눈 에 세상의 모든 어른들의 행동은 정지되고 가만히 눈오는 하늘을 경이롭다는 듯이 쳐다본다.
그로인해 경찰서에 잡힌 주인공 어린남매는 빠져나오게 된다. 즉 화면에서 움직이는 것은 눈과 어린 남매이며 모든것은 정지되어져 있다.
삭막한 세상에 아름다움을 선사함과 동시에 아이들을 탈출시켜 주듯이...
 

 
[울부짖는 초원]은 스크린이 사진화 된것 처럼 일상적인 인물과 배경이 어딘가 모르게 비현실적인 공간에 있는듯한 느낌을 주고있다. 인물들은 동일한 복장에 정지된
 듯 보이지만, 강, 바람, 안개 같은 자연 배경은 그대로 흘러가는 것이 자연의 움직임으로 인해 움직이는 '돗단배'와 같은 인간의 모습들을 상징하게 된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만큼은 슬픔이 아닌 신기하면서도 묘한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판타지'적인 영상을 보는듯한 새로운 기분이 느껴진다.
이러한 장면을 볼때마다 앙겔로풀로스의 영화는 어느 영화 보다도 혁신적 으로 보였고, 그림-사진 못지 않은 한편의 정지된 예술작품 이미지를 본 것 같은 기분좋은 향연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서 만큼의 의도된 상징이니 뭐니 그런것을 잊고 편하게 영상을 감상하는 것이 더 편하다.
 
그동안의 작가주의 성향의 감독들은 영화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해 실험적이 면서도 모호한 영상을 선사하기 마련 이다. 물론 그러한 실험정신이 나쁜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용기있는 시도가 항상 관객에게 지지를 얻어내는 것은 아니었고, 과도한 실험 열풍에 유럽 영화는 관객에게 잊혀졌다.
 
테오 앙겔로풀로스도 그렇게 관객에게 잊혀진 감독 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때로는 이렇게 나와같은 단 한명 또는 극소수의 관객이 이러한 의도치 않은 장면에 그의 가치를
발견 했다면, 그것은 마치 해변에서 진주를 발견 한듯한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혹시나 앙겔로풀로스의 영화를 보게 된다면 이러한 비현실스러운 영상의 향연을 느꼈으면 한다.

3.인간애(愛)를 말하다
 
아무리 자신만의 개성을 갖고있는 거장이라 한들 근본적인 철학이 부재한다면 잘만든 영화여도 오래 기억할 영화는 못 될 것이다. 그점에 있어 존경하는 감독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인간애' 라는 유형은 영화를 감상할때 찾아야할 요소일 것이다. 테오 앙겔로풀로스도 마찬가지다.
그의 영화가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를 유지하지만 그 원천에는 '사랑(愛)' 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특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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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에게 있어 그나마 대중으로 부터 많이 알려진 '안개속의 풍경', '영원과 하루', '비키퍼'의 인물 들은 서로가 판타지와 같은 우연에 의해서 알게 되지만
이들은 이 우연을 운명 처럼 받아들이며 아낌없이 서로를 도우려 한다. 꼬마 남매를 성심성의껏 돕던 젊은 운전기사와 老시인과 고아 소년의 우정과도 같은
모험과 과거 사랑하는 사람과의 교감이 그러 했으며 꿀벌 처럼 의무적으로 서로 돕듯이 우리 모두는 '사랑'이라는 기억과 그리움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우리 사람은 아무 이유없이 내부-외부적 아픔과 고통을 겪게 되지만 '사랑' 이란 치유제 또한 이유없이 다가오게 마련이다. 기독교적 용어로 '아가페' 적인
사랑이기도 한  이러한 '인간애'가 가득찬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 이었기에 알다가도 모르게 그의 영화에 정이 들었고 사랑할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4. 최고의 영화 [영원과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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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영화에 대해 이렇게 풀의는 했지만, 사실 그의 영화를 많이 보지는 못했다. 회고전을 통해서 본 몇몇의 작품이 다였지만, 그 중 하나의 작품은 내 인생에 있어 그동안 본 영화중
단연코 최고의 영화였었다. 전자 에서도 많이 언급한 [영원과 하루]가 그것이었다. 세계 최고의 영화를 뽑으라면 필자는 단연코 이 영화를 추천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전자서 언급한 모든 요소를 갖출뿐더러 영화라는 매개체를 비롯한 인간의 인생을 비롯한 세계의 모든것을 영상을 통해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담았다고 무방하다.
 
주인공인 유명 시인 알렉산더(브루노 간츠)는 서서히 자신히 죽어가는 것을 느끼자. 자신의 평생 숙원 이었던 19세기 시인 솔로모스의 흩어진 시어들을 찾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알바니아 난민 소년을 돕게 되고 함께 아름다운 시어를 발견하게 되면서 과거의 자신의 흔적을 발견함과 동시에 아내, 친구, 가족과의 행복했던 순간과 마주하고
그들을 외롭게 한 것에 대해 후회를 하면서 그 아름다웠던 기억과 작별을 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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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영화의 명장면은 영화의 말미에 나오는 알렉산더와 난민소년이 함께 탄 버스씬인데, 둘이 탄 버스로 혁명가, 논쟁하는 연인,연주하는 악단, 과거의 시인 솔로모스가
타게 되는 비현실적인 장면은 이 영화가 말하려던 바를 단적 으로 보여준다. 혼란과 안정 그리고 아름다움이 함께 하는 이 버스는 한편의 인생과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으며
이들 하나하나가 버스에 탑승하는 순간은 모두 '시간' 이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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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글을 쓰고 이 영화를 기억하는 오늘 '하루' 이지만 언젠가 기억 될 '과거'가 되면서 영원해지게 된다. 허무한 기억 이지만 때론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간이다.
어쩌면 이것은 나를 비롯한 인류가 공유하는 모든것이지 않을까? 그것을 알았을 때의 이 영화의 위대함과 벅찬 감동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감독은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말해
주었고, 지금 저 세상에서도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앙겔로풀로스는 영화계의 시인 이자 철학자였다. 지금 시대에서 꽤나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인식 되어져 결국 잊혀지겠지만, 적어도 그를 기억할 단 한명의 사람이 이렇게
그에 대한 흔적을 기억하고 있듯이 그의 작품과 업적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게 될 흔적을 남길 또하나의 과정이지 않을까?
 
앞으로 이곳에 넘쳐나게 될 기사와 칼럼들로 이 기사 또한 잊혀지겠지만 누군가의 기억으로 남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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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부산 국제영화제 에서 핸드 프린팅을 한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좌측) 우측은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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