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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과 공포'의 귀재 [리그레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스릴러물

15.10.21 20:10



'스릴러의 천재'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이 본연의 장기인 스릴러 영화로 복귀했다. 

2001년 [디 아더스] 이후 무려 14년 만에 스릴러물을 연출한 그는 최신작 [리그레션]을 통해 오랫동안 묵혀온 특유의 장기를 마음껏 선보였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많은 편이지만, 그의 영화팬 이라면 전성기 시절이 스릴러 영화의 장치와 분위기를 그대로 즐길 수 있어 흥미로운 부분들을 맛보기에 충분했다. 

돌이켜보면 그가 연출했던 작품들은 명성에 비해 그리 많지 않지만, 좋은 반응을 불러온 작품들이었다. 데뷔작 [떼시스]를 시작으로 [오픈 유어 아이즈] [디 아더스] 등 이어지는 두 편의 영화 모두 스릴러 영화로 특유의 긴장감과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를 내포하며 많은 방향을 불러왔다. 

그 때문인지 그가 완성했던 세 편의 스릴러물은 치밀하면서도 충격적인 전개와 일상에서도 오랫동안 느껴지는 섬뜩한 공포를 내재하고 있었다. 

단순하게 보자면 흥미로운 스릴러 들이지만, 깊게 살펴보면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잔인성, 두려움 그리고 욕망과 같은 잔상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대한 이야기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탐구하고 싶었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호기심에 대한 대변이었던 셈이며 그 결과는 언제나 섬뜩한 기운을 동반했다. 


선정성에 대한 끝없는 욕망 [떼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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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시스,1996]
출연:아나 토렌트, 펠레 마르테네즈, 에두아르도 노리에가

영화의 폭력, 선정성에 대해 연구 논문을 준비 중인 안젤라는 폭력적인 영화와 영상을 주로 수집하는 동기생 체마(펠레 마르테네즈)를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선정성이라는 어두운 욕망에 중독된 인간의 잠재된 성향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안젤라는 이러한 욕망이 집약되어 완성한 거대한 위험과 마주하게 된다. 사망한 지도 교수가 죽기 전 감상한 영상을 확인하다 한 여성이 잔인하게 살해되는 장면이 담긴 스너프 필름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살해 당한 여성이 같은 학과 내 여대생 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안젤라와 체마는 범인을 잡기 위한 위험한 진실에 다가서려 한다.

한 남자의 자살로 기차가 멈추게 되자, 승객들은 어쩔 수 없이 하차를 하게 된다. 하지만 자살한 이의 모습이 궁금했을까? 주인공 안젤라(아나 토렌트)는 자기도 모르게 시신 쪽으로 다가서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게 된다. 

[떼시스]의 첫 오프닝이 말해주듯 영화는 선정성에 대한 인간의 관음적인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며 욕망이 불러오는 위험을 숨 막히는 공포와 재기 넘치는 스릴러로 표현했다. [떼시스]가 큰 주목을 받게 된 데에는 극 중 인물들이 스너프 필름을 통해 느끼고 있는 공포와 호기심을 스크린 밖의 관객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자극적일 수 있는 실제 스너프 영상을 비롯해 비밀통로, 어두운 방과 같은 공간적인 위치를 활용한 카메라 워킹은 보는 이로 하여금 1인칭 시점에 놓인듯한 기분을 불러오게 한다. 특히 사람들이 많은 대학교 내에서 범인으로 추정되는 용의자와 눈이 마주치자 서로 쫓고 쫓기는 조용한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은 이 영화가 지닌 시각적 스릴의 대표적인 장면이다. 

연이은 숨 가쁜 장면들이 이어지면서 한숨 고르나 싶었던 영화는 곧바로 심리 스릴러의 유형으로 이어간다. 범인인 줄 알았던 인물과 예상치 못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사건들의 실체와 마주하게 되면서 안젤라는 더는 주변의 모든 인물을 믿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 범인은 언제든지 안젤라를 해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녀의 주변을 맴돌며 혼란, 불안을 가중시키게 되고, 안젤라는 그의 계획에 자연스럽게 넘어 오게되고 영화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잔혹한 소재를 주제로 다루고 있지만, 영화가 실제적으로 가하는 폭력장면은 의외로 많이 없다. 그 정도로 [떼시스]는 분위기 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와 스릴을 불러오는 지능적인 서스펜서 영화였으며,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를 남기기에 이른다. 

