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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지막 액션 히어로-2] 이연걸 편

12.07.0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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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걸 (리롄제 | 李陽中 | Jet Li) 영화배우

출생 : 1963년 4월 26일 (중국)
신체 : 168cm, 66kg
가족 : 배우자 이지
학력 : 베이징아마추어스포츠스쿨
데뷔 : 1979년 영화 '이연걸의 소림사'
수상
2010    CMA 앤드아시안인플루엔셜어워드 아시아 최고 영향력상
2008    제27회 홍콩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1995    대만 금마장 특별상
1974    중국 무술대회 종합우승


작은 키, 왜소한 체격, 하지만 눈앞의 거한들을 화려한 무술로 제압하는 아시아의 작은 거인.

이연걸. 그의 화려한 무술의 경력은 무려 8살이라는 아주 어린 나이 에서부터 출발한다.

1963년 중국 랴오닝 성 선양에서 4형제 중 막내로 출생하여 8살부터 무술을 배워, 중국 전국 무술 대회에 대해 5회 연속으로 종합 우승을 완수할 정도의 솜씨(아직도 그 기록을 깨는 사람은 없다). 그는 십대 시절부터 그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여 대회의 메달을 석권했고 무술 시범을 보이며 세계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특히 1974년에는 중국정부가 후원하는 순회시범 중에 워싱턴 DC에서 당시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 앞에서 시범을 보인 적도 있다.


그 우월한 신체 능력을 살려 1982년에 소림사에서 영화 데뷔하였다.

1991년 서극(徐克) 감독 작품 「원스 어폰 어 타임 차이나 천지 여명」으로 대히트 하여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무협영화 최대의 히트작인 황비홍 시리즈로 인해 이소룡-성룡을 잇는 차세대 액션스타로 급부상하며, 당시 아시아권에서 이연걸의 변발과 그의 무술실력은 한동안 큰 화젯거리였다. 또한 황비홍의 주제곡 '남아당자강'은 대히트하며 무협영화음악의 대명사로 등극한다. 그 인기는 한국에도 고스란히 전해졌으며 한국뿐 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의 홍콩영화 전성기를 다시 한번 이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해낸다.

그의 연기 경력은 열아홉 살 때 「소림사」 시리즈(1982~1986)에 출연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1988년에 고향 중국을 떠나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그곳에서 서극 감독의 「용행천하(1989)」에 출연했다. 이후 두 사람은 홍콩에서 다시 뭉쳐 「황비홍」 시리즈(1991~1997)를 만들었다. 이연걸은 1991년부터 1998년까지 홍콩에서 「동방불패(1992)」와 「방세옥(1993)」 그리고 이소룡의 「정무문(1972)」을 리메이크한 「이연걸의 정무문(1994)」을 비롯하여 무려 18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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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사>

그의 데뷔작인 <소림사>시리즈는, 그 당시 영화의 무술 스타일이 다소 생소하여 당황하긴 했지만, 초기작부터 그의 싹수는 대단했다 는 평이다. 만 16세의 나이에 무술영화의 주연이라는 중압감도 별로 없어 보일 정도로 그는 해맑은 모습이었다. 그의 데뷔 시절엔 성룡이 등장한 이후, 코믹무술영화가 한창 인기를 누리던 시절이라 상대적으로 정통 무술영화는 인기가 시들해진 상태였다.
 
그를 스타 반열에 올려준 것은 서극 감독이었다. 언제나 홍콩의 트렌드를 이끌었고, 항상 새로움을 갈구하던 그는 이연걸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촉산>으로 SF를 시도했고 <영웅본색>의 제작에도 참여하던 그는 전격 그를 기용하여 액션영화 한편을 내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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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행천하>

1989년에 발표된 <용행천하>는 그의 가능성을 입증한 작품이 되었다. 초기작으로 미국에서 로케이션한 이 작품은 이후 서극과 이연걸 콤비의 시발점이 된 영화로서 1990년대를 수놓을 명작들의 초석이 된다. 이후 그가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온 것은 2년 후, 1991년 극장가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무술영화가 경탄할만한 경지까지 오르게 한 문제작 <황비홍>에 출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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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홍 시리즈>


저 실루엣에서 풍기는 그의 멋과 카리스마는 엄청나다. 그가 선보인 무술실력은 거의 신의 경지에 가깝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가 대단한 건 무술감독의 힘이다. 무술의 합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고, 그걸 해내는 그의 무술실력도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그때까지 우리의 머릿속엔 성룡밖에 없었고, 그만한 배우가 다시 출현할거란 기대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흥행에 대성공 했지만, 다소 아쉬운 건 그의 캐릭터가 거의 <황비홍>을 찍으면서 고정화 돼버린 문제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1991년의 <황비홍>과 함께 다시 한번 대단한 인기몰이를 한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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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불패>

<동방불패>에서는 이연걸이 등장하여 더욱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이게 된다. 이 영화가 매력적인 것은 상당히 효과적으로 특수효과를 사용하였고, 무엇보다 무협씬 들이 박진감이 넘쳤다는데 있다. 물론 <황비홍>에 비해 이연걸의 무술 솜씨가 확연히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연걸의 영화캐릭터 중 가장 자유로운 캐릭터를 연기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후로도 아류작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이 영화 만큼의 임팩트를 주진 못했다. (<황비홍>에 이어 관지림과 제발 잘 되기를 기원했으나 또 다시 실패하는 결과를 낳았다.)

