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호]리뷰: 한국영화의 '산군'으로 기억될 최민식과 '대호'★★★★
15.12.09 17:38
[대호,2015]
감독:박훈정
출연:최민식,정만식,김상호,성유빈,정석원
줄거리
1925년, 조선 최고의 명포수로 이름을 떨치던 ‘천만덕’(최민식)은 더 이상 총을 들지 않은 채, 지리산의 오두막에서 늦둥이 아들 ‘석’(성유빈)과 단둘이 살고 있다. ‘만덕’의 어린 아들 ‘석’은 한 때 최고의 포수였지만 지금은 사냥에 나서지 않는 아버지에게 불만을 품는다. 한편, 마을은 지리산의 산군(山君)으로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이자,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인 ‘대호’를 찾아 몰려든 일본군 때문에 술렁이고, 도포수 ‘구경’(정만식)은 ‘대호’ 사냥에 열을 올린다. 조선 최고의 전리품인 호랑이 가죽에 매혹된 일본 고관 ‘마에조노’(오스기 렌)는 귀국 전에 ‘대호’를 손에 넣기 위해 일본군과 조선 포수대를 다그치고 ‘구경’과 일본군 장교 ‘류’(정석원)는 자취조차 쉽게 드러내지 않는 ‘대호’를 잡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명포수 ‘만덕’을 영입하고자 하는데…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는 설정 때문에 [암살]과 같은 '항일투쟁'적인 영화를 예상하게 되지만, [대호]는 그러한 예상마저 지극히 낮은 수준으로 만들어 버리는 넓은 의미의 메시지와 가치를 지닌 작품이었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보편화적인 메시지를 지닌 이 영화는 최민식과 호랑이 '대호'가 남긴 '가죽'으로 인해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인상적인 자연주의 영화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대호]는 장시간의 러닝타임을 지니고 있지만, 상영 내내 지루한 느낌 없이 시종일관 긴장감과 강인한 분위기를 오가고 있었다. 이는 영화가 추구하는 관점과 주제가 확고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훈정 감독의 전작 [신세계]처럼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 전개, 인물의 성격, 연출방향을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영화의 주인공인 '대호'에 대한 묘사와 설정부터 남다르다. 호랑이라는 동물이 지니고 있는 특징에 기반을 둔 만큼 [대호]는 거대 호랑이가 지닌 무서움을 극대화하는데 집중했다. 전반적으로 '호랑이 vs 인간'이라는 단순한 대결 구도를 지니고 있지만, 이로 인해 관객들이 영화에 대해 집중하고 볼 수 있는 관점을 완성시켰다. 이 과정에서 보다 넓은 의미의 이야기 전개와 주제의식을 내포해 자연주의 영화가 지니고 있는 깊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집중했다.
영화 초반 포수 대와 일본군이 호랑이 무리를 손쉽게 사냥하지만, 중반부 대호와 인간들이 격돌하는 장면은 이와는 정반대의 상황으로 그려진다. 이는 인간들을 압도하는 괴수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동시에 [프레데터](1987)에 등장한 숲 속에서의 습격 장면에 버금가는 흥미로운 잔혹극 이었댜.
지리산의 산군(山君) 다운 위용을 드러내며 등장한 대호가 자기보다 수적으로 우세한 인간들 앞에 당당히 선 채로 노려보는 장면은 그다음 이어질 무시무시한 심판을 암시하게 된다. 대호의 위용앞에 압도당한 인간들이 서늘한 공포를 느끼게 되자 이를 감지한 대호는 특유의 으르렁거림으로 인간들을 향해 달려든다. 거대한 짐승이 날렵한 몸짓과 강인한 힘으로 수십 명의 인간들을 도륙하는 장면은 가히 압권으로 작품이 지닌 대표적인 액션이자 볼거리다.
여기에 숲 속의 한가운데서 사냥꾼이 숨죽이며 대호의 움직임을 '오감'으로 느끼고, 이러한 사냥꾼을 향해 대호가 주변의 엄폐물을 이용하며 서서히 다가가는 장면은 사냥감의 관계가 언제든지 역전될 수 있는 상황으로 최고조의 긴장감을 대표하는 인상 깊은 장면이다.
이러한 대호의 압도적인 움직임에 지지 않으려는 배우들의 연기 또 한 최고조에 가까웠다. [신세계]에서 캐릭터의 입체적인 부분들을 강조했던 감독의 장기가 이번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발휘되는 순간이다. 주인공 천만덕을 연기한 최민식은 과거 여러 작품에서 보여준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강조하기 보다는 인간적인 요소와 같은 힘을 덜 뺀 모습을 보여주는 데 치중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도박은 옳은 선택이었다.