스너프 필름의 탄생과 유통이 존재한 만큼 우리 인간의 폭력성의 한계는 어느 정도인지? 문제의 스너프 영상을 공개하려는 언론과 이를 기다리듯이 멍하니 화면을 주시하는 환자들의 모습은 선정성에 중독된 현대인들의 슬픈 초상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다. 


꿈과 현실의 경계마저 무너뜨린 욕망의 어두움 [오픈 유어 아이즈]


[오픈 유어 아이즈, 1997]
출연:에두아르도 노리에가, 페넬로페 크루즈, 펠레 마르테네즈

잘생긴 외모와 여자들을 매혹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세자르(에두아르도 노리에가 분). 레스토랑 체인을 운영하던 부모님이 물려준 막대한 재산 덕분에 호화로운 아파트에서 꿈같은 인생을 즐기며 산다. 어느 날 저녁 그의 생일파티에 절친한 친구 펠라요(펠레 말티네즈 분)가 애인 소피아(페네로페 크루즈 분)와 함께 들어선다. 세자르는 첫눈에 사랑을 느끼게 되고 펠라요 몰래 그녀에게 접근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소유욕과 질투심으로 두 사람을 응시하는 세자르의 전 연애상대 누리아(나쟈 님리 분)가 세자르를 차에 태운 채 죽음의 복수를 시도하다 차는 절벽으로 떨어져 대형사고를 당하게 도니다. 세자르는 사고에서 겨우 살아남았지만, 그의 재주였던 얼굴은 심하게 망가진다.

'오픈 유어 아이즈'라는 여성의 목소리에 눈을 뜬 세자르, 잠에서 깨 자신만의 고급 차를 끌고 도시로 나오지만, 도시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잠시 당황한 사이 이 모든 것이 꿈이었다고 언급하며 분주한 도시 속에서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현실 속의 세자르의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얼마안가 그 현실은 또 다른 꿈이자 과거의 기억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서 무엇이 현실이고 꿈인지 혼란을 주게 된다.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바닐라 스카이]의 원작 영화로 알려진 [오픈 유어 아이즈]는 한 개의 장르영화로 규정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색채를 지녔다. 전체적으로 미녀와 야수 이야기를 비튼 듯한 구조의 이색 로맨스 영화를 취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진실과 사라진 기억을 추적하는 과정은 서스펜서 스릴러물의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여기에 [매트릭스]가 등장하기 전에 언급한 가상현실 세계와 비윤리적 가치관에 의해 지배된 첨단 기술에 대한 묘사는 영락없는 SF 영화의 구조다. 

산만할 수도 있는 설정과 구조지만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는 정교한 연출력을 통해 그럴듯한 크로스오버 장르 영화를 완성했다. 영화는 주인공 세자르의 시점에서 다양한 상황을 맞이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로맨스의 분위기를 유지하다 연속되는 반전을 통해 장르적인 변형을 추구하는데, 이를통해 완성된 반전의 강도와 효과는 생각보다 충격적이다. 

이 때문에 영화는 옴니버스 영화를 절로 연상케 하며, 각각의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생의 소중함, 외모를 추구하는 외형적 시각에 대한 비판.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초상, 첨단 과학 기술을 개인의 욕망으로 사용하려는 위험성은 [오픈 유어 아이즈]의 주제의식은 영화만이 지닌 또 다른 흥미요소다.


원혼을 새롭게 정의한 [디 아더스]



[디 아더스, 2001]
출연:니콜 키드먼, 피오눌라 플래너건, 크리스토퍼 에클리스턴, 알라키나 만

2차 대전이 막 끝난 1945년, 영국 해안의 외딴 저택.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독실한 천주교도 그레이스(니콜 키드먼 분)와 빛에 노출되면 안되는 희귀병을 가진 두 아이가 살고 있다. 어느 날 집안 일을 돌보던 하인들이 갑자기 사라지고, 예전에 이 저택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세 명의 하인들이 들어오게 된다. 그레이스는 두 아이를 빛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커튼은 항상 쳐져 있어야 하고, 문은 항상 잠겨있어야 한다는 '절대 규칙'을 하인들에게 가르친다. 이와 때를 같이 해서 저택에는 기괴한 일들이 끊이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피아노가 갑자기 연주된다. 또한 딸 앤은 이상한 남자아이와 할머니가 이 집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를 반복하는데…

유령의 집을 소재로 하는 호러 영화의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시선은 여전히 사람에 놓여 있었다. 공포는 유령의 행동에 공포심을 느끼는 사람의 심리에 의해 그려진다. 유령에 대한 존재와 집에 대한 애착, 가족의 존재감을 강조하는 부분은 [디 아더스]를 고도의 심리극이자 슬픈 정서가 가득한 가족 영화로 만들었다.