사실 이 영화에 등장한 임청하의 엄청난 인기로 영화의 흥행과는 달리 이연걸이 깊이 각인되지 못한 면도 있었다. 그래도 이가흔, 관지림, 임청하 등 당대의 최고 여배우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한 작품이었다.그리고 그의 입지를 완전히 굳히게 만들어 준 작품이기도 하다. 이후 1994년까지 대부분 무협영화에 출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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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홍2-남아당자강>(1992) / <황비홍3-사왕쟁패>(1993) / <황비홍-철계투오공>(1993)

이렇게 이연걸의 인기를 실감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황비홍2>의 수입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황비홍3>보다 늦게 개봉하는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수입사의 과다경쟁이 낳은 사건이지만, 그만큼 영화의 인기를 대변했던 반증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홍콩영화가 한국에서의 흥행순위를 보면 1위가 <취권>, 2위가 <황비홍>, 3위가 <동방불패> 순 이었다.


그 사이 황비홍 에서 벗어나 다른 캐릭터가 그를 찾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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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세옥2 : 대도무문>(1993)

그의 또다른 히트시리즈인 <방세옥>은 황비홍의 근엄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마음껏 그의 무술실력을 감상할 수 있는 영화였고, 극장에서도 <황비홍>만큼은 아니지만 사랑을 받았다. 한가지 더 말하자면, 변발이 아닌 이연걸의 모습이 상상이 안되는 시절이 있었다. 물론 <동방불패>에선 변발이 아니지만 머리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쯤 그가 정상적인 머리로 등장할까 내심 기대도 하고 있었을 무렵, 1994년을 기점으로 현대극에 출연하게 된다. 그에겐 나름 파격적인 연기 변신이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영화의 규모는 커졌으나 내실은 다소 부족한 영화들이 종종 눈에 띄고 그 어떤 영화도 <황비홍>과 <동방불패>의 흥행성적을 뛰어넘지 못하는 벽에 부딪히게 된다. 그 첫번째 작품이 바로 <이연걸의 보디가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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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디가드>(1994)

그 당시만해도 국내엔 거의 무명이었던 종려시가 무척이나 아름답게 나왔던 영화이다. 처음 짧은 머리를 선보인 이연걸은 무척이나 어울린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의 연기는 지나치게 무거워 보였고, 또 액션을 선보이긴 하나 총을 쓴다는 건 그에게 별 도움이 안된다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헐리우드 작품인 <보디가드>와 제목부터 컨셉도 비슷해서 비교당하는 사례도 빈번하기도 하였다. 현대극 출연의 가능성을 선보였지만 약간은 아쉬운 작품이 되고 말았다. 이후 현대극의 작품들은 국내 개봉명은 <이연걸의 ㅇㅇㅇ>식의 제목이 일반화 되었는데, 이 작품이 바로 그 첫 테이프를 끊은 작품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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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문>(1994)

다음 작품은 이소룡의 원작과 비교만 하지 않는다면 무척이나 재밌었던 <정무문>이다. 이소룡 만큼의 강렬함은 아니지만, 그만의 카리스마는 충분히 발산된 작품이고, 특히나 강력한 적들과의 1:1 대결이 있어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도장 내에서 싸우는 장면들은 극장액션팬 들로 하여금 아드레날린이 폭발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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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웅>(1995) / <탈출>(1995)

<보디가드> 이후 다시 원규와 호흡을 맞춘 <영웅>은 그의 전형적인 슈퍼맨 컴플렉스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황비홍>에서 비롯된 그의 캐릭터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그에 따른 사랑 표현도 포기하기도 함과 동시에 이젠 가정과 일도 완벽히 처리해야 하는 전형적인 슈퍼맨 콤플렉스 성향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 역시 일을 위해 가정을 소홀히 할 수 밖에 없는 설정들이 조금은 작위적이지만, 후반부 보여주는 우영광과의 액션씬 들은 상당히 박진감이 넘친다.

