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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오리지널 씬 스틸러들을 무료로 만나는 법?!

12.04.25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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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영화에서 크게 열연했던 씬 스틸러들, 한국영화 성격배우들을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만날 수 있다.

씬 스틸러란 영화나 드라마에서 관객들의 주의를 강력하게 흡입하는 연기자를 일컫는 말인데, 주로 주연이 아닌 조연배우들의 역량이 뛰어날 때 반어적 찬사의 의미로 쓰인다. 예를 들면 이문식, 유해진, 오달수, 김정태 같은 배우들이다. 주연이 연기가 돋보이는 것은 사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상식적인 기대의 충족이므로 당연한 현상이다. 그런 점에서 ‘씬 스틸러’를 발견하는 것은 적극적인 관객의 특권이다. 그들은 비록 스타들을 조명하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시쳇말로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며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카리스마를 뿜어냈던 이들이다.

단 한 장면을 나와도 관객의 뇌리에 각인되는 뛰어난 연기자들, 한국의 오리지널 씬 스틸러들을 만나보자.





푸근한 할머니들의 숨겨왔던 본색 – 황정순 / 정애란 / 한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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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팔도강산>을 비롯하여 많은 영화에서 서민적인 할머니의 모습을 연기했던 황정순과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양촌리 김회장의 어머니로 ‘국민 노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준 정애란, <축제>의 ‘할머니’ 한은진 등은 노역 이외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실 남녀배우 가릴 것 없이 나이가 들수록 한정된 배역만 들어오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여자 배우일수록 배우의 이색적인 필모는 이를 증명한다. 황정순이 나이트클럽 마담으로 분한 영화 <육체의 고백>과 정애란이 투기를 부리는 무당으로 분한 영화 <을화>, 그리고 복잡한 내면의 지식인 여성을 연기한 한은진의 <로맨스 그레이>가 그것이다.

영화 <육체의 고백> 속 돈에 눈이 멀어 갖은 방법을 저지르는 중년 마담으로 분한 황정순의 연기를 보면 다른 작품의 그 할머니가 맞나 싶을 정도다. 한편으로는 그 이유가 세 딸의 뒷바라지이기에 잘못된 자식사랑이지만 그러한 모습에서나마 다른 작품에서 보여준 인자한 어머니, 할머니의 모습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영화 <을화>에서의 정애란은 더 이상 <전원일기>에서의 그 사람이 아니다. 자신보다 새로 신을 받은 젊은 무당이 더 신통하다는 것에 앙심을 품는 모습을 연기함으로써 모든 어머니와 모든 할머니들이 그 이전에 사랑을 갈구하는 한 여인이었음을 보여준다.

<로맨스 그레이>에서 한은진이 맡았던 젠체하는 지식인 여성은 매우 특이한 캐릭터이다. 바람난 남편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부인네들에게 “아내가 변변치 않아 남편이 바람난 것”이라고 일장연설하던 그가, 실은 자신의 남편(강승호 분)이 첩살림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는 것은 일종의 조롱거리가 된다. 자신의 현실도 모른 채 온갖 지식을 나열하고 관념적인 주장만을 일삼다가 결국은 망신을 당하게 되는 이 지식인 여성 캐릭터는, 그러나 실은 아주 복합적이다. 초반에는 마치 “양풍들린 신여성”에 대한 저 유서깊은 조롱처럼 보였던 그 캐릭터는 그가 남편의 부정을 알고 “맹렬한 투지”로 남편에게 달려들어 한강에 빠져죽자고 하면서 급반전한다. 한강에서의 해프닝 이후 그는 첩살림으로 패가망신할 뻔한 남편을 내치고는 과거의 위엄을 회복한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화해를 청해오는 남편의 손을 마지못한 척 잡는 것이다.





다정한 아버지들의 꺾을 수 없는 신념 – 주선태 / 최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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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현과 주선태는 같은 극단에 있기도 했던 당대 최고의 배우 김승호와의 인연이 깊다. 최남현은 김승호의 상대역으로, 주선태는 김승호 영화의 조연으로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두 배우는 또한 여러 작품에서 한국의 아버지상을 보여주는 역할을 맡으며 그 존재감을 피력했지만 비슷한 캐릭터의 김승호가 워낙 인기를 얻어 그 그늘에 가려지기도 했던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배우의 연기가 빛이 바랜 것은 아니었다. 두 배우는 때론 누군가의 아버지로 때론 고마운 노신사로, 때론 만만치 않은 악당으로 분하여 다양한 영화에서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며 그 당시 영화에 꼭 필요한 배우로 자리매김했고, 주연 못잖은 존재감을 드러내며 그 연기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그들의 연기 절정을 볼 수 있는 배역은 역시 아버지 자리다. 영화 <싸리골 신화>에서 최남현은 백발이 성성하여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노인이지만 그 기백은 청년 못지 않은 모습으로 마을로 들어온 인민군에 대항하는 강 선생으로 등장한다. 어느 한 사람의 아버지이기보다 마을의 아버지로서 숱한 위협에서 동민들을 지키다 결국 산화하는 강 선생의 모습은 최남현이 아니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절정의 연기력을 보여준다. 영화 <족보>에서 주선태는 가문의 종손으로 종가의 가장으로 창씨개명을 거부하는 노인으로 등장한다. 신념을 가지고 행동한 결과로 딸에게 불행을 안기고, 가문에 배척당하자 결국 비극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한 인간의 고뇌하는 모습은 주선태가 그동안 어떤 자세로 연기를 해왔는지 그 정수를 보여준다.





성격배우라는 이름의 탁월한 악당들 – 이예춘 / 허장강 / 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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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누구누구의 아버지로 더 잘 알려져있는 이들이지만 당대에는 영화계에 없어선 안 될 성격배우로서 이름을 날린 배우들이 이예춘, 허장강, 황해이다. 이들이 마치 영화 <하이 눈>에서와 같이 마을에 닥칠 악당 셋으로 한 영화에 나란히 등장하게 된다면, 이예춘은 정말 무시무시한 악당, 허장강은 유들유들한 악당, 황해는 좀 불쌍해보이는 악당으로 등장할 것 같다. 이예춘은 사찰 입구의 사천왕상을 방불케 할 만큼 악역으로써 타고난 인상을 지니고 있다. 그 덕분인지 그저 맡은 배역을 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주인공을 왜 그렇게 괴롭히냐고 하도 타박을 하는 바람에 거리를 못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이예춘의 이러한 악역연기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영화 <맨발의 청춘>이다. “짖는 것을 잃어버린 개에게 공밥을 먹여줄 순 없어” 등의 주옥 같은 대사가 일품이다. 한편 유머러스한 제스쳐로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악당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허장강은 다양한 악역의 모습을 보여줬다. 어떤 작품에서는 냉정한 악당으로 분하지만 어떤 작품에서는 서민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악역 속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쳤다. 그러한 허장강이 연기를 얼마나 진지하게 마주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군번없는 용사>이다. 황해의 경우는 작은 키라는 신체적 조건 때문에 악역이면서도 인간적 이면이 있을법한 인상을 준다. 나이를 먹어서는 깊은 주름이 패인 인상으로 악역보다 서민적인 모습을 더 갖춘다. 이렇듯 배역에 상관없이 전천후인 그의 좋은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으로는 영화 <황혼의 제3부두>를 추천한다.






이들은 비록 영화에서는 조연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진지하게 자신의 일에 임함으로써 자신의 인생에서는 누구보다도 당당한 주연이었다. 얼마남지 안은 무료기획전은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http://www.kmdb.or.kr/vod/eventPage.asp)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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