공포의 고전과도 같은 귀신들린 집의 이야기 형식을 그대로 이어가지만, [떼시스]를 통해 그려진 공간에 대한 활용과 카메라 워킹은 [디 아더스]를 시각적 호러와 심리적 호러의 시선으로 정의할 수 있도록 한다. 자극적인 장면과 CG로 점칠 될 수 있었던 유령에 대한 묘사도 보이지 않는 존재와 숨바꼭질을 벌이는 심리전으로 그려내 '섬뜩한 공포'를 그려내는데 집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의 정체가 시간이 흐를수록 대담한 행동을 하게 되고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게 함으로써 공포의 강도를 강하게 표현한다. 

엑스트라를 포함한 등장인물이 많지 않지만 [디 아더스]는 소수의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활용한 설정으로 시종일관 긴장감을 형성시킨다. 초중반 까지 유령과 가족들간의 대결 구도로 이야기를 이끌던 영화는 중후반 부터 이들을 보조했던 하인들의 관계마저 뒤엎어 버림으로써 유령의 정체에 대한 예상치 못한 정의를 내린다. 여기에 부모와 자식간의 대립과 이를통한 복선으로 충격적인 여운과 결말을 남기는 과정은 알레한드로 아메나베르만의 치밀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디 아더스]는 반전이 매우 강했던 영화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반전을 알고 본다고 해도 영화가 구축한 서스펜서 장치와 드라마 구조에 집중하고 감상한다면 의외의 흥미로운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스릴러를 기대하고 본 처음과 달리 두 번째 감상은 슬픈 가족 영화로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리그레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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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레션,2015]
출연:에단 호크,엠마 왓슨

[리그레션]은 앞서 언급한 [떼시스][오픈 유어 아이즈][디 아더스]식의 특징을 이해했다면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스릴러의 결정판 이란점을 알게된다.

초반 타이틀과 오프닝을 통해 악마주의 사상이 지니고 있는 공포적 분위기를 자극한 영화는 인간이 지닌 잔인성의 극단주의적 결정체인 악마주의를 언급해 호기심을 불러오게 한다. 초자연적인 기운이 영화를 지배하는 상황속에서 [리그레션]은 현실적인 수사물의 방식을 초반부터 끝까지 유자하며 [떼시스]식 시각적 공포가 지닌 심리와 긴장감을 전반적인 흥미 요소로 사용한다.  

[리그레션]만의 스릴러적인 요소는 심리물이 지닌 특징에 있다. 전개를 통해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등장인물들과 주인공 모두 불안한 심리적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그 강도는 자연히 높아지게 된다.

최면 수사로 인해 불안한 심리를 풀이한 장면은 [오픈 유어 아이즈]가 추구한 가상과 현실의 괴리를 연상시키게 한다. [오픈 유어 아이즈]가 이러한 요소를 장르적 혼합과 파괴를 통한 반전으로 사용했다면, [리그레션]은 인간이 지닌 심리와 편협한 관점으로 해석해 영화만이 지니고 있는 주제로 연결된다. 

모두가 위험한 사람들인 정황이 발견하게 되면서 주인공을 비롯한 주요인물들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 사건을 풀기위해 강행했던 최면수사는 아이러니 하게도 극단적인 집단 광기로 해석되고 만다. 악마주의자들의 광기적 움직임, 밀폐된 공간에서 악마의 존재를 느끼게 되는 개인들의 불안심리는 공포스러운 섬뜩한 영상들로 구연된다.

이를 통해 밝혀지는 결말은 한 개인과 관련된 내용으로 미미한 결말일수 있지만, 개개인에게 발생한 심리극의 관점에서 영화를 봤다면 더욱 넓은 관점에서 현실을 정의한 충격적인 해석이다.

악마의 존재에 대한 심리적 공포, 죄책감으로 해석되는 인간의 불안심리는 [리그레션]만이 지닌 특징이자 주제로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가 오랫동안 탐구한 인간 내면의 심리에 관한 결정판이기도 하다.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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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IMDB,수키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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