그런데 <탈출>은 장학우를 아주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코믹적인 요소를 강화했으나 많은 물량을 투입한 영화치곤 지나치게 가볍고 또한 황당한 액션장면들이 많아 눈쌀을 찌푸리게 됐다. 영화 속의 어설픈 이소룡 흉내처럼 영화도 헐리우드를 벤치마킹 하려다 어설픈 영화로 끝나버렸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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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쎌웨폰4>(1998)

이후 1998년 이연걸은 헐리우드의 명 제작자인 조엘실버에게 픽업되어 세계시장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의 인생에서 <소림사>로 데뷔하던 시절과 <용행천하>로 재기했던 때, 그리고 승승장구하다 헐리우드로 건너간 1998년이 세번째 도전이라고 생각되었다.

그가 헐리우드 진출작으로 선택한 건 <리쎌웨폰4>였다. 당시 이연걸이 이 영화에 출연한다는 사실은 국내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끌어 모았다. 하지만 악당으로 출연했던 그의 모습에선 선하디 선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냉혈한 같은 동양인 범죄자의 모습만 비춰졌다. 그의 무술실력을 세계에 알린 것도 좋았지만, 다 늙은 멜 깁슨 아저씨한테 죽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헐리우드의 벽이 높은 건 사실이겠지만, 아시아를 호령했던 최고의 무술스타를 그런식으로 소비해 버리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성룡 역시 1980년대 초반 혹독한 신고식을 치루고 다시 홍콩으로 돌아온 후 1994년이 된 후에야 미국에 제대로 입성했으니 이해할 만도 합니다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이후, 그의 차기작은 <매트릭스 리로디드>가 될거란 소문이 무성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결국은 하차하게 되고 조엘 실버와는 두 작품을 같이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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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 머스트 다이>(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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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들2그레이브>(2003)

이른바 동양인과 흑인의 조합, 그리고 힙합음악이 흐르는 영화 컨셉은 일부 관객들에게 어필해서 어느 정도 흥행수익은 보장되나 크게 히트하지는 못했다. 사실 이연걸의 무술씬 들은 화려하지만, 대결하는 악당이 소수인 관계로 그리 화려하지도 못하고 아울러 서양인들이 이연걸 에게 함부로 명함을 내밀수도 없다는 생각에 대결도 그리 흥미진진 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꾸준히 봐왔던 건 단지 이연걸의 액션에 대한 깊은 신뢰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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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스 오브 드래곤>(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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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독>(2005)


뤽베송이 각본과 제작에 참여한 위의 두 작품은 사실 이연걸이 홍콩을 떠난 후 만든 작품 중에 상당히 뛰어난 작품들이다. 액션에 대한 센스가 탁월한 탓인지 이연걸을 활용하는 방법을 제대로 파악한 뤽베송은 <키스 오브 드래곤>이란 아주 만족할만한 작품을 생산해 내게 된다.

아마도 2000년 이후 이연걸의 영화 중 최고의 작품이라 생각이 들며 위의 사진은 흡사 자신의 작품인 <정무문>에 대한 오마쥬 같은 느낌도 들고 후반부의 대결 장면들은 지금 봐도 새롭게 느껴진다. <더독>은 <키스 오브 드래곤>에는 조금 못미치지만, 조엘실버의 작품들보다는 훨씬 좋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헐리우드로 진출했던 그가 잠시 아시아로 돌아온 적이 있어서 무척 반가웠던 때가 있었다. 장이모우 감독의 대작에 출연하면서 다시 한번 예전의 포스를 보여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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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2002)

다시금 무협월드로 돌아온 그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예전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뿜으며 동적인 무술을 선보인 건 아니지만,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고요한 수면 같은 느낌의 칼솜씨를 선보였다. 언제나 회자되는 견자단과의 대결장면은 진정 남자의 대결이 예술로 승화되는 순간을 목격하는 희열을 맛보게 했다. 그렇게 <영웅>은 국내에서 2백만 관객을 동원하며 그의 최고 히트작에 등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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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 곽원갑>(2006)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무인 곽원갑>은 결국 더 이상 무협영화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이연걸의 얘기로 일단락 되었다. 상당히 진지하게 한눈 팔지 않고 무술영화의 순수성을 보여준 이 영화는 결말이 다소 약했지만, 옛 시절의 이연걸을 기억하는 팬들에겐 좋은 선물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후, 그는 유덕화, 금성무와 함께한 전쟁 서사극 <명장>, 막강 액션스타 제이슨 스타뎀과 함께하는 <워>, 그리고 꿈의 동반 출연인 성룡과 함께하는 <포비든 킹덤>, 그리고 <미이라3>에서 양자경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우리에게 그는 아시아를 대표하던, 한 시대를 풍미한 액션스타였다. 그는 아직 세계인들이 미지의 세계처럼 여기는 동양무술을 액션과 결합시켜 예술로 승화한 진정한 아시아의 자존심이었다. 미국의 액션스타들처럼 반짝 인기 끌다 비디오배우로 전락하는 그런 모습을 원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는 20년간 우리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했고, 그의 예술 같은 무술동작에 감탄했으며, 그의 선한 눈빛에 어린이 같은 순수함도 보아 왔다. 그것은 과거형이 아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그래서 항상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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