조선의 명포수라는 명성을 지닌 천만덕 이지만, 포수의 모습 보다는 아버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사람, 운명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의 주제를 강조하는 데 일조하며 여러 등장인물들과 공존하게 되는 중심 배우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그의 이러한 캐릭터는 조선의 망국과 시대의 흐름을 바라봐야만 했던 [취화선]의 장승업의 모습에 가까워 보였다.
최민식이 덜어낸 강인한 남성성의 모습은 오랫동안 한국영화의 '신스틸러'로 활약한 정만식에 의해 채워지게 된다. 너무나 강인한 인상 탓에 비중있는 조연을 맡기에는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그가 연기하는 '구경'은 [대호]에서 가장 입체적인 모습을 지닌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구경은 사냥감, 명성을 얻고자 하는 탐욕적인 존재이자 그로인해 수많은 인명의 생명을 희생시킨 인물이다. 그 때문에 단순 악역으로 표현될 수 있는 캐릭터지만 대호에 대한 상처와 복수심이 남아있는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양면성을 띈 매력적인 존재다.
천만덕의 아들 '석'을 연기하는 성유빈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최민식이라는 대선배 앞에서 연기를 펼치지만 기죽지 않고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주는 철없는 사춘기 소년의 모습은 [대호]의 천만덕과 자연스러운 부자(父子)로서의 조화를 이룬다. '칠구'역의 김상호, '마에조노'역의 오스기 렌, '류'역의 정석원도 무난한 연기력을 선보이며 영화이 완성도를 높여준다.
대호에 대한 확실한 묘사와 설정, 캐릭터의 역할과 비중을 이해하며 이에 맞춰 연기하는 배우들의 존재감과 연기력, 이를 적재적소로 적절하게 배치한 감독의 연출력이 [대호]만의 확고한 개성과 분위기를 완성하는 데 일조했다.
심혈을 기울여 완성된 대호의 CG는 영화의 분량상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중요 장면이다. 헐리웃의 기술과 비교해 털의 미세한 움직임, 음향, 모션 캡처와 같은 섬세한 묘사에서는 상당한 발전을 보였음을 확인할 수 있지만 생생한 움직임과 빛이 배경이 되는 밝은 장면에 있어서는 약간의 어색함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감상에는 전혀 방해되지 않는 상당한 발전과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대호]의 기술력은 대한민국 특수효과의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가능성을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기술력 속에서도 수십마리와 여러종의 산짐승과 지리산의 배경을 CG로 완성했다는 점은 칭찬할 만한 부분이다. 영화의 특수효과에서 가장 중점 있게 봐야 할 부분은 대호의 눈빛, 지리산의 풍경을 묘사한 자연이 지닌 정서와 진정성이다.
천만덕과 대호는 영화에서 경계의 대상인 동시에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상징하는 관계로 많은 부분에서 자연스러운 연계성을 지니고 있다. 가족을 지키고 책임져야 하는 아버지인 동시에 '순응'과 같은 자연의 흐름을 존중하는 미물적인 생명체들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서로의 삶을 함께한 운명공동체로 '언어'가 아닌 마음속의 교감으로 서로를 이해한다.
일제강점기와 같은 암울함과 민족성을 상실한 채 탐욕을 우선시 하게되는 세상속에서 인간들은 자연을 침범하게 되고 수많은 산짐승들을 학살하며 그들의 잇속을 채우게 된다. 지리산의 사냥과 학살은 이 시대의 일제에 수탈당한 우리 민족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장면이자 자연과의 공존을 잃어버린 인간의 추악한 본질을 의미하고 있다.
이러한 비극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으며 포수대와 일본군을 죽이는 대호는 자연의 복수이자 반격을 의미하는 동시에 이 시대를 살아갔던 민초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저항을 의미한다. 대호가 보여주는 야만적인 액션과 학살은 시간이 흐르면서 처절함과 숭고함으로 표현되며 천만덕의 존재감은 이러한 [대호]가 말하고자 한 강렬한 울림을 전해주는 정점으로 연결된다.
탐욕의 부질함, 자연과 운명의 순응, 교감을 포함하는 마지막은 [대호]만의 감동적인 요소이자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강렬한 자연주의적인 메시지다. 이는 우리영화가 지닌 독보적인 정서이자 최고의 결말, 명장면 이라 생각한다.
135분이라는 다소 긴 러닝타임 탓에 긴 호흡을 따라가야 하는 피로함을 불러올 수 있는 단점을 지니고 있지만, [대호]가 지닌 주제의식에 공감하게 된다면 그만한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 여겨진다. 현재 절찬리 상영중인 헐리웃 영화 [하트 오브 더 씨]와 비교해 볼 수 있는 구조와 요소들도 많아 비교해 보는 재미로 봐도 괜찮을 듯 싶다.
2015년 한국영화의 마지막을 강렬하게 장식할 [대호]는 12월 16일 개봉한다.
작품성:★★★★
오락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
최재필 기자 (보도자료/제휴 문의/오타 신고) movierising@hrising.com
(사진,영상